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사랑은 어느날 갑자기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꼭 붙잡으려고 한다.
우리는 상대로부터 절대적인 지지와 보호
그리고 절대적인 사랑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인간도 그런 것을 우리에게 줄 수는 없다.
이러한 지나친 기대는 상대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게 되고
수많은 결혼의 위기를 초래한다.
만약 초월의 차원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유한한 것에서 절대적인 것을 기대하고,
인간에게서 신적인 것을 기대하게 될 텐데,
이는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만약 상대방이 나의 모든 동경을
충족시킬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위대한 사랑이신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모든 연인 관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사랑을 즐길 수 있다.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 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로부터 사랑을 강제로 끌어내지 않아도
된다. 이 사랑에 대해서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사랑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만
사실 이 사랑은 나에게 한계도 없고 조건도
없는 무한한 사랑을 암시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상대에게 그의 사랑이 유한하다고 비난하지 않고
우리가 서로 나누는 사랑에 감사할 따름이다.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한다면,
언제나 상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랑의 특징은
상대에게 매달린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대에게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이것이 상대를 점점 더 옥죄게 된다.
그러면 상대는 이 옥죄인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우리를 떠나려고 할 것이다.
떠나려는 상대를 붙잡기 위해
그가 바라는 것을 모두 이루어 주려고 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상대를 싫증나게 할 것이다.
그는 파트너가 아닌, 그저 장식품이나 예스맨Yesman을
하나 데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절대적인 지지와
조건 없는 사랑을 발견한다면 나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상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자유 속에서만 인간들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고,
모두가 숨을 쉴 수 있는 충분한 공기를 얻게 된다.
초월자에게 자신을 열어 보일 능력이 없는
인간은 자신 안에 스스로를 폐쇄시키고,
그 한계로 인해 결국 자멸하고 만다.
인간은 하느님과 하나가 됨으로써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고,
피조물 그리고 모든 인간들과 하나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그의 불안은 끝이 나고,
그의 모든 관계의 신비를 깨닫는다.
즉,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Buch der Lebenskunst 「삶의 기술」
안셀름 그륀 지음/ 안톤 리히테나우어 엮음
이온화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