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13 조회수980 추천수2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5월 13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You will weep and mourn while the world rejoices.
You will grieve, but your grief will turn to joy.
(Jn.16.20)
 
 
 
제1독서 사도행전 18,1-8
복음 요한 16,16-20
 
 
음식점을 경영하는 어떤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이 자매님께서는 친한 친구의 인도로 성당에 나가게 되었고, 1년 동안의 예비자 교리를 통해 세례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그녀는 정말로 열심히 살겠다고 부끄러운 신앙인이 되지 않겠다고 주님께 다짐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거룩한 주님의 날인 주일에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자신이 번 것의 1/10은 다시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했지요.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일에 음식점을 열지 않으니 단골손님들이 떨어지고 장사가 잘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십일조까지 봉헌을 하니 재정 상태는 더욱 더 어려워졌지요. 주님을 믿으면 행복해진다고 했는데,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지니 행복과 멀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신부님과 상담을 했지만,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어렵고 힘든 시간도 은총의 시간이라면서 감사의 마음을 갖고 더 열심히 생활하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성당에 다녔고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더욱 더 참담했습니다. 옆집은 손님들로 가득한 반면에, 자기 가게는 파리만 날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웃 사람들은 이 음식점이 예수님을 믿어서 망했다고 비웃었습니다. 결국 창피해서 이사를 갔답니다. 그런데 집을 판 지 일주일 후, 우연히 신문에서 팔았던 그 지역이 도로 확장으로 모든 집을 철거한다는 기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자신은 기사가 나가기 전에 팔아서 제 값 다 받고 나올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많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이제야 그 자매님께서는 “감사합니다.”를 외칠 수가 있었답니다. 즉, 장사가 안 된 것도 이사를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배려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주님의 일은 이렇게 인간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그 결과를 보면서는 “감사합니다.”를 외칠 수가 있지만, 그 전까지는 얼마나 많은 아픔과 시련 속에서 힘들어합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늘 좋은 것만을 주신다는 것, 그래서 세상의 기준과 다를지라도 끝까지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주님의 기준이 다름을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십니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상처 입은 그 순간이 나의 삶을 완전히 역전시킬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의 힘으로 큰 기쁨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자극시키기보다는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영향을 미쳐라(존 우즈).





내 인생은 작업 중(박범신, ‘산다는 것은’ 중에서)

얼마 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진행자는 “선생의 생애를 한마디로 축약해서 말한다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 인생은... 작업이었지요.”하고 대답했다. 그 질문에 맞닥뜨렸을 때, 머릿속에 ‘사랑’이 떠올랐다. ‘작업’이라고 말을 바꾼 것은 ‘사랑’이라는 낱말이 너무 낡고 상투적이라고 느껴서였다.

“작업요? 무슨 작업 말씀인가요?” 진행자가 고개를 갸웃하고 반문했다.

“연애하기 위해 상대편을 유혹한다는 그 작업요. 나는 글을 쓸 때도 꼭 독자에게 작업을 거는 기분이에요. 내 진심을 과연 알아줄까. 회답이 올까. 글을 쓰기 전엔 늘 그런 의문들 때문에 초조해요.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젊은 저들은 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 줄까. 환호하며 동의해 줄까, 뭐 그런 생각을 해요. 집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삼십 년 넘게 함께 산 아내한테 작업을 해요. 애들한테도요. 정말 그래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작업이었다는 확신이 들어요.”

‘작업’은 사랑 그 자체보다 사랑을 향해 전진하는 과정 속의 ‘기술’이라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그렇더라도 사랑의 기술 중 가장 으뜸이 ‘진정성’이라고 전제하면 용어가 갖고 있는 느낌이 그다지 중요할 건 없을 것이다.

아무렴. 사랑에 있어 기술은 ‘과학’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본원적 욕망을 갖고 있고, 또한 사랑의 풍향에 예민한 안테나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진정성이 없는 기술은 통하지 않는다. ‘작업’은 그래서 고통스럽고 황홀하다.
 
 
 
 
 
Beloved - Michael Hoppe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