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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받은 것 우선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1 조회수896 추천수13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3주간 수요일 - 받은 것 우선

 


 

 

얼마 전에 한 자매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영성적으로 조금은 잘못 나가고 있어 바로잡아 주려고 했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단체에 들어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보다도 주님께서 맺어주신 그 신심단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심단체가 주님께서 맺어주셨다면 남편이나 자녀들 역시 주님께서 맺어주신 것일 텐데 가족을 우선시하지 않고 단체를 더 중요시한다면 틀림없이 잘못된 신앙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신앙을 얻었고 키워나갑니다. 교회보다 개인적인 신심단체에 더 치우친다면 나무에서 떨어져나간 가지처럼 말라버리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받으셨다고 하십니다. 당신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아버지께서 주셨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우리들인데 어떻게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아들에게 주실 수 있으실까요?

사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주님을 믿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의 도움 없이는 어떤 누구도 그리스도를 믿거나 그분께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믿은 것 같지만 사실은 다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하여 이미 우리를 그분께 대한 믿음으로 이끄시는 보이지 않는 전초작업이 있으셨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를 받을 때 성유를 두 번 바른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예비자 성유 (구마를 위한 성유)’, 또 세례를 받은 직후 ‘크리스마 성유’를 바릅니다. 이 전통은 아주 오래된 전통입니다.

즉, 우리가 세례를 받기 이전과 이후에 주님께서 성유, 즉 성령님을 통해 섭리하신다는 뜻입니다. 세례 받은 후 크리스마 성유로 성령님께서 확실히 오시지만 그리스도를 모를 때조차도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활동해 오셨던 것입니다. 어떤 누구도 성령님께서 악을 물리치고 귀를 열어주시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 올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고르넬리오라는 로마 백인대장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천사를 그에게 보내어 요빠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는 또 다른 환시를 보여주시며 이방인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즉, 하늘에서 보자기 위에 온갖 짐승을 싣고 내려 보내며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은 율법에 적힌 부정한 짐승들을 먹지 않겠다고 버팁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이방인들이 찾아올 터이니 주저하지 말고 그들을 따라가라고 하십니다. 정말 고르넬리오가 보낸 이들이 베드로에게 왔고 베드로는 비로소 주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엔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한 이방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따라가 고르넬리오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가족에게 세례를 줍니다.

 

즉, 성령님께서는 베드로로 대표되는 교회에 작용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미 활동을 하셔서 교회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믿음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신심단체는 자신들에게 믿음을 주고 키워준 교회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얻은 신앙인을 단 한 명도 잃지 않으시는 것이 당신의 할 일이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더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맡기신 양을 한 마리도 잃지 않으려는 착한 목자의 모범인 것입니다.

나의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가족도 친구도 모두 주님께서 나에게 신비한 성령님의 작용을 통해 나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 먼저 지켜나가지 못한다면 다른 누구를 찾는 것은 오늘 복음의 가르침에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새로운 양을 찾는 것보다는 맡겨진 양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듯, 신심단체를 위해 가족을 소홀히 하는 것보다는,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더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짧은 묵상>>

어떤 누구도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고통이라도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눈으로 보기에 예수님과 옆에 매달린 두 도둑의 고통은 같아 보입니다. 이 같은 십자가의 고통이 한 사람에겐 하느님을 저주하여 지옥의 고통이 되었고, 한 사람에겐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보속의 고통이 되었으며, 예수님께는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고통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수난의 의미를 오늘 복음에서 설명해 주십니다. 즉, 당신 수난의 구체적 상징은 ‘성체’입니다. 밀떡은 밀알이 산산이 부서져서 물과 불에 단련 되어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성체와 성혈도 마찬가지로 당신 자신을 완전히 부순 ‘수난’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지만, 당신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라고 하십니다. 즉, 당신 수난의 성체와 성혈은 아버지께 대한 순종의 결과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순종함은 아버지와의 일치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수난은 ‘아버지와의 일치’를 위한 순종이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일치를 위한 순종이었기에 그리스도의 수난이 우리에게 생명이 된 것입니다. 부부가 일치하면 새 생명인 자녀가 세상에 태어나듯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한 고통은 생명의 열매를 맺어 다른 이에게도 생명을 전해주는 가치 있는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순종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그것으로써 당신에게 맡기신 모든 영혼에게 생명을 주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듯이, 우리에게 오는 모든 고통도 하느님께 일치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생명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가치 있는 고통이 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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