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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 야오 썅차이(不 要香菜)- 최강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18 조회수661 추천수9 반대(0) 신고

부 야오 썅차이(不 要香菜)

 

 http://www.catholic.or.kr/

 

     요즘처럼 날씨가 더운 날에는 끼니때마다 불 옆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래서 간단한 아침을 제외하고 점심과 저녁은 주로 밖에 나가서 해결을 하게 되는데, 맞벌이 부부가 많은 탓에 밖에서 음식을 사먹는 일이 잦은 중국에서는 집에서 직접 준비하는 것보다 이렇게 밖에서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싸게 먹힌다.


    그런데 집에서 음식을 준비할 때는 냉장고를 열어서 눈에 띄는 재료로 후닥닥 요리를 해 먹는 방법 밖에는 다른 길이 없으니 메뉴를 정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매번 밖에서 사먹는 음식의 메뉴를 결정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썅차이香菜’가 들어간 음식은 입도 대지 못하는 혀 짧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썅차이는 우리 말로는 ‘고수’, 혹은 ‘원채’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미나리과에 속하고 생김새 역시 미나리와 흡사하게 생긴 식물로서 지독히 강한 향 때문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익숙해지기 힘든 채소의 일종이다. 그런데 이런 썅차이를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파와 마늘을 국물에 넣어 먹듯이 대부분의 따뜻한 음식, 특히 내가 좋아하는 생선요리나 면이나 탕과 같은 국물 음식에는 꼭 넣어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썅차이는 중국 음식의 맛을 내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가장 독특하고도 중요한 향신료라고 할 수 있다. 중화권에서 활동하는 외국 선교사들에게는 썅차이의 맛을 얼마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중화문화에 대한 적응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도 말하는데 나에게는 아직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일 뿐이다.


    쌍차이와 함께 또 한 가지,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의 입맛을 괴롭히는 것이 양꼬치를 먹을 때 찍어먹는 ‘쯔란(孜然)’이라는 향신료가 있다. 나는 이 쯔란에는 완벽하게 적응을 마쳐서 지금은 먹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데도 유독 썅차이만큼은 아무리 시도를 해봐도 쉽게 친해지지가 않는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썅차이를 먹어본 경험은 캐나다의 어느 한인 본당에 잠깐 머무르게 되었을 때 그곳의 신자 분들과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러 갔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아직 한국에 베트남 쌀국수집이 요즘처럼 유행하던 때가 아니라서 아마도 베트남 쌀국수 역시 처음으로 먹게 되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때 동행한 신자 분들 중 한 분이 갑자기 ‘신부님, 실랜트로cilantro 드시는 거 괜찮으세요?’하고 묻는 것이었다. 실랜트로? 나는 그때 실랜트로가 뭔지도 몰랐었고, 또 그때 당시에는 아직 서먹한 사이였던 그 분에게 괜히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뭐요? 아, 예! 저는 아무 거나 잘 먹습니다’하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함께 갔던 신자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어머, 어머, 역시 외방선교회 신부님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시군요’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결국 당신들은 실랜트로 빠진 쌀국수를 주문했고 내 것만 미나리 한 다발 얹어 놓은 것처럼 수북한 실랜트로 쌀국수를 주문해서 먹게 되었는데 그때 먹은 실랜트로가 바로 썅차이다. ‘외방선교회 신부님이라 뭐가 달라도 다른’ 최 신부가 음식을 먹다가 그렇게 빨리 배불러본 적이 아직까지 없다. 두 세 젓가락인가 들고서는 바로 배부르다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달려가는데 남은 자매님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저 신부님은 보기보다 음식을 많이 안 드시네.”


    그렇게 시작된 썅차이 쌀국수와의 첫 만남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썅차이의 ‘썅’ 소리만 들어도 머릿속이 썅차이 향으로 꽉 차면서 바로 속이 불편해 진다. 그러니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여간 조심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다. 썅차이가 들어가는 음식인지 아닌지를 잘 모르는 음식을 시킬 때는 틀림없이 보험들 듯이 ‘부 야오 썅차이 (썅차이 넣지 마세요)’라는 말을 꼭 덧붙여야 한다.


    그런데 가끔씩 종업원들이 깜박하고 썅차이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가져올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썅차이를 먹지 못한다고 분명히 미리 말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면서 음식을 다시 준비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럴 때마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썅차이를 못 먹는 선교사라는 사실에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한국에 살면서 김치와 된장찌개 냄새를 싫어하는 외국 선교사를 만났을 때 들었던 기분의 정 반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불편하고 미안하다.


    오늘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집 근처 식당에 가서 돼지고기 완탕을 시켰더니 잠시 후 종업원이 국물에 썅차이가 수북하게 떠있는 완탕을 가져왔다. 조금 전 썅차이 넣지 말라고 말했는데 음식이 잘 못 준비된 것 같다고 말하니까 그 종업원은 퉁명스럽게 ‘그럼 기다리쇼’ 한마디를 남기고 완탕 그릇을 획하니 걷어가 버린다. 잠시 후 같은 종업원이 완탕을 가져왔는데 이건 새로 준비된 음식이 아니라 조금 전 가져갔던 음식에서 둥둥 떠 있던 썅차이만 슬쩍 건져내고 다시 가져온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썅차이가 수영하고 지나간 수영장 물맛도 알 정도로 썅차이에는 예민한 사람인데 내가 그토록 긴 시간 뜨거운 국물에 빠져있었던 썅차이 맛을 모를까? 그런데 이럴 때 다시 종업원을 불러서 음식을 바꿔달라고 말하기가 참 예매하다. 하루 이틀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이라면 화까지 내면서 다시 제대로 해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평생을 중국 땅에서 중국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선교사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생각 한다면 편하게 그럴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오늘은 눈을 딱 감고 그 음식을 다 먹기로 했다. 그 종업원의 건망증에 하느님의 섭리가 분명히 작용했으리라고 굳게 믿으면서 한 숟가락, 두 숟가락, 그토록 강한 향이 진동하는 돼지고기 완탕을 먹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완탕을 먹는 동안 내내 캐나다에서 먹었던 그 문제의 ‘실랜트로 쌀국수’를 먹었을 때의 불편한 맛이 내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먹고 있는 썅차이 완탕이 불편하다기 보다는 그때의 기억 속으로 완벽하게 돌아가서 그때의 그 쌀국수를 먹고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하! 그때의 시간은 이미 과거로 흘러갔을지 몰라도 그때의 교만함은 내가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는 이상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내 생각에, 내 언어에, 내 행위에 머무르게 되는구나! 내가 만약 그때 한 마디를 이렇게 말했었더라면 지금 이곳 중국에서 먹고 있는 썅차이 맛이 어땠을까? “실랜트로요? 그게 뭐지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 정확히 알지 못하면 누구에게라도 다시 겸손하게 물어보는 것, 자기 스스로 풀기 어려운 문제는 어렵고 힘들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자신의 거짓된 모습과 허물을 거짓과 허물이라고 용기 있게 밝히는 것이 오늘 하루, 그리고 매 순간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기본적인 삶의 덕목이다.


    이미 지나 간 과거의 부족함이 지금, 그리고 여기서조차 확실하게 깨달아지지 않는 이상 그 부족한 면모는 그 사람의 내일까지 지배하고 말 것이다. 사람들 살아가는 거...... 뭐 별다른 거 있나? 그저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하면서 단순한 하루를 살아가는 거지 뭐!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데서부터 인생이 복잡하게 꼬여 가더구먼.


    양꼬치를 먹을 때 함께 먹는 ‘쯔란’은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썅차이가 폭 빠졌다 간 돼지고기 완탕 한 그릇 비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도 다 이유가 있다니까! 아직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가볍고 경쾌한 소풍 같은 삶인지를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니까!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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