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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요히 있으면 물은 맑아진다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12 조회수731 추천수19 반대(0) 신고

고요히 있으면 물은 맑아진다  - 도종환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반가워하면서도 긴장한다. 
내가 아주 조용한 모습으로 지내거나 
접근하기 까다로운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여러 번 자리를 같이 하거나 함께 지내면서 
흉허물이 없는 사이가 되면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재미있게 놀고 농담을 해대며 
입이 찢어져라 웃는 모습을 보고서는 글을 읽을 때 
상상하던 모습과 너무도 다르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모습이 다 내 모습이란 걸 보면서 혼란스러워 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장소 어떤 시간 중에 접한 
그 사람의 이미지를 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여러 가지 모습이 다 내 모습이란 걸 나는 안다. 

고요한 새벽 연못처럼 맑게 고여 있는 것도 내 모습이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 뛰어 다니는 아이들과 뒤섞여 함께 즐거워하다가
 흙탕물이 된 모습도 내 모습이다. 

미역을 감도록 자리를 내 주고 한가하게 누워 있는 모습도 
내 모습이고, 낚시꾼에게 가진 걸 매일 빼앗기면서 
한 마디도 못하는 게 또한 내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배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오염되어 있기도 하고 
가뭄으로 바닥이 다 드러나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도 내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면 늘 고요한 자기 모습으로 돌아온다. 
햇빛 속에서는 햇빛과 지내고 먼지 속에서는 먼지와 함께 있지만 
혼자가 되면 평상심으로 돌아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틈만 나면 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 혼자 조용히 있는다. 

조용히 있으면 연못의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아지듯이 
그렇게 맑은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것도 내 얼굴 중에 하나고 그럴 때 만나는 글들도 
내 마음의  편린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뿐이다. 

두 얼굴, 여러 얼굴을 갖는 것이 아니라 물이 물결을 이루다가 
잔잔해지거나, 흐려졌다가 가라앉는 것과 같은 
변화가 있을 뿐이다.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울 때 유난을 떨거나 
기이한 행동으로 오체투지를 하지도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 어디다 따로 오피스텔을 잡거나 
거창한 서재를 마련하지도 않았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 야단법석을 벌이거나 
괴로움을 호소하며 나다니지 않았다. 
그건 물이 맑아지게 한다고 뛰어 들어가 물바가지로 
흐린 물을 퍼내고 있는 것이나 같다고 생각한다. 

흙탕물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제 발길, 제 몸짓으로 끊임없이 흐린 물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그 몸짓 끝나기 전에는 물이 맑아질 리 없다.

고요히 있는 것이 최선이다. 
가만히 있으면 흐린 것은 아래로 가고 물은 맑아진다. 
마음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맑아지면 마음의 본바탕과 만나게 된다. 
맑아지면 선해지고 선해지면 욕심도 삿됨도 가라앉게 된다. 
허정무위(虛靜無爲)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런 시간에 중요한 것을 결정하고 그런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 깊이 있는 사람이 된다. 
물론 나머지 시간은 또 화광동진(和光同塵)하며 지낸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지만 영원히 흔들고 있는 바람은 없다.
불던 바람은 가고 나무는 다시 본래의 제 모습으로 서 있게 된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천둥 번개가 하늘을 가르기도 하지만 
구름은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다. 
그러면 하늘은 언제나 제 빛깔로 거기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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