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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2일 야곱의 우물- 요한13,31-33ㄱ.34-35/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02 조회수361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31유다가 [방에서]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작 기도
하느님 아빠, 아버지. 우리 생애의 ‘어두운 밤’ 에 오직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당신께 찬란한 영광을 드리게 해주십시오.

독서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요한 13, 30) 다락방에서 예수님과 최후만찬을 나누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던 유다가 스승을 팔아넘기기로 마음을 굳히고 홀로 나간 ‘밤’ 에, 예수님은 긴 고별 설교를 시작합니다. (13, 31 – 17, 26) 제자의 배반을 바라보는 예수님 생애의 어두운 밤이자, 스승의 죽음을 앞둔 제자들 영혼의 ‘어두운 밤’ 에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 (13, 31 – 32)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 (34 – 35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유다가 나간 뒤에” (31절) 예수님은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로 말씀을 꺼냅니다. 13장 31 – 33절에서 세 번이나 나오는 ‘영광스럽게 되었다.’ 라는 표현은 얼마 후에 일어날 십자가 상 죽음이, 예수님이 유다에게 빵을 건네준 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12, 23) 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되었다.’ 라는 긍정적 어조로 당신의 ‘죽음’ 을 표현하는 이유는, 죽음이 예수님이 장차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게 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에 따르면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이 낮추어짐과 비하가 아니라 그분이 영광스럽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 죽음을 통해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목숨까지 주면서 사랑했다는 것이 찬란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13, 1) 나아가 십자가 위에서 세상의 죄를 위해 바치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아들이 죽어갈 때 아버지도 영광스럽게 되십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세상을 사랑했다는 진리가 뚜렷하게 드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들이 그분께 영광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영광의 시간은 제자들에게 ‘사랑’ 에 대해 말하는 계기가 됩니다. 33절에서 예수님은 어조를 바꾸어 제자들을 직접 ‘얘들아’ 라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부르시며, 사랑에 대한 ‘새로운 계명’ 을 주십니다. (34 – 35절) 예수님 가슴에 기대 심장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직접 배웠던 요한은 사랑에 대한 이론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생애 마지막 ‘밤’ 에 스승이 어떻게 제자들을 사랑했는지만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승을 부인할 베드로의 나약함을 ‘알면서도’, 스승을 팔아넘길 유다의 배신을 ‘보면서도’, 그런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면서까지 ‘끝까지’, 몸과 마음을 바쳐 온 힘을 다해 사랑했다는 것을 요한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13, 1 – 30)

예수님이 “내가 사랑한 것처럼” 이라고 하시는 말씀에서 ‘처럼’ 은 비교해서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랑의 방식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목숨을 주면서 제자들을 사랑했던 예수님의 사랑이 제자들 사이에서 사랑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그것과 똑같은 사랑’, 실제로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그 차원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의 사랑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이 말씀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고가 아니라 십계명처럼 지켜야 할 ‘계명’ 입니다. 하나만 주셨기 때문에 유일한 계명이고, 따라서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계명’ 입니다. 예수님은 생명까지 주면서 모세 율법의 ‘이웃을 사랑하라.’ 는 계명을 완성하면서, 그분의 삶 자체를 사랑의 잣대로 내세우시기 때문에 그 계명은 ‘새로운 계명’ 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이, 믿는 이들의 삶의 기준이 되고 공동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원칙이 될 때 그 안에서 하느님의 진실하심과 영광과 사랑이 드러납니다. (1요한 4, 7 – 21 참조) 신약성경 저자들이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처럼 사랑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근본적으로 복음의 진정성, 하느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사랑은 불가능하고 짐이 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 사랑은 마음과 입으로 실현할 수 있는 계명이 됩니다. (신명 30, 11 – 14 참조)

성찰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1코린 13, 4) 사랑은 인간이 애써 노력해서 얻고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랑은 누가 우리를 속이고 배신하고 해로운 일을 하더라도 ‘끝까지’ 하느님 앞에 함께 가겠다고, 하느님께 가는 데 그 사람의 ‘도움’ 을 ‘내 안에서’ 발견하겠다는 마음 자세입니다.

기도
주님,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합니다.(시편 145, 10)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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