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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09 조회수718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The Advocate,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will teach you everything
and remind you of all that I told you.
(Jn.14.26)
 
 
제1독서 사도행전 15,1-2.22-29
제2독서 요한묵시록 21,10-14.22-23
복음 요한 14,23-29
 
 
어느 스승이 제자들을 모아놓고는 마당에 커다란 원을 그려놓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어디를 다녀올 테니, 너희는 그 동안 이 원 안에도 있지 말고 또 원 밖에도 있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뒤에 밖으로 나가셨어요.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 안에도, 원 밖에도 있지 말라는 것은 원을 구분 짓는 금위에 모두 서 있으라는 것일까 싶었지만, 그것은 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발은 원 안에 또 한 발은 원 밖에 집어넣고 있었지만, 이것 역시 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제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었지요.

잠시 뒤, 스승님이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할지를 모르는 제자들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신 뒤, 빗자루로 원을 싹 지우는 것입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원 안에 있는 것도 또 원 밖에 있는 것도 아니기 위해서는 원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주위에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내 자신이 그 주인공일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 힘듦의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그려 놓은 아니면 스스로 그려 놓은 기준이라는 원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었을까요? 즉, 세속적, 물질적 기준에 의해 우리는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준의 원만 지워버리면 쉽게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지만, 우리들은 차마 이것들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이라는 이 기준들은 사랑의 문제에서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고유한 판단 기준인 원을 만들어 사랑을 저울질 하지요.

“네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저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 나한테 아무것도 주지 않는데 사랑하라고? 미쳤냐?”

이 세상의 관점으로 손익을 따지는 모습들,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하나의 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입으로는 많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그 원을 지우는 방법, 그리고 사랑의 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기준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힘들어하지요.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해주십니다. 이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해줍니다. 이로써 주님 안에서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즉, 내 안의 원을 지우는데 성령께서 큰 도움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성령을 받아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부정적인 원을 말끔하게 지우고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선택도 분명해 집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내 안에 잘못 그려진 원을 지우는 것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원, 이기심과 탐욕의 원, 미움과 다툼의 원, 분열과 의혹의 원, 거짓과 불신의 원 등을 말끔하게 지워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주님을 나의 기준으로 내세워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도스토예프스키).




마음의 주인이 되라(법정, ‘무소유’ 중에서)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드는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 들이다가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 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Steve Barakatt - Private Les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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