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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51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5 조회수417 추천수5 반대(0) 신고
 

 

 ♣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

 

II. 삼위일체

 

5.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

 c. 주님 공현 - 영의 눈

 주님 공현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아 본 이들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처음 그리스도를 알아본 이들은 목동들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인간들입니다. 가난한 이라야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가난이란 바로 ‘그리스도만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도시 안에서 돈과 쾌락과 권력을 쫓던 이들은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천사의 노래를 듣지 못했습니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원은 구원을 받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오고, 그리스도도 그 분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이는 동방 박사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먼 곳에서부터 별을 보고 왕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들은 ‘진리’를 쫓는 이들이었습니다. 돈을 진리로 여기는 사람도 있고 권력이나 쾌락이 진리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면 그 분은 반드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들은 진리만을 쫓는 이들이기에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이란 주님 외에 다른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오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성모님께 성령님이 오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가난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을 버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도 그리스도를 보고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 전엔 그 분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아나니야가 안수 해 줄 때 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갑니다. 믿지 않으려 하여 믿지 못하는 것이고 보지 않으려 하여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 9, 39-41)

이 눈을 갖는 방법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 말한 회개입니다. 회개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려야 성령님이 오시고, 또 성령님이 오셔야 믿을 수 있고, 믿어야 보입니다.

성경 또한 주님 공현입니다. 교회 또한 그리스도를 계시합니다. 그러나 믿는 이에게는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고 주님의 몸이며, 믿지 않는 이에게는 그저 문자나 하나의 집단에 불과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평생 성경을 공부해도 영적인 것은 하나도 못보고 깨달을 수 없게 됩니다. 믿어야 볼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비워야합니다. 즉, 믿기 위해서 믿기를 원해야 합니다.

 

d.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봉헌하고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찾음 - 봉헌의 신비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서로 당신 자신을 상대에게 주심으로써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봉헌은 바로 세상 어떤 것도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성모님께서 당신 삶이 당신 것이라고만 고집하셨다면 성자는 사람이 되실 수 없으셨습니다. 성모님의 봉헌으로 그 분이 성모님으로부터 인성을 취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성체는 바로 우리가 봉헌하는 제물이 축성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봉헌하지 않는다면 성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봉헌한 마음만큼 성령님은 성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채워지고 그만큼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아드님을 당신 것으로 하지 않고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애정을 봉헌하는 것이 가장 큰 희생입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성모님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성모님은 아들을 아버지께 봉헌했기 때문에 아들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저 그 분의 길에 함께 하며 함께 고통을 나눌 뿐입니다.

성모님은 몇 년 뒤에 아들을 잃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를 다시 발견합니다. 어쩌면 잠시 아들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함을 잊으셨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그 때의 봉헌을 다시 갱신하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나를 봉헌한다고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내가 나를 나의 것으로 만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주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봉헌에 빠져서 안 될 핵심은 “감사”입니다. 어차피 하느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으니 다 빼앗아가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바로 온전한 봉헌입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욥기 1, 21)

예수님은 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봉헌하였더니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 불어났습니다.

또 당신 살과 피를 봉헌하였더니 그것으로 우리의 온 죄가 씻겨졌습니다.

우리는 빵과 포도주를 바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돌아옵니다. 곧 영원한 생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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