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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 사람, 새 공동체" - 5.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16 조회수359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5.16 주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

사도1,1-11 에페1,17-23 루카24,46ㄴ-53

 

 

 

 

 

"새 사람, 새 공동체"

 

 

 

오늘 아침 성무일도 에페소서 말씀이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헛된 생각을 하고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무지하고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덕적 감각을 잃고 제멋대로 방탕에 빠져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리가 있을 따름인데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웠다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 승천대축일에 그대로 들어맞는 말씀입니다.

오늘 부활 승천하시는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혀 주십니다.

아침성무일도 시 다음 아름다운 찬미가도 생각납니다.

 

“빛나는 구름을 타고 올라가시며 믿는 이 모두에게 희망 주시고

  일찍이 원조들이 닫아 버렸던 낙원의 닫힌 문을 열어주셨네.

  하늘로 오르시는 예수님이여 주께서 우리 마음 당겨주시고

  주님과 아버지의 성령발하사 하늘서 우리에게 보내주소서.”

 

하늘로 오르신 주님을 통해

우리 본향을 향한 하늘 길이, 하늘 문이 활짝 열린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는 말씀이

그대로 입증된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바로 승천하신 주님께서 주신 이 희망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부단히 우리를 하늘 희망을 향해 들어 올려

새 사람 되어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저께 에버랜드에서의 공동체 소풍 시

두 가지 아주 평범하나 중요한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하나는 공동체요 하나는 인간의 책무에 대해서입니다.

에버랜드에 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혼자 온 사람은 거의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등 모두 무리지어 몰려 다녔습니다.

저 역시 수도공동체에 속해 있었기에 갈 수 있었지

혼자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그 즐겁게 다니는 무리들 중에

혼자라면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고 쓸쓸하겠는지요.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한 날입니다.

또 하나는 에버랜드 내에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자연환경과 온갖 동식물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관리인으로서 모든 피조물을 잘 관리하고 보호해야 하는

인간의 책임감 역시 절감한 날입니다.

믿는 이들의 삶과 공동체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중심을 향한 삶이자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래야 새 사람, 새 공동체입니다.

함께 모였다고 공동체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느님 중심을 향해 모였을 때 공동체입니다.

참으로 견고한 공동체요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공동체입니다.

하느님이 중심이 되지 않은 공동체,

십중팔구 이기적 폐쇄적 공동체로

무너지기도 쉽고 부패 변질되기도 쉽습니다.

 

다 제 각기 흩어져 있는 산야의 초목들 모두가 하늘을 향하고 있듯이

우리 또한 하늘을 향해 살아야 늘 푸른 삶에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부활 승천하시는 주님은 바로 우리 공동체의 일치와 희망의 표지입니다.

 

승천(하늘에 오름),

귀천(하늘로 돌아감),

소천(하늘로 부르심)이란 말 중

‘하늘 천(天)’은 우리 삶의 중심이자 본향이신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하늘 중심을 잃지 말고 살라고 어디나 눈 들면 늘 하늘입니다.

영혼의 고향,

하늘을 잊고,

하늘의 하느님 중심을 잊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부활 승천하시어 시야에서 사라져 하늘이 되신 주님이십니다.

하늘만 넋 놓고 바라보는 갈릴래아 사람들을 향한 말씀 역시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오실 것이다.”

 

이미 하늘이신 주님은

당신의 말씀과 성체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지금 여기 땅에서

하늘이신 주님 안에서

하늘이신 주님을 향해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하늘과 땅은, 이상과 현실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늘의 이상을 향할수록

지금 여기 땅의 현실 깊이에서 하늘을 살게 되고

우리는 끊임없이 하늘이신 주님을 닮아 새 사람이 되어갑니다.

 

 

 

주님을 찬미하는 삶이자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래야 새 사람, 새 공동체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을 향한 삶은

저절로 찬미의 삶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찬미가 주님 중심의 삶을, 공동체를 만들어 줍니다.

땅에 현실에서 하늘의 이상을 살게 합니다.

이상적 현실주의의 삶을, 공동체를 이루어 주는 방법은 주님 찬미뿐입니다.

 

찬미의 종교가 그리스도교요 찬미의 사람이 그리스도 신자입니다.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승들 역시 ‘찬미의 사람’이라 정의합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의 기도가 없었다면

여기 수도공동체는 벌써 붕괴되어 사라졌을 것입니다.

주님 찬미에서 샘솟는 기쁨이요 행복이요 구원체험입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두를 한 가족으로 만들어 주는

주님 찬미입니다.

주님 중심의 공동체를 견고히 해주며

세상 피조물들에 대한 우리 책임감을 고취시켜줍니다.

 

“해야 달아 주님을 찬미하라.

  하늘 위의 물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불과 열아 주님을 찬미하라.

  얼음과 눈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빛과 어둠아 주님을 찬미하라.

  번개와 구름아 주님을 찬미하라.

  땅아, 산과 언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땅에서 싹트는 모든 것들아, 샘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바다와 강들아, 고기와 물에 사는 모든 것들아.

  하늘의 새들아, 짐승과 가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바로 이 찬미의 영성을 그대로 전수 받은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 중에서

이 찬미에서 제외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찬미가 주님 안에서 하나의 하느님 가족의 우주 공동체를 이루어줍니다.

 하늘과 땅이 화해되어 하나로 만들고

사람과 자연이 화해되어 하나로 만드는 주님 찬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치는 주님 찬미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우선 착수한 것도 하느님 찬미였습니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하늘만 바라보지 않고

즉시 삶의 제자리 예루살렘에 돌아와

하느님 찬미에 전념한 제자들은

말 그대로 이상적 현실주의자들이요,

우리 분도회의 정주 수도승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똑같습니다.

영육에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찬미의 기도입니다.

에버랜드에서의

아주 평범하나 중요한 두 가지 깨달음에 대한 답도

바로 여기 있음을 깨닫습니다.

바로 끊임없는 주님 찬미가

주님 중심의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요,

피조물에 대한 책임감을 드높여준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목사님들의 피정에 강의하러 갔을 때도

강의 시간과 식사시간 외에는

온통 찬미 노래 기도를 바치는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자 공동체여야 합니다.

 

우선 성령께 활짝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성령은 사랑이요 생명이요 빛이요 주님의 현존입니다.

진정 우리 삶의 중심이신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 찬미에 전념할 때 주님께서 선사하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사실 성령의 도움 있어야

하느님 탐구도 탄력이 붙고 하느님 찬미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다음 대목 역시 성령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성령을 받을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비로소 충만한 존재의 살아있는 삶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주님 승천 대축일 미사를 통해

아낌없이 당신 성령을 선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에서 소개하는 성령의 은혜는 얼마나 풍성한지요.

 

지혜와 계시의 성령 덕분에 주님을 알 수 있고,

성령께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실 때

부르심 받은 우리의 희망이 어떤 것인지,

또 주님께 받게 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됩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눈 뜬 맹인의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거니와

어떤 내적 자유도 누릴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주셔야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 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을 떨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오늘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 편에 앉히셨습니다.

바로 이 승천하신 그리스도로 충만한,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 믿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우리 믿는 이들의 공동체,

바로 이게 우리의 자랑이지 긍지입니다.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데

감히 세상 누가 이 공동체를 다칠 수 있겠습니까?

성령으로, 그리스도로 충만할 때

끊임없이 새 사람, 새 공동체로 업그레이드됩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은

우리의 복된 운명을, 우리의 승천을 미리 보여줍니다.

 

오늘 주님께서 하늘 문을, 하늘 길을 활짝 열어 주셨기에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새 사람의 새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새 사람으로, 새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중심을 향한 삶이자 공동체입니다.

 

주님을 찬미하는 삶이자 공동체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자 공동체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은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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