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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19일 야곱의 우물- 요한 17,11ㄴ-19/ 유시찬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19 조회수420 추천수3 반대(0) 신고
유시찬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12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
 
16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내용상으로 보면 묵상을 하는 것이 더 적합하겠지만, 기도의 수련을 위해 복음관상을 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기도 내용의 의미를 깊게 알아들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모여 있는 최후의 만찬 분위기나 사건의 전개 내지 기운의 흐름을 감지함으로써 영신적 힘과 위안을 얻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묵상할 때는 특정한 단어나 구절 혹은 전체 주제를 깊이 사고함으로써 그 의미를 알아들으면서 힘과 위로를 얻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당연히 머리를 많이 쓰고 지적 힘이 뒷받침될 필요가 생깁니다. 이에 반해 복음관상을 하는 것은 그저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 내가 함께 있다고 가정하면서 그 모든 사건을 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 영적 힘과 위안을 길어 올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건 현장, 오늘 복음 같으면 최후의 만찬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복음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구성’ 해 보는 것입니다. 방 크기는 어떤지, 식탁은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사람들은 누가 있는지, 그들이 주고받는 말이나 취하는 행동들은 어떠한지 등등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이때 유념해야 할 것은 그 모든 장면 구성을 둘러싸고 너무 인위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가 좀더 깊이 알고 싶은 부분을 ‘떠올리며/질문을 던지며’ 기도를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최후의 만찬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예수님 표정이나 음성은 어땠을까,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등으로 말입니다. 질문을 던지고 좀 머물다 보면 자연스레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가 떠오를 테고 그러면 그다음으로 넘어가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현장에 있으면서, 그 복음사건을 내가 직접 체험하는 것이 바로 복음관상의 요체입니다.
유시찬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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