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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Eucaristia (뜻: 감사, 성체, 미사)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02 조회수748 추천수16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제 5 주일; Eucaristia (뜻: 감사, 성체,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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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2010년 4월 11일 방영하였던 ‘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신부님’이란 다큐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10남매 중 아홉째로 10세에 부친을 잃고 모친이 바느질로 번 돈으로 의대까지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성당 오르간으로 혼자 피아노와 많은 악기를 다룰 줄 알게 되었습니다.

군복무 중에 갑자기 가장 가난한 이에게 해 준 것이 당신께 해 준 것이라는 성경말씀대로 사제가 되어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할 결심을 하게 되고 살레시오회에 입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 피해자가 많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수단 톤즈 마을에서 선교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루 평균 300명 이상을 진료하고 밤에 갑자기 사람들이 찾아와도 절대 얼굴을 찡그리는 법이 없었고 그냥 돌려보낸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학교도 세우고 거기에서 수학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관현악단도 만들었습니다. 이 청소년 관현악단은 남수단 대통령도 인정할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부족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수치로 알았지만 그들은 이태석 신부님의 죽음 앞에서 많이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분은 그 사람들에게 메말랐던 눈물을 되찾아준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휴가차 와서 사람들의 권유로 생전처음 건강검진을 했을 때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으나 당신이 죽는 것 때문이 아닌, 그 곳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큰 낙담을 하였지만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항상 밝은 모습으로 지내셨습니다.

그 분은 특별히 한센병으로 발이 뭉그러지고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맨발로 다녀야 하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일일이 발모양을 그려서 신발을 맞추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한 눈이 보이지 않는 한센병 환자인 아주머니께서 돌아가신 고인의 사진에 끊임없이 입을 맞추시는 모습에서 정말 많은 것을 주고가신 분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정작 고마워하는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기만을 하였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 분이 죽음을 기다리시면서 쓰신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란 책에는 그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당신의 ‘고마움’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많은 것을 주신 줄 알았지만 정작 당신이 가진 것을 베풀어줄 수 있도록 이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그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주는 것을 받아주는 사람에게 진정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직은 완전히 주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서로 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당신의 생명을 감사한 그들을 위해서 소진하셨던 것입니다. 이 이웃을 위한 사랑은 이웃에게 대한 사랑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모습이 인간만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아버지께 대한 순종이었던 것처럼,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은 결국 ‘하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신 주인이십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나왔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령님께서 당신 위에 내리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당신을 낮추시고 아버지를 높이십니다. 이것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는 모습입니다. 이 때 당신의 영을 아버지께 돌려드립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시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는 실상 아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라 아들에게 굳이 감사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당신의 모든 것을 받아주기 때문에 아드님을 사랑하십니다. 나의 사랑을 베풀어 줄 상대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상대에게 감사한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당신 사랑을 받아주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당신 모든 생명을 불사르셨듯이, 아버지께서도 당신 모든 것을 받아주고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아드님을 위해 당신 모든 것인 ‘영광’을 아드님께 주시는 것입니다. 이 영광이 당신 생명이요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당신 생명을 바치셨다면 아버지께서도 아드님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당신 생명을 바치시는 것입니다.

 

공놀이로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탁구나 테니스를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공이 없다면 두 사람은 굳이 탁구대나 테니스장에서 함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공을 상대방에게 보내면서 그 오고가는 공에 집중하며 둘이 하나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주고받는 끊임없는 움직임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공을 받아치기를 그만둔다면 공은 땅에 떨어지고 그 공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있던 그들은 다시 관계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랑은 추억이 아닙니다. 사랑은 현재상황입니다. 사랑은 현재 이 시간에 주고받는 ‘대화’와 같은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도 결코 주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당신 존재의 이유를 받게 되신 것처럼 사랑은 절대로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성령님’이고 생명이고 특별히 ‘감사’가 될 때 참 사랑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와 한 사랑을 똑같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과 아버지간의 오고가는 사랑이 우리 각자에게서도 이루어져야 비로소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똑같이 되지 않으면 그분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를 하시기 위해서 말을 거셨고 우리는 감사와 순종으로 응답해 드려야합니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방법은 항상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는 것과 삶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빵을 나누어 주시기 전에 특별히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도 적은 양의 음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오천 명이 앞에 있는데 단 두 명이 먹을 음식을 가지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니 그 음식이 모든 사람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남을 정도로 불어났습니다.

이 행위를 규칙적으로 하도록 예수님도 우리에게 예식으로 정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미사는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하느님께 제물을 봉헌하고 하느님께서는 그 제물을 우리에게 생명의 빵과 구원의 음료로 되돌려주시는 것입니다.

제대를 사이에 두고 감사와 봉헌과 은총이 서로 왔다갔다 거리면서 하느님과 인간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제대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의 제물과 찬미를 올리고 하느님은 그 제대를 통하여 우리에게 넘치는 은총을 되돌려주십니다. 이 관계가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느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미사의 어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희랍어에서 온 것으로 ‘감사’ (Eucaristia)이고 또 하나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파견’ (Missa)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감사만 올리신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그 감사를 삶으로도 보여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미사 때 감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도 예수님의 계명을 따름으로써 완전한 응답을 드려야합니다.

결국 하느님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해야 할, 즉 우리가 모든 것을 주어야 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감사’한 마음을 지닐 때, 성체성사는 비로소 우리 안에서 완성되게 됩니다.

 

 

 

 
                           

                                                           <사랑하려거든>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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