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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 3주일 -♡하느님의 사랑♡[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3 조회수435 추천수11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일몰의 감곡성당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일교차가 심하니까 감기 조심하십시오.

저는 감기 걸린 목소리가 더 멋있지요?

(제가 왕자병이 깊습니다^^)


여러분, 내가 몸담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입니까?

자연종교입니까? (계시종교입니다.)


계시종교는 우리의 노력도 있어야 되지만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만 구원이 됩니다.


자연종교인 불교는 부처님이 도와주시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계시종교는 애초부터 주도권을 하느님이 잡고 있어요.

인간이 하느님을 찾아서 만든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방문하여 만든 종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그물을 던지는 종교요,

인간을 향해서 심방하는 종교입니다.

찾아 나서고, 심방을 하고, 그물을 던지고 ...

하느님 쪽에서 우리 쪽으로 오는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높은 하늘에 앉아 계시면서

“너희들 나에게까지 올라와 봐라!”

올라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처럼 인간이 되셔서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팔짱을 끼고 끌어올리는 ‘눈높이사랑’

‘강생의 의미’ 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종교이지

우리 쪽에서 하느님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죽었다 깨도 그럴 힘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나서는 종교’ 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순례자들은 오늘 성모님을 찾으러, 또 예수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개중에는 김신부의 강론을 듣기 위해서 오신분도 있을 겁니다.


창세기서부터 하느님은 찾아 나서시는 하느님으로 등장합니다.

창세기 3장 9절에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워서 나무 뒤에 숨어있는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하느님께서 찾아 나서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

“네, 알몸인 것이 부끄러워서 숨었습니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가르쳐 주었지?”


하느님께서는 찾아오셔서 대화를 통하여 상처를, 수치심을

죄의식을 치유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무던히 대화를 건네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창세기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손수 가죽옷을 지어서 그 수치를 가려주십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말을 건네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평화를 이야기하십니다.


오늘 복음에 베드로사도에게 세 번 묻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예, 사랑합니다.”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네, 왜 자꾸 같은 걸 물으세요?”


세 번 배반했던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의 다짐을 물으시며

수치심으로부터 명예회복을 시켜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요약하면

첫 번째, 찾아 나서시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이 성지를 찾아왔다는 생각 눈곱만큼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을 이 거룩한 땅에 부르시기 위해서

성모님께서, 예수님께서 이미 여러분의 마음속을 방문하셨고

여러분의 집을 찾아가셔서 얼마나 많은 기도 끝에

이 거룩한 땅을 밟았다고 하는 것

그것이 성지순례의 첫 번째 단추입니다.


두 번째, 하느님의 사랑은 대화하는 사랑, 말을 건네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죄 중에 헤맬 때, 때로는 미사 중에

강론을 통해서 말을 건네시며

“마리아야, 베드로야, 너 죄 지어서 힘들지? 그래, 앞으로는

같은 죄에 떨어지지 말고, 너 죄 안 지으려면 기도해야 돼!

네가 날 쳐다보지 못하는 것 알아, 나는 너를 쳐다보고 있으니

이젠 죄 짓지 마라.”


아담과 하와에게 알몸을 가리라고 가죽옷을 입혀서 내보내시며

낙원에서 쫓아내실 때, 하느님의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누구든지 이 아이들을 건드리면 내가 복수하겠다.”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내보냈지만 마지막까지도

하느님의 사랑은 대화하시면서 달래시는 사랑입니다.


세 번째, 하느님의 사랑은 치유시켜주시는 사랑입니다.

아마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을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서운했겠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보고 분명히 치유 받았을 겁니다.


네 번째, 하느님의 사랑은 미래에 대한 행복까지 약속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네 가지로 요약하면

첫 번째, 찾아 나서시는 사랑이요.

두 번째, 대화하시는 사랑이요.

세 번째, 치유시켜주시는 사랑이요.

네 번째는 행복을 약속하시는 사랑이에요.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고기 잡던 베드로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져라!”

이 말은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 는 말과 똑같습니다.

다른 말로는 “양들을 찾아 나서라!”

또 다른 말로는 “양들을 찾아다니라.”

전교하라는 말입니다. 방문하라는 뜻입니다.


사제이든, 수도자든 평신도이든 간에

사랑의 그물, 관용의 그물, 온유의 그물을 어깨에 걸치고

상처가 있는 그곳으로 달려갈 때

하느님이 찾아오셔서 말을 건네시고, 대화하시고,

치유를 시키시고. 약속을 하셨듯이~

하느님의 자식인 우리들도 똑같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말을 건네고, 치유시키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찾아다니라는 그 뜻은 다른 말로 ‘심방’ 하라는 말입니다.

심방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사탄의 심방이 있고, 천사의 심방이 있습니다.


사탄의 심방은 교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꼭 맨 마지막에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는 것, 그것은 마귀가 역사하는 심방입니다.


우리 자매님들, 허물없는 신자집 방문해서 제일 먼저 그 집에 걸려있는

십자가 밑에서 기도한 적이 몇 번이나 됩니까?

문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거실에서 쳐다보시는 예수님께 눈길 한 번 안 주고

성모님이 쳐다보시면서 “우리 둘째 딸 왔니?”

하는데도 성모님한테는 눈길조차 안 줍니다.

신발 벗고 들어가면서부터 수다 떨면서

얼마짜리 퍼머냐고~ 머리 색깔이 안 좋다고...오늘 점심 뭘 먹을까!


다시 말하면 기도로 시작되지 않는 심방은 마귀의 밥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모여서 헤어질 때는 반드시 상처받는 사람이 꼭 생깁니다.


마귀는 우리 천주교신자들이 신자 집을 방문할 때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지, 입으로 마귀를 불러들이는지 유심히 봅니다.

‘아, 이 집단은 내 밥이다....내 간식이다.’


사탄의 심방은 평화와 기쁨을 주기보다는 분열과 혼란을 일으킵니다.

남에 대한 비방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심리학적으로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시기, 질투가 바로 열등감입니다.

대화의 내용도, 시간을 보내는 것도 세속적입니다.


우리 교우들끼리 모이면 뭐하십니까?

고스톱 치다가 신앙 잃어버린 사람 많아요.

사탄의 심방은 마귀가 역사하는 심방입니다.


반대로 천사의 심방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개신교신자들, 여러분 방문했을 때

용건부터 이야기 하지 않고 제일 먼저 손 모으고 기도해 줍니다.

“주님 이 집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이 집에 있는 동안

내 입을 통하여 이 집에 축복을 주시고 이곳을 떠날 때는 기쁨의

사람으로 기억되게 해 주십시오. 제 입에다가 자물쇠를 채워주시고 

지혜의 말이 나오게 해 주시고 이 집 가족 하나하나에게 축복 주십시오.


개신교신자들은 적어도 예수님이 하신 유언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어느 곳을 가든지 먼저 평화를 빌어주어라!”

그게 바로 천사의 심방이에요.


기도로 시작된 심방은 절대 잘못될 수가 없어요.

사탄의 심방은 앞을 다투어서 다른 사람을 헐뜯는 말을 하지만

천사의 심방은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말을 하려고 애를 써요.

남 얘기를 하기 보다는 하느님 말씀에 맛들이고, 성서를 같이 읽고

봉사할 곳을 찾아다니고, 우리 반의 어려움을 위해서 같이 기도해요.

바로 이런 것이 천사의 심방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셨듯이, 찾아가는 것이

우리 가톨릭신자들의 존재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을 방문하셔서 치유와 행복의 약속을 해 주셨듯이

교우들이 어느 집을 방문하든지 그 결과만큼은 분노와 미움, 분열이 아니라

평화와 치유가 일어나야 합니다.


저도 사제 생활 하면서 전국, 전 세계를 찾아다닙니다.

예수님의 대리자로,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방문해서

면담할 사람은 면담하고, 강의를 통하여 해답을 줄때도 있고,

그리고 치유를 시킵니다.


내가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냐, 악에 속한 사람이냐를 구별하는 것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일치를 이룹니다.

그러나 악에 속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분열을 일으킵니다.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남에게 도움을 주지만

악에 속한 사람은 늘 피해를 줍니다.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내 탓이오! 하고 지 가슴을 때리지만

그러나 악에 속한 사람은 늘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네 탓!’ 이라고 그럽니다.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늘 바보처럼 살지만

그러나 악에 속한 사람은 언제나 똑똑한 척 행사합니다.


요즘은 어느 성당을 가든지 바보 찾기가 힘듭니다.

예수님보다 똑똑한 사람이 드글드글하다 보니까

본당신부도 사목하기가 너무너무 어려워요.


우리 주님은 큰 바보였어요.

우리는 저 바보를 ‘주님!’ 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작은 바보로 살아야 되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어디를 가든지 바보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느 예비자 분이 오랫동안 종교를 찾아다니다가

천주교에 입문한 동기가 뭐냐!

유일하게 천주교만이 유일하게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오!’ 라는 고백의 기도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고백의 기도를 할 때 세 번이나 자기 가슴을 칩니다.

가슴만 치면 뭐합니까?

속으로는 ‘남편, 네 탓이야!’

‘며느리, 네 년 탓이야!’

‘본당신부, 당신 탓이야!’


오늘 예수님께서는 고기 잡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고기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시고 153마리가 되는 고기를 끌어올리게 하셨어요.

불도 피워서 음식을 준비해서 제자들과 같이 드셨습니다.

‘나는 유령이 아니다!’

부활한 그리스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부활은 전설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여러분들도 해마다 부활절을 맞이하지만 유령처럼 살지 마십시오!

정말 하나하나 열매를 맺으십시오.

성지에 올 때 마다 무언가 결심을 하고. 결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열매라도 맺도록 애를 쓰셔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발을 디딜 자격도 없는 죗덩어리의 나이지만

성모님이 나를 불러주셨다고 하는 이 벅찬 감동을 가지고

이 성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주시려고 하는 영적열매

구마의 열매, 치유의 열매, 믿음의 열매, 전대사의 열매

그 은혜를 흠뻑 받으시고 가족에게 가져가셔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이곳을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고

부르심을 받고 왔다는 생각!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이곳에 불러주시기 위하여

하느님이 내 집을 방문하셨고, 성모님께서 내 속으로 들어오셔서

‘에미 있는 집으로 찾아오너라!’

이렇게 초대하셨다고 하는 생각 잊어버리지 마시고

오늘 사제의 입을 통하여 내려오는 은혜와 더불어

성체를 통해 내려오는 은혜, 하느님께 깊이 감사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2010. 04. 18  부활제 3주일)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일몰의 감곡성당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이 시간 주님께 기도 합니다>음악 김웅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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