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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한 삶" - 4.2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5 조회수396 추천수1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4.25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이민의 날)

사도13,14.43-52 요한 묵7,9.14ㄴ-17 요한10,27-30

 

 

 

 

 

"행복한 삶"

 

 

 

착한 목자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부르심을 받아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우리들입니다.

부르심은 우리의 존재이유입니다.

‘나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유다인 랍비 여호슈아 헤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세상에 똑같은 얼굴 없듯이 똑같은 성소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유일무이한 그만의 고유한 성소입니다.

다양한 성소들이 조화를 이룰 때

공동체도 하느님을 닮아 풍요롭고 충만하고 아름답습니다.

바로 이런 이웃 형제들의 성소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이웃사랑이자 하느님 사랑입니다.

부르심에 충실할 때 충만한 존재에 행복한 삶입니다.

하여 저는 오늘 우리의 성소를 새로이 확인하는

‘성소주일’에 덧붙여 ‘행복주일’이라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불러 주신 성소에 충실할 때 참 행복입니다.

오늘 행복주일에 주님은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이 나의 유일한 관심사가 될 때

저절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착한 목자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양들입니다.

이 착한 목자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

시끄러운 목소리들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소음 공해 가득한 세상이라 주님의 말씀을 듣기가 참 힘듭니다.

무의미한 피상적인 소리들로 채워진

쓰레기통 마음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시끄러우면, 주님을 향하여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리 귀가 밝아도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잘 듣도록 마음을 훈련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주님의 조용하고 여린 음성을 들은 것은

강한 바람, 큰 지진, 사나운 불길이 지난 후였습니다.

우리의 성소는 주님의 한 번 부르심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견고해지고 풍부해집니다.

미사 중에 성무일도 중에 성경독서 중에 일상생활 중에

끊임없이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과연 깨어 고요히 마음 활짝 열고 주님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있습니까?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 주님을 알게 되고 이어 나도 알게 됩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길 말고는

주님을, 나를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주님과 나에 대한 앎이 깊어질수록

튼튼해지는 성소에 뚜렷한 정체성이요 여기서 샘솟는 내적 힘입니다.

착한목자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중심을 잃고 방황이요 혼란, 복잡한 삶이요

약화되는 우리의 성소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새로운 깨달음으로 마음에 와 닿았던 적은 종종 있습니까?

주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또 까맣게 잊고 지내는 날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영혼의 굶주림이요 목마름입니다.

사랑이 식어 주님께 마음이 멀어진 결과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미사시간만이라도

주님을 향하여 마음 고요히, 깨어, 활짝 열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따르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주님과 나를 앎으로 끝나는 우리의 삶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실천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실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의 말씀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몸으로 삶으로 실천으로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없습니다.

주님도 나도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실천적 삶을 통해

주님도 나도 깊이 체험하여 알게 됩니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누구보다도, 심지어는 나보다도 나를 잘 아시는 착한목자 주님이십니다.

세상 그 누구도 나를 몰라준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착한 목자 주님은 내 마음 모두를 아십니다.

얼마 전 저 역시 답답하여

미사 중 주님 향해 속으로 쏟아 낸 말을 잊지 못합니다.

‘주님, 주님만은 저를 아시지요.’

순간 마음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사랑할 때 압니다.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우리를 잘 아시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주님께서 불러주신 자기 삶의 자리에서

자기 운명의 십자가를 지고

책임적 존재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누구나에게 주어진 그만의 고유한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마지못해 지는 십자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쁘게 지고 가는 십자가여야 합니다.

제가 자주 묻는 질문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의 삶은 선물입니까 혹은 짐입니까?’

기쁘게 자발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를 때

삶은 선물이지만,

주님을 잊어 억지로 마지못해 십자가를 질 때는

무거운 짐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주님을 따르는 모습은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답습니까?

유대인들의 반대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습니다.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두 사도는

만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은총에 계속 충실하라고 권하며

담대히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다음 요한 묵시록의 사람들은

바로 제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온갖 환난을 겪어내며

제 성소에 항구했던 이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으십시오.

주님을 사랑하여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충실히 따를 때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영원한 생명은 그대로 주님의 현존이자 주님과의 일치의 삶을 뜻합니다.

아무도 이런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우리들을 해치지 못합니다.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우리를 주님의 손,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의 일치에 합류할 때 영원한 생명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의 은총입니다.

구체적으로 오늘 요한묵시록이

영원한 생명의 정체를 환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큰 환난을 겪어내며

제 십자가의 성소에 항구했던 자들이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마치 성전 미사전례에 참석하여 주님을 찬미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천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앞당겨 체험하는 우리들입니다.

다음의 묘사는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이 되는 지요..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떤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장면 같고 미사은총 같습니다.

어좌는 제대를,

어린 양은 대사제 예수님을,

주변의 흰 옷을 입고 야자나무 가지를 손에 든 이들은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을,

생명의 샘은 바로 성찬전례를 상징합니다.

 

 

성소주일, 행복주일에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행복의 길을 밝혀 주십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따르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받으십시오.

이렇게 각자의 성소에 충실할 때 행복한 삶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모두를 생명의 샘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일거에 해결해 주시고,

우리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시며,

우리들 마음의 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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