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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52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6 조회수456 추천수4 반대(0) 신고
 

 

 ♣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

 

II. 삼위일체

 

5.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

 

e. 죄 없는 아기의 학살과 이집트로의 피난 - 피와 생명

새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피를 흘려야 합니다. 고통 없이 태어나는 생명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병아리도 알을 깨야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은 그 생명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만 생명 곧 피가 들어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창세 9,4)

“생물의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할 때에 그것을 제단 위에서 쓰라고 너희에게 주었다. 피가 그 생명으로 속죄하기 때문이다.” (레위 17, 11)

동물의 피는 동물의 생명을 상징합니다. 인간의 죄가 동물의 피로 씻어 질 수 없고 그것을 마신다고 인간의 생명이 연장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피를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요한 6, 53)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피를 흘려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모세가 탄생할 때도 그랬고 예수님께서 탄생할 때도 그랬고 교회가 탄생할 때도 순교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순결한 영혼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피를 흘려야했습니다. 세상은 어두운 세력의 것인데 그것으로부터 영혼을 구하려고 태어난 빛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아기 때는 이집트로 피신했지만 커서는 당당히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새 생명을 온 세상에 주실 수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죽어간 아이들도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 주님이 죽고 나를 죽이면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순결한 영혼들의 죽음은 그리스도를 살렸고 그리스도의 죽음은 죽은 영혼들을 살렸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사막에서 죽고 나서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피를 흘림이 바로 생명을 얻는 길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f. 나자렛 생활의 신비 - Universale concretum

예수님은 30년간을 부모에게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지혜가 자라났다고 합니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온전히 성장하시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성자께서는 태어나실 때도 그랬지만 절대로 당신이 세워놓으신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 분은 한 인간이 되셨고 그래서 부모에게 순종하였고 또 인간으로서의 지혜도 다른 모든 인간이 겪는 것처럼 나이가 들면서 자라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몸만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과 영을 통해 완전한 인간이 되고 또 그렇게 인간과 하나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부모에게 순종하였습니다. 또한 친척도 있었고 친구도 사귀셨습니다.

거룩함이란 혼자 하느님과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는 것을 넘어서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행해야 할 도리도 하지 못한다면 먼저 온전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온전한 인간이란 온전한 관계를 맺으면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먼저 성모님과 요셉 성인, 또 열두 사도, 그 중에서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 또 72제자와 구체적인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부활하셔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시지 않고 마리아 막달레나 한 명에게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내 옆의 단 한 사람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모님을 사랑했고 성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자들과 부인들을 사랑했고, 그렇게 구체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은 절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결혼하셨던 베드로에게 맡기셨던 것은 마치 구체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교회를 사랑하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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