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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부활 제 5주일 - 새 계명 (김용배신부님)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30 조회수362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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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  축 부활  ♬♪♬♪♬♪♬♪♬♪♬♪♬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부활 제 5주일     새 계명
(김용배신부님)


오늘 주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을 나누시면서 우리의 가슴 깊이 새겨 둘 말씀을 남기십니다. 당신은 비록 몸으론 떠나시지만 대신 당신의 정신을 물려주시고 이제부터는 당신 정신을 통해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들 안에 같이 머무르고자 하십니다.

당신 정신은 다름아닌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이 정신을 우리에게 새 계명으로 주시고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요한 13,34). 그리하여 어디든지 사랑이 있는 그 곳엔 바로 당신이 계심을 보여 주십니다(요한 14, 23-24).

그런데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세번씩이나 힘주어 말씀하심으로써 다음과 같이 우리를 깨우치시는 듯합니다.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이웃에게로 방향을 돌려야 함을, 지금까지 받기만 한 자세에서 이제는 먼저 적극적으로 주는 자세가 되어야 함을, 사랑하는 일엔 신분의 높고 낮음의 차이가 없어야 함을 이르시는 듯합니다. 그 다음 주님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랑의 표준까지도 밝히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요한 13,34).

주님이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사랑의 행적을 보면 그분의 사랑은 당신 자신의 지위를 돌보지 않으시고 이웃의 선익만을 생각한 사랑이었으며(요한 2,1-11), 어려운 처지의 청원을 거절함이 없이 받아들이시는 사랑이었으며(요한 4,43-53), 옛 관례나 전통, 율법의 구애를 느끼지 않으신 사랑이었으며(요한 5,1-18), 베푸시는 일은 언제나 넉넉하고 넘칠 만큼 풍부히 주신 사랑이었으며(요한 6,1-15), 끝까지 풍부히 주신 사랑이었으며(요한 6,1-15), 끝까지 관대한 용서를 베푸신 사랑이었으며(요한 8,2-11), 당신이 지닌 전 능력을 쏟아 주신 사랑이었으며(요한 11,1-44), 겸손한 봉사의 사랑이었으며(요한 13,1-20), 당신 살과 피를 우리의 음식으로 주실 만큼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이었으며(요한 6,22-59), 당신 목숨까지 주저하지 않으신 사랑이었습니다(요한 10,1-21).

그런데 오늘의 우리 실정은 어떠한지요?
우리는 가정에서 가장 가까이 지내야 할 집안 사람 하나도 제대로 사랑 못하는 처지가 아닌지요?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려 하다가도 이웃의 약점이 드러나면 뒤돌아서고 마는 우리가 아니었던가요? 사랑의 실천이 자신의 손익에 따라 달라지는 타산적인 우리가 아니었던가요?
한 마디로 우리는 받는 편이 될 때엔 자신이 무한히 큰 그릇임을 의식하면서도 주는 편이 될 때엔 가장 작은 그릇으로만 의식하는 부끄러운 우리가 아니었던가요? 주님의 사랑과 우리의 실정을 견주어 보면 우리는 한 번도 사랑다운 사랑을 해본 일이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요? 설사 사랑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다 같이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서,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사랑을 시도해 봅시다.




[5월 2일]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13,31-33ㄱ.34-35>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유다가 방에서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의 묵상]
스승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권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스승님을 위하여 순교합니다. 그분의 사랑에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랑은 감동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감동시킨 것처럼’ 너희도 서로 감동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사랑을 물질로 저울질합니다. 감격의 사랑이 아니라 돈이 되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스승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잡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뒤에도 여러 번 발현하시어, 경직된 생각을 고쳐 주셨습니다. 의심 많은 토마스를 위해 한 번 더 나타나신 일,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들에게 기적을 베푸신 일, 이 모두가 감동을 심어 주신 일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제자들은 마음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감동을 주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만 생각하며 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이 생각을 극복하지 못하면 ‘감동을 주는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감동을 주면 ‘감동’이 돌아옵니다. 때로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으로 되돌아옵니다. 삭막한 현실에서 감동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은총이며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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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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