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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미사 묵상과 강론] 용기를 내라, 실전(實戰)이 남았다 - 박상대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17 조회수47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0년 5월 17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29-33)


 In the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courage,


I have conquered the world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선교한다. 요한의 세례만 받은 이들에게 예수님의 세례를 다시 베푼 것이다. 그리고 성령에 관한 가르침을 남긴다. 바오로는 그곳에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펼친 것이다. 성령께서는 그와 함께 계시며 새로운 힘을 주셨다(제1독서). 스승님께서는 제자들이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것을 아신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실망할 것도 아신다. 그러기에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신다. 당신의 평화를 빌어 주시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스승님의 말씀은 확신에 차 있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실망을 내다보십니다. 당신의 죽음 때문에 좌절하며 돌아서는 모습입니다.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스승님의 담담한 목소리입니다. 그 말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제자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다시 일어서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이 되었더라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힘을 주십니다. 세상을 이겨 내신 당신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실망을 안고 성당을 떠나갑니다. 좋아서


입교했고 세례까지 받았는데, 무엇인가 ‘걸림돌’이 되어 발길을 돌립니다. 생각해 보면 ‘신앙과는 무관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신자들과 맺는 ‘관계’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에게서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믿음의 자신감’을 앗아 간 것입니다. 복음 말씀에서 ‘신앙의 힘’을 되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빛이십니다. 에너지 자체이십니다. 그분께 다가가면 그만큼 삶의 어둠과 연약함은 사라집니다. 그분의 힘이 오시면 ‘단박에’ 밝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신앙도 없습니다.      



☆☆☆


 

한 농부가 우연히 ‘매’ 알을 주웠습니다. 집으로 가져가 닭장에 있는 계란 사이에 두었습니다. 얼마 후 알에서 ‘새끼 매’가 태어났습니다. 이 새끼 매는 점점 자라더니 ‘어정쩡한 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동거지는 닭과 꼭 같았습니다. 닭처럼 꽥꽥 소리를 지르고 가끔 파닥거리며 뛰어오르지만 얼마 못 날고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닭처럼 땅에 떨어진 낟알이나 곤충을 잡아먹었습니다.


어느 날 이 ‘어정쩡한 매’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진짜 매’를 발견했습니다. 유유히 날고 있는 모습이 부러운 듯, 옆에 있는 수탉에게 묻습니다. “저게 무슨 새냐?” 수탉은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으로 답합니다. “저건 바로 매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새지.” “정말 대단해! 나도 매처럼 날고 싶어.” 수탉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꿈 깨! 우리 닭은 매하고는 근본적으로 달라.”


꿈을 포기한다면 ‘어정쩡한 매’는 끝가지 닭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날아다니는 연습’을 한다면 머지않아 ‘진짜 매’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스승님을 닮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에 그들 앞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박해와 시련을 견디어 내야 스승님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싫어 ‘제자리걸음’만 한다면 깨달음은 까마득하게 됩니다.



★★★


 


 요한 복음의 주제는 ‘빛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께서 오셨기에 ‘어둠의 세상’은 ‘빛의 세상’으로 바뀔 수 있었다고 요한 복음은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하게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빛뿐입니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이라도 새벽이 오면 사라지고 맙니다.


어둠은 악의 요소입니다. 그리고 빛은 선의 요소입니다. 누구라도 세상을 살다 보면 악의 요소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 체험은 인생에 어둠을 남깁니다. 무엇으로 몰아낼 수 있을는지요? 빛의 생활밖에 없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선행’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직업이 어둠일 수 있습니다. 자라 온 환경이 어둠일 수 있습니다. 맺고 있는 관계가 어둠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직업이나 관계를 단박에 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는지요? 복음 말씀에서 답을 찾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습니다. 빛이신 그분께 다가가면 그만큼 어두움은 사라집니다. 그분의 힘이 내 안에 머물면 그만큼 나는 밝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용기를 내라, 실전(實戰)이 남았다†


-박상대 신부-


오늘 복음에 들어가기 전에 바로 앞의 구절을 먼저 읽어보자.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28절) 예수께서는 이 한마디의 문장으로 당신 자신의 원초적인 신원(身元)과 파견(派遣), 그리고 파견임무의 성취(成就)와 아버지 우편에 좌정(坐定)하실 것임을 밝히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지금은 주님께서 조금도 비유를 쓰지 않으시고 정말 명백하게 말씀하시니 따로 여쭈어 볼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하고 말한다.(29-30절)


제자들이 주님의 모든 지식을 깨달았다니, 그래서 주님을 확실히 믿기까지 한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느닷없이 제자들의 명오(明悟)가 열린 것인가? 물론 갑자기 안개가 걷히고 어떤 깨달음에 사로잡힐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긴 고별사가 이제는 지루할 때도 되었을 것이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이라 했던가?


그렇다고 제자들을 너무 폄하하지는 말자. 이제는 그들도 깨달음을 얻을 때가 되었다. 아니 벌써 얻었다. 적어도 예수께서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이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너희가 이제야 믿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튼 예수님의 단 한마디 말씀이 제자들의 모든 의문을 말끔히 씻어버렸다. 의문의 제거는 믿음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제자들의 응답은 이제 예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이다.(30절)


이 믿음이 제자들 편에서는 확실한 믿음이라고 하지만(31절)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다. 아직 진리의 성령께서 임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의 깨달음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협조자이신 성령께서 임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의 믿음은 여전히 약하기 그지없다. 예수께서 보시기에 제자들의 믿음은 풍전등화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러나 이제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 두고 제각기 자기 갈 곳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아니 그 때는 이미 왔다"(32절)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은 조금 후 벌어지게 될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 제자들을 위한 '대사제의 기도'(17장)가 끝나면 예수께서는 당신을 체포하기 위해 들이닥치는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순순히 자신을 내어줄 것이다.(18,1-11) 제자들의 믿음은 적어도 그 때까지는 유효하다.


요한복음도 같은 맥락이지만 마태오복음은 "그 때에 자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달아났다"(마태 26,56)고 명확히 보도하고 있다. 그 때가 되면 제자들의 믿음은 즉시 불신(不信)으로 변할 것이다. 그들은 스승을 홀로 버려 둔 채 도망가고, 각자에게 유익한 위치로 몸을 감출 것이다. 제자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신뢰는 변함없다.(32절)


예수님의 한 말씀(28절)에 제자들은 예수께 대한 믿음을 확실히 하였다. 그러나 이 믿음은 학습적(學習的) 차원에 불과한 믿음이다. 믿음의 실제적(實際的) 차원은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믿음의 실제적 현장감(現場感)이 많이 부족하다. 고난(苦難)의 시간이 와야 제자들은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가를 체험하게 될 것이며, 역경과 박해 속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고난의 시간을 위해 예수께서는 약해빠진 제자들을 고무(鼓舞)하신다. 예수께서 곧 당하게 될 고난 가운데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아버지께서 아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이며,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자들이 고난의 시간을 겪게 될 때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용기로 삼아야 한다. 세상은 그 때 '예수를 죽였다'고 자부(自負)하겠지만, 실상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33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뼈저리게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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