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일등의 자리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9 조회수385 추천수1 반대(0) 신고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요한 13:14-20)
 
미국의 이스턴 메노나이트 칼리지(Eastern Mennonite College)는 예년과 같이 <Campus Life> 잡지에 광고를 실었다.
 
오늘날 누구나 일등을 하려고 한다고 말한 후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는 매몰차게 그러나 재치 있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손수 모범을 보이시어 여태까지 말씀하셨던 것을 증명하셨다. 광고는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가장 위대해지고 싶으면 저희 대학에 오셔서 배우십시오.”
 
마침 사제의 자세에 대한 기사가 있어서 전재한다.
신학과사상학회(회장 김영남 신부)는 지난4월 17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 진리관 대강의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주제로 제5차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그리스도교 사제직’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바람직한 사제상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조현권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가 발표한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의 신원과 삶>을 발췌 소개한다.
(가톨릭신문: 2010-04-25 [제269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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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겸손해야”
서품을 통해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발탁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는 사제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할 사람이다. 사제직의 원천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 사제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사제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갈라 2:20)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는 자신의 이기심과 아집과 욕망을 좇아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살아가시도록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셨고, 인간 세상의 구체적인 현실 안에 들어 오셔서 생활하시고, 마침내 자신을 십자가 위의 제물로 봉헌하신 참사제이시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심이 당신 사제직 수행의 바탕이 되었듯이, 그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사제들의 직무 수행의 우선적인 바탕은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의 ‘겸손하고 진실한 인간성’이어야 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참된 사제이셨던 그분께서는 사제가 참으로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사시게 함으로써, 그분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할 사제는 그 누구보다도 그분을 닮아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지 그리스도가 아니다.
.

교회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사제들의 어머니로 공경한다. 그리스도와 마리아, 두 분께서는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다는 관점에서 ‘사제’로 불릴 수 있다. 인간을 위한 구원의 중재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스스로 제사를 드린 참된 사제이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해 응답한 인간으로서 또 한 분의 사제처럼 자신을 온전히 봉헌했기 때문이다
.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자신의 전 생애를 걸쳐 투신하고 협조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는 오늘을 사는 사제들에게 분명하고도 확고한 삶의 모범을 보여 준다. 사제는 스스로를 봉헌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협력하신 마리아를 본받아 하느님께 순종하며 자기 자신을 봉헌해야 할 사람이다. 필자는 사제들의 정체성과 사제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며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표현이 ‘그리스도의 성사’라고 생각한다. 사제는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성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바오로 해’에 이은 ‘사제의 해’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라’는 당위성과 부르심은 서품을 받은 사제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이고, 사제는 먼저 참으로 사람으로 살아갈 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성사’가 될 수 있다.
[성품성사를 받음으로써 자신에게 없던 그리스도성을 획득해 그리스도의 성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성사로서의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지난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로마교구의 사제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제가 진실로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개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참사제직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사제는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 삶의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도 구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 살아야 한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사제들은 어머니 마리아의 순종과 희생의 응답을 본받아 기도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에 대해 순종하며, 목자적인 사랑으로 봉사하는 가운데 자신의 직무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제는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으로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인 삶을 온전히 살아가면서,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계속 젊음을 발산함으로써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젊음과 그리스도를 전파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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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차량 정비소의 간판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우리의 정비사는 다른 어떤 정비소보다 당신 차의 밑으로 자주 기어 들어 갈 것이며 보다 더 더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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