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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묵상 - 봄처녀 오실무렴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30 조회수362 추천수7 반대(0) 신고
사진묵상 - 봄처녀 오실무렵
                                        이순의
 
 
 
 
 
 
5월이 내일인데요.
아직도 서울은 춥습니다.
3월 어느 날,
사순시기가 막바지에 들기 전에 먼 길을 떠났습니다.
서둘러 돌아와
1년에 반절도 머물수 없는 내 본당에서
성주간을 맞고 싶어서였지요.
그런데요.
그곳에 봄처녀가 당도하셨다는데 
제게는 왜 그렇게도 갯바람이 찬지요.
그래도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은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분주해 보입니다.
 
 
 
 
묶은 저 동아줄이
많은 의미를 주네요.
사실 짝꿍은 저를 섬집까지만 바래다 주고
홀연히 또
섬을 떠나갔거든요.
청소도 제 몫이고
이웃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것도 제 몫이고
15년 전 그때처럼
짝꿍은 나만 내려 놓고 가버리는데
유행가 가사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여자는 항구!
남자는 배!
그러니 마냥 저 배를 묶어두면
일을 하지 못하지요.
배는 수평선 멀리 나가
파도의 중심에 서야 맞는거지요.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짝꿍을 배웅하고 오는데
길가에 저런 망부석을 만들어 두었더라구요.ㅎㅎ
그냥 평범한 돌인데요.
짝을 맞추어 세우고
양동이를 물지게에 달아 지우고
상모까지 쒸우니
영락없이 치마두른 여인입니다.ㅎㅎ
짝꿍을 싣고 떠난 철물선을 처다보는 제 심정 그대로입니다.
에구~! 이 무슨 청승이람!
 
 
 
 
 
 
 
 
역시!
갯가에서는 또 여인들입니다.
여인들이 용돈이라도 벌어서 쓸 요량으로 손의 수고를 빌리고 있습니다.
진짜 바람이 많이 불던데......
어휴 춥던데.......
이런 모습들 보면,
산에서 농사짓는 사람의 가슴으로
서글퍼집니다.
사진은 낭만이지만
진짜 고생이거든요.
에구~! 또 청승!
짝꿍이 나만 섬에다 두고 나가서 더 그런가 봅니다. ㅎㅎ
 
 
 
 
 
 
평화!
평화!
참 평화를 주옵소서!
인덕성당 대율 공동체 제대 아랫부분입니다.
저는 섬에를 가든, 산골에를 가든, 서울 집에 있든,
주님의 성전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바빠서 미사 참례를 못하더라도
성당 가는 길목만 보아도 좋구요.
성당을 알리는 간판만 보아도 좋습니다.
뱃머리에서 짝꿍 보내구요.
살았던 성당들,
머물렀던 공소들,
다 돌아보며
<주님, 저 왔습니다.> 신고하러 다닙니다.
참 평화입니다.
 
 
 
 
 
확실 했습니다. 봄처녀가 당도 하신 것!
저는요.
접동백보다 저 동백을 훨씬 좋아합니다.
곱지요?!
 
 
 
 
 
 
 
 
 
 
 
 
 
 
제가 다니던 인덕성당 구영공동체 뜰에도
저렇게 고운 손님들이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저 때 서울은 활량한 겨울이었는데........
반갑습니다.
 
 
 
 
 
 
 
 
 
 
 
 
 
사실 저 미사에는
인덕성당의 주임신부님 미사라고 해서 갔었는데요.
사순시기 판공성사를 주러 타 본당으로 출타 중이셨습니다.
전날에 보좌 신부님 미사에 다녀 왔으니 주임신부님 미사에도 가 뵙고 싶어서지요.
그렇게 힘들더니,
신부님 모셔 오기가 그렇게 힘들더니
벌써 세 번째 주임신부님께서 오시고,
작년부터 보좌 신부님께서 오셨습니다. 
다리로 연결 된 섬이 4개에 인덕본당 7개의 공동체(전에는 공소)를
섬 2개씩 나누어서 주임신부님과 보좌신부님께서 6개월씩
번갈아 가며 머무신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섬마을 성당의 현실은요.
제가 살을 때만 해도
면사무소라든지, 우체국, 농협, 보건진료소, 학교.......등등
공공 기관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섬에 거주하고 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뱃길이 쉽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거의 섬에 상주하는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연육교를 놓아서도 그렇고
뱃길이 짧아져서도 그렇고
그러다보니
섬에 상주하는 인구는 더 줄어들고
상주 인구는 더욱 심각해지는 노령화!
 
육지에서도 그렇거든요.
도로의 발달로 군,읍,면,단위 농촌은 대도시의 위성도시가 되어버리는!
우리나라 대부분 농촌의 현실이
도시에 살면서 농촌으로 출퇴근하는 농업의 모양을 갖춘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도 섬마을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제가 그곳에 살을 적에는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을 배를 타야 했는데
지금은 연육교가 놓아진 섬까지 25분이면 도착합니다.
나머지는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고!
그런데다가 배가 수시로 있습니다.
도시의 관광객은 하루에 두세 번 정해진 여객선을 타야 하지만
섬에 거주하거나 섬과 연관된 사람은
수시로 화물 여객선을 타도 되기 때문입니다.
공공업무조차 보아줄 인구를 배출하지 못하는 섬마을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그런 편의가 외지에서 근무자를 보내 배치시킬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어찌보면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너무 슬픈 현실이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사목의 현실은 꼭 밝음이라고 말 할 수 없어 보입니다.
더구나......
제가 제 아들 아이의 성장 과정을 되짚어 볼 때
젊은 세대 사제들의 사목은 많은 극기와 정신을 요구 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곳에 사제가 머물러야 합니다.
마을마다 개신교가 힘을 발휘하던 그때 그 시절에 비하면
어렵기는 그쪽도 마찬가지라서
통합을 한 곳도 있다하니!
우리 천주교 사제들이야 딸린 식솔들이 없으니
이제라도 섬마을의 공동체를 지켜주시게 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구가 흥하던 시절의 목사님들은 기본적으로 가족의 생계가 연관되어 있으니
어렵겠지요. 아마도 어려울 것이라는.......
 
 
 
 
 
 
 
제가 공소에 살을 적에는
저 감실 등이 1년에 하루 정도 켜지기도 하고
그나마 못 켜지기도 하고!
매일, 언제나, 성체조배를 할 수 있는 도시의 교우들은
저 감실 등의 소중함을 모르실 것입니다.
성탄이나 부활 바로 전 날 쯤에 신부님께서 오시는 해(年)에만
성탄 자정예절이나 부활 자정예절 때
우리끼리 성체를 영하라고 모셔 두고 가셨지요.
그런 날에만 하루!
감실등이 켜져 있습니다.
참으로 큰 그리움입니다.
그 아린 그리움을 돌아보며 욕심을 냅니다.
<신부님, 기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평생동안 그 섬에서 사는 어른들이 대부분인데 그거 몇 년 머물다 가실 때는 우리 주님의 성심께서 기뻐하실 만큼, 기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할께요. 젊고 어린 신부님을 두고 오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인덕성당의 연로하신 교우들도 걱정되고, 지금의 국가적 농촌 현실이 안타까워서 걱정되고, 그냥 저냥 걱정이 많았습니다. 신부님, 예수님 가슴의 심장 보이시지요?! 기쁘게 사시기를 빕니다. 아멘!>
 
 
 
 
  
 
섬마을 소식을 진작에 전해 드렸어야 했는데
많이 아팠었습니다.
수술이 아닌 것으로 이렇게 오래 심하게 앓아 보기도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소식을 이제라도 전해 드립니다.
배 타고 다녀 온 느낌으로.
섬마을에 머물고 계신 주님을 만나고 온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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