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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미움을 넘어서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08 조회수568 추천수12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5주간 토요일 - 미움을 넘어서

 

 

 

한 번은 강론 때 부부간에도 아기를 출산하려는 의도가 아니면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부부관계를 아이를 출산하려는 의도로만 해야 한다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저도 이것을 잘 압니다. 많은 분들이 반발할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제가 배운 진리이니 저는 이 말을 하는데 주저할 수 없습니다.

자연법적으로 부부관계의 목적은 부부간의 사랑의 ‘일치’와 ‘자녀출산’이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첫 죄를 지으면서 육체 안엔 성욕이 들어왔습니다. 그 전엔 온전한 사랑이었지만 이젠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채우는 것으로 사랑이 변질되었습니다. 따라서 방금 세례 받아 아무런 죄가 없는 부부가 부부관계를 해도 그 안에서 성적 욕망을 채우는 죄가 조금이라도 들어가기 때문에 자녀는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죄를 물려받아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게 됩니다. 그 부부 관계 안에 어쩔 수 없이 죄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원죄는 자녀에게 끊임없이 물려지게 되어있습니다. 이를 다윗은 시편에서 ‘어머니가 뱃속에 나를 죄 중에 배었나이다.’라고 읊은 것입니다.

따라서 부부관계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되고 또 자신을 죄 짓게 하는 상대에 대한 사랑이 줄어듭니다. 마치 죄를 짓고 성욕을 느껴 자신들의 몸을 가린 아담과 하와가 서로 상대에게 책임이 있다고 미루며 갈라지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부부관계는 죄가 서로에게 들어오게 함으로써 부부의 금슬을 줄어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욕은 이타적인 사랑을 이기적은 사랑으로 변질시키고 둘의 사랑을 감소시킵니다.

 

문제는 제가 이런 말을 하면서도 만약 제가 결혼했으면 이 말대로 살지는 못했을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니 말해야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고 이런 말을 함으로써 많은 반발이 있을 것을 알지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교회에서는 부부관계를 죄로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신학교 들어갔을 때는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잘 대하려고 무진장 노력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그 사람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왜냐하면 관계가 안 좋아지면 내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오늘 복음을 읽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예수님도 미움을 받아 돌아가셨는데 그 분의 길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던 제가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청하라고 하자, ‘고통과 멸시’를 청하였습니다. 고통과 멸시가 바로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것이고 그것으로 예수님과 조금 더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닮아간다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살다보니, 내가 아무리 잘 해주어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나를 끝까지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잘해주면 좋아했다가 못해주면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할 필요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을 미워하는 유다 지도자들에게 몹쓸 욕까지 해가며 그들의 미움을 증가시키셨습니다. 어차피 미워할 이들은 미워하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입에서 나오는 쌍날칼과 같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언자들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아픔을 주기도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박해를 당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박해와 미움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예언직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냥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서, 혹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아야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박해하거든 우리보다 먼저 우리 스승님을 박해했다는 것을 믿고 오히려 즐거워합시다. 그렇게 그 분과 더 한 몸이 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묵상>>

오늘 차를 몰고 시내를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우측 차선에서 저희 차의 옆구리를 밀고 들어오는 차가 있었습니다. 저는 웬일인지 쳐다보았는데 그 운전사가 삿대질을 하며 심한 욕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앞에 고장 난 차가 있어서 자기는 비켜가려 했는데 왜 양보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태리 사람들이 다혈질인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잘못해놓고도 무조건 욕부터 해대는 모습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창문을 내리고 “여보쇼, 나는 내 차선을 가고 있었고 당신은 내 차 옆구리를 박으려고 했소. 만약 당신이 차선을 바꾸려면 공간을 찾아서 들어와야지 양보를 안 했다고 욕부터 해대는데 누가 당신이 한 욕에 합당한 사람인지 제대로 함 생각해보셔.” 그 사람은 그래도 왜 양보를 안 하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저도 제 안에 숨겨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못 봤는데 어떻게 양보를 하냐?” 소리를 지르며 차에서 내릴 기세를 취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습니다.

한 편으로는 그동안 남의 나라에서 아무 이유 없이 수많은 욕을 먹어왔던 것에 대해 보복을 한 것 같아서 시원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내면에 이런 일로 분노를 하는 모습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하시는 사람들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는 소리를 들으셨음에도 분노하지 않으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럴 것임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다 좋게는 대해주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정작 그렇게 대접을 받을 때는 화를 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결코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해서 잘 대해 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 잘 대해주지 않으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보상을 바라며 하는 사랑이 아닌데도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할 때 그것이 아주 작더라도 그 돌아오는 사랑만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이 큰 덕을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랑은 그저 주는 것 같습니다. 그 보답을 받으면 참 좋은 일이지만 그 사랑에 보답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당신 사랑을 거부할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 사랑을 받아 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지금도 다시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 사랑한다는 말은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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