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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갔습니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02 조회수445 추천수14 반대(0) 신고
유다가 방에서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1-35)
 
미국의 시인이자 가르멜 수도회 수녀였던 제시카 파워스(Jessica Powers, Sister Miriam of the Holy Spirit ;1905-1988)가 1948년에 쓴
<저의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갔습니다(My heart ran forth)>라는 제목의 시는
사랑은 지금 당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노래하고 있다.
 
저의 마음이 먼저 달려나갔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마음을 멈추게 하고 멀리 떨어져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 씨앗이 당신 집 주변이나 이웃의 정원이나 가까운 필요한 땅에 심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까? 아니라고요? 그러면 그 씨앗은 바깥에서는 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에 알맞은 본래의 땅이 있습니다.
사랑은 먼저 가까운 곳에 뿌리를 내립니다.
저는 집으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쳤다가
마을 골목길을 거치고 아버지의 보리밭을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 옵니다.
그러는 동안 저의 마음은 집에 자비를 가져다 주면서 말했습니다.
사랑은 기어오르는 꿀풀 덩굴 같은 아주 단순한 식물입니다.
일단 뿌리를 박으면 퍼지는 재능을 갖고 있답니다.
………………………………………
우리는 사랑을 먼 곳에만 심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랑을 심되 (1)적시에 (2)적절한 장소에 심어야 한다.
(1)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는 항상 선한 일은 미루려 하고 나쁜 일은 즉시에 한다. 그렇다. 우리는 믿음, 소망, 사랑을 자꾸 미루려고 한다. 그러나 두려움, 탐욕, 분노는 지체 없이 드러낸다. 바오로 사도가 말했다.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사랑이 으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미루려고 하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지혜는 사랑은 지금 당장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점점 더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랑을 두려워하면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며, 환상에 빠져들고 감상적(感傷的)이 되어버린다. 사랑이 사라지면 감상적으로 되어버리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선한 일은 지금 바로 하고 나쁜 일은 더디게 해야 한다.
우리들이 사랑을 미움처럼 오래 하고 사랑을 재빨리 따뜻하게 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살만한 곳이 되겠는가?
한 현자가 말했다. “미래는 없습니다.”
그는 나라와 세계에 실망한 나머지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에게는 실망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다시 “미래는 없습니다. 미래는 당신의 머리 속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미래는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에게 당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라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만 말씀해주십시오.”하고 말을 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죽음이라는 마감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어디까지나나는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다.
만약 내가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이나 일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이며 사랑에 대하여 말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내일 주십시오.”하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빵이 필요하지 빵에 대한 생각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필요한 것은 지금이다. 또 하느님도 지금 필요하다. 내가 지금 사랑을 하고 있지 않으면 하느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제시카 파워스는 참으로 현명했던 것 같다. 사랑을 가냘픈 식물에 비유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 같은 잡초에 비유했다.
사랑은 민들레처럼 흔히 볼 수 있으며 낯설지 않으며 억누를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주일(主日)에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매일 사랑해야 한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소명(召命)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들 하지만 소명은 사랑밖에 없다.
 
영화 <길(La Strada)>은 1954년에 개봉된 오래 된 영화이다.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부인이자 영화에서 젤소미나역으로 나오는 줄리에타 마시나의 표정 연기가 특히 압권이다. 이 영화 찍었을 때가 서른 네 살이라니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젤소미나의 슬픈 트럼펫 소리는 평생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제목에 나타나 있는 대로 모든 사건은 두 주인공과 함께 “길”에서 일어나고 소멸된다. 하지만 이 “길”에는 특수한 효과가 숨겨져 있지도 않고, 수사학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지도 않았으며, 포장만 되어 있지 않을 뿐 우리가 두 발로 거닐고 두 눈으로 보는 평범한 “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영화를 진지하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가 끝나고 “Fine”이 나온 뒤, 젤소미나와 참파노가 다녔던 “길”이 단지 “우리가 두 발로 거닐고 두 눈으로 보는 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짐작하고, 보다 자신과 가까운 의미로 재해석하게 된다.
한 영화평론가는 “한번 지나온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오로지 그 땅을 밟고 지나갈 때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길>은, 수많은 길 위에서 일어난 방랑의 흔적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적인 장면은 젤소미나라는 백치미의 여자와 잠파노라는 매우 단순하고 인생을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사는 남자와 가볍지만 진지한 구석이 있는 마토 사이의 대화이다.
잠파노를 따라다니지만 자기 자신을 몰라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젤소미나에게
마토는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한다.
마토 : “세상에 있는 건 모두 쓸모가 있대. 예를 들면, 이 돌멩이도 어딘가 쓸모가 있어.
젤소미나 : “어디에다 쓰겠어?”
마토 : “어디에 쓰냐고... 그건 나도 몰라. 하느님만 알고 계시지.
그 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셔.
언제 나고, 언제 죽는지, 이 돌멩이가 어디에 쓰이는 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쓰일 데가 있어. 이게 소용없다면 만사 소용 없어. 적어도 난 그렇게 믿어.
너도 마찬가지야. 어디엔가 쓸모가 있을 꺼야.
설령 하느님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더라도.
 
가장 평범한 진리가 있다. 사실은 사실로서 인증(認證)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테스트를 거쳐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것들만 사실을 사실로서 인정하기 때문이다. 먼저 사실이 있고, 그 다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이 먼저 있고, 그 믿음과 의미론적으로 부합하는 것들만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의 소명이 사랑이라는 믿음,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 믿음이 생길 리가 없다.
사랑이 복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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