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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5.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19 조회수372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5.18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사도20,17-27 요한17,1-11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어느 시(詩)에 대한 글이 생각납니다.

 

“시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고 있다.

  잊히고 있다.

  시는 밥이 되지 않는다.

  시는 반경제적이다.

  시에는 효율적인 생산성이 개입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시는 경제적으로 개발하거나 잊혀 져야 할

  자연과 인간, 그리고 환경과 소외를 말한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에는 귀 기울여도

  누가 시를 말하면 핀잔을 받기 일쑤다.

  너 참 감상적이구나, 어 대단한데…. 그게 끝이다.

  잘해야 지식인의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시 대신 하느님을 넣어보십시오. 기막히게 딱 들어맞습니다.

 

바로 이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사람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말씀으로,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바로 사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생 허무를 인생 충만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뿐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성체성사는 사랑입니다.

매일 성체성사의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들입니다.

간디의 임종어는 ‘오, 하느님(Oh. God!)' 이었고

성녀 소화 데레사의 임종어는 ’오,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칸트의 임종어는 ‘만족하다(It is enough!)' 였다 합니다.

모두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는 임종어입니다.

언젠가 피정지도 시,

미리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라 하고 나눈 일이 생각납니다.

묘비명을 써 놓고 묵상하다보면

하느님 향한 제 삶의 꼴도 선명해 질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입니다.

사랑 충만한 삶이 행복한 임종을 맞이하게 합니다.

오늘 새벽 성무일도 요한 1서 독서(4,11-21) 시,

무려 사랑이란 말이 19회 나왔습니다.

오늘 따라 새롭게 와 닿은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자발적 응답이 이웃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갈수록 더불어 깊어지는 이웃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여 수도공동체를 ‘사랑의 학교’라 일컫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게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이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의 실재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 사랑을 그대로 사셨던 분이 예수님이요 사도 바오로였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 영광 받으소서.”

 

분도회의 모토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사도 바오로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아버지’ 와 ‘영광’이란 말이 무수히 나옵니다.

‘아버지’란 호칭에서 예수님의 하느님과 깊은 일치의 상태를,

또 예수님 삶의 유일한 목표는 아버지의 영광뿐 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거룩함, 막연한 추상적 개념이 아닙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 형제를 사랑할수록

환히 들어나는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거룩함입니다.

사랑과 함께 가는 영광이요 거룩함입니다.

하여 성 이레네오는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제가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감동적인 기도요 고별사입니다.

아버지 사랑과 제자들 사랑에 올인한

예수님의 거룩한 삶이 한 눈 들어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난다 할 때

과연 우리는 아버지께 어떤 기도를, 고별사를 바칠 수 있을까요.

에페소 교회 원로들을 향한 바오로의 고별사 역시 심금을 울립니다.

 

“나는 유대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나는 유익한 것이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겠습니다.”

 

일편단심 주님께 대한 사랑과 신도들에 대한 사랑이 구구절절 감동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말씀과 사랑으로 우리를 새롭게 낳아주시어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날마다 찬미 받으소서.

  우리 짐을 지시는 하느님은 우리 구원이시다.

  우리 하느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 주 하느님께 있네.”(시편68,20-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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