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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04 조회수960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5월 4일 부활 제5주간 화요일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Not as the world gives do I give it to you.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or afraid.  
(Jn.14.27)
 
 
제1독서 사도행전 14,19-28
복음 요한 14,27-31ㄱ
 
 
인간의 3대 욕망은 오래 사는 것, 부자 되는 것, 복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상처를 받고 또 복수할 마음을 품습니다.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더 크게 넉넉해졌지만,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와 사랑은 더 작아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욕망만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빅토르 위고의 단편소설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대포를 실은 배가 태풍을 만났습니다. 태풍으로 생긴 배가 흔들거리다가 글쎄 대포를 묶은 쇠사슬이 끊어진 것입니다. 배를 타고 있었던 선원들은 대포를 고정시키기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이제 그 대포를 피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혹시라도 무거운 대포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대포를 피했습니다. 이러한 긴장의 순간, 선원들은 깨달았다고 하지요.

‘우리를 진정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외부의 태풍이 아니라,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대포다.’

많은 이들이 평화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평화를 내 욕망들을 채울 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평화는 멀리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내부에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욕망들을 잠재울 때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부부들이 함께 살지 못하고 이혼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혼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적은 이유 때문에 이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네요.

실제로 치약을 끝에서부터 꼭꼭 짜지 않고 중간을 눌러 짠다고 그것 때문에 싸우다 이혼한 부부가 있답니다. 양말을 벗을 때 뒤집어서 벗지 말고 똑바로 벗어놓으라고 잔소리하다가 이혼한 부부도 있답니다. 그리고 이밖에도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에 이혼을 했다는데요, 결국 자기 안에 있는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욕망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지 못하고 평화를 얻지 못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 세상을 보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바로 평화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를 평화롭지 못하게 만드는 내 안에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욕망들을 치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당신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은 평화인 척 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로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평화의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야만 멋대로 굴러다니는 욕망을 치우고 진정한 평화를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란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평화란 영혼에서 솟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다.(스피노자)




큰 전쟁을 막은 한 줄의 글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양국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국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웠다. 그런데 이 동상으로 인해 오히려 두 나라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았다. 왜냐하면 그 동상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칠레의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 동상이 칠레에 등을 돌리고 계신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실 동상 전면은 아르헨티나를 향했고 뒷면은 칠레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 일은 칠레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노케 했다.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거칠어갔다.

양국 간의 감정이 나쁜 방향으로 치닫고 있을 때 이를 명쾌하게 극복하는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칠레의 한 기자가 신문에 쓴 재치 있는 기사였다.

“예수님의 얼굴이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서 계시는 이유는 아르헨티나가 칠레보다 더 예수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칠레인의 고조된 감정을 가라앉힐 만큼 큰 감동을 주었다. 한 사람의 긍정적이고 평화적인 마음이 두 나라의 엄청난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With You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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