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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16 조회수775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5월 16일 주님 승천 대축일
 
 
 
 "Men of Galilee," they said,
"why do you stand here looking into the sky?
This same Jesus,
who has been taken from you into heaven,
will come back in the same way
you have seen him go into heaven."
(Acts.1.11)
 
 
제1독서 사도행전 1,1-11
제2독서 에페소 1,17-23
복음 루카 24,46ㄴ-53
 
 
저는 요즘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일상의 모습을 찍곤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찍은 사진을 저 혼자만 보기가 아까워서 제 카페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보니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더라는 것이지요. 사진기만 갖다 대면 곧바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물론, “찍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저는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 사진 찍는 것이 싫어요.”

그렇다면 그분의 얼굴이 못생겼을까요? 아닙니다. 멋있고 아름다운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사진기에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하긴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는 연예인들이 더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쓰면서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다른 동료 연예인들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외적인 모습으로 인해서 자신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무척 슬픈 것 같습니다. 이 외적인 모습은 영원하지 않으며, 나를 이루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사람을 더욱 더 많이 기억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외적인 세계를 조작함으로써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계발함으로써 진정한 영광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아름다움을 간직할 때 우리들은 자신감을 갖고 이 세상을 더욱 더 기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40일 뒤에 승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의 제자들 모습은 오늘 제1독서를 통해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지요. 아마 이제 예수님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를 걱정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의 죽음 이후 보여주었던 제자들의 미성숙한 모습들이 불과 40일 만에 완벽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리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승천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외적 모습에 의존하는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즉 스스로 내적 아름다움을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천사가 말하지요.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저에 대한 온갖 비판이 가득했지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비판을 받을만한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러한 비판을 받을 만큼 막 살지도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 편지의 내용이 제 머릿속을 잘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생각 중에 우연히 방 정리를 하다가 그 동안 제가 받은 편지와 카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편지와 카드 안에는 저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 대한 비판이 담긴 딱 한 통의 편지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저에 대한 칭찬이 담긴 수많은 편지는 전혀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지요. 마치 하늘만 쳐다보던 제자들처럼 저 역시 부정적 평가 하나만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내적 아름다움을 위해 우리 곁에서 늘 지켜주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한 기억과 자신감이 승천하신 주님의 모습을 쫓아 영광의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네 우물이 가득 차 있어도 목마름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이미 억누를 수 없는 목마름이 아니겠는가?(칼릴 지브란)




격이 높은 의로움으로(차동엽, ‘행복선언’ 중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같은 대학에서 공부한 두 친구가 있었다. 그중 한 친구는 은행가가 되었고, 다른 친구는 판사가 되었다.

20년이 지난 어느 날, 은행가가 된 친구는 수백만 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 사건은 판사가 된 친구에게 배당되었고 언론은 사태 추이에 큰 관심을 쏟았다. 만약 은행가의 죄가 입증되더라도 피고가 친구라는 이유로 판사가 관대한 처벌을 내릴 것인지, 오히려 언론의 비난을 의식해서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을 내릴 것인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재판 당일, 배심원들에 의해 내려진 판결은 유죄였다. 판사는 해당 죄목에 적용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형량인 수십억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런 뒤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법복을 벗은 다음, 친구를 다정히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모든 재산을 팔았네. 이제 이것으로 자네의 빚을 청산하도록 하세.”

격이 낮은 의로움의 시선은 날카롭고 차갑기만 하다. 격이 높은 의로움의 시선은 오히려 부드럽고 따뜻하다.

우리는 ‘다름’을 너무 쉽게 ‘틀림’이라는 말로 바꾼다. 우리가 편가름을 하고 노선 싸움을 하는 것도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한 사회가 될 때, 서로의 행복이 되살아난다.


 
 

David London - Against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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