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대축일 - 영의 축복은 한마음을 만든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더라’고 하셨다. 존재하는 것은 다 선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므로 다 좋은 것이다. 그러면 악은 무엇인가? 악은 선이 부족한 것, 모자라는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결핍되면 그것이 악이다.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더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빛은 선한 것이다. 그런데 빛이 부족하고 모자라면 어둠이요, 그것이 악이다. 빛이 비치면 어둠은 저절로 사라진다. 선은 늘 악을 이긴다. 그래서 예수께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야 악이 사라진다.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부활 대축일 성야 때 ’빛의 예식’을 거행하였다. 예수께서 우리의 빛이시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악이 만연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죽음을 생명의 끝이요 종말로 이해하던 인류에게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새 생명을 보여주신 것이다. 생명이 죽음을 이긴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새 생명의 승리가 그리스도 부활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빛, 그 빛으로부터 우리는 빛을 나누어 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받았던 세례를 기억하며 세례수 또는 성수를 축복하고 세례 때 했던 서약을 새롭게 하였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빛이 어둠을 이기듯이,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 그 부활시기를 지내고 있다. 새 생명에 대한 기쁨과 그 기쁨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지내고 있다. 부활시기는 50일간 지속된다. 40일째에 주님 승천 대축일을 지내고(우리 나라에서는 가까운 주일에 지냄), 50일째에 ’성령 강림 대축일’을 거행한다. 성령의 강림은 그리스도 부활의 완성이며 종결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고 하셨다(요한 20,22 참조). 곧 부활의 새 생명은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심으로써 그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성령 강림 대축일을 예수 부활 대축일 다음 50일째에 지내게 되었는가? 그것은 오랜 유다 전통 축제인 과월절과 오순절과 무관하지 않다. 과월절은 우리 신앙의 근본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과 직접 관련된다. 예수께서는 과월절 전날 돌아가셨고(마르 15,42), 과월절 다음날 안식일이 지나고 일요일에 부활하셨다(마르 16,1). 그리스도 오순절은 성령 강림절과 일치한다. 이런 밀접한 관계 때문에 예수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은 유다교의 과월절과 오순절에 맞추어 날짜가 정해진 것이다. 또 성령 강림 축제로 마감하는 부활시기 50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구약성서에 따르면(레위 25,10 참조), 매 7년의 주기 다음, 곧 매번 50년째 되는 해를 희년이라 하여 모든 죄가 사해지고 노예들을 해방하였다. 그래서 50이라는 숫자는 ’죄의 용서’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교회는 유다인의 ’오순절 축제’와 ’죄의 용서’를 서로 연결하여 이해하였다. 또 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7을 스스로 곱한 숫자의 다음날이 50일째가 되는 날이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미래의 여덟째날’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이 50일의 축제는 성령 강림과 함께 우리 그리스도교적 해석과 의미가 부여되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50일의 기간과 함께 성령의 강림으로 인한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 ’부활의 새 생명’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가? 성령의 강림은 부활의 마지막 사건이다. 성령 강림 대축일로 부활시기 50일이 막을 내린다. 성령 강림의 의미는 ’죄의 용서’와 ’부활로 인한 새 생명의 활동’이라 했다.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새 생명, 부활하신 주님의 새 생명의 활동이 성령이시다. 우리 가운데 펼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성령이시다. 성령으로 인해 우리는 그 결실을 맺는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결실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다고 하셨는데, 인간은 교만의 ’죄’로 인해 ’분열’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 부활하셨으며, 성령을 보내주셨다. 바벨탑을 쌓았던 교만의 죄로 언어가 갈라지는 분열이 왔다면, 성령의 오심으로 그 죄가 용서받으며 자기 말로 알아듣는 ’일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사도 2,1-11 참조).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한마음’이 되게 만드시는 것이다. 형제들과 한마음 한뜻, 주님과 한마음 한뜻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의 의미이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았다. 세례와 견진을 통해 이미 성령을 충만히 받았다.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 때에도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용서를 받는다. 우리 가운데 계시고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한마음이 되게 만드신다. 성령 강림을 맞아 우리는 성령께서 활동하실 자리를 내어드리자. 내 마음이 자기 주장, 고집,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영께서 활동하실 수 없다. 마음을 비우고 성령께로, 주님께로 마음을 열어보자. 그러면 주님께서 활동하시고 이끄시는 대로 우리를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결실을 가져다 주실 것이다. [경향잡지, 1999년 5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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