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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 5.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19 조회수404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5.19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사도20,28-38 요한17,11ㄷ-19

 

 

 

 

“주님,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사람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사람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는 인간입니다.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인간입니다.

두 가능성을 지닌 인간입니다.

삶은 선물이자 평생과제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사람이라 하여

저절로 하느님을 닮은 품위 있는 사람이 아니라

평생 하느님을 찾는 노력에 항구할 때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 됩니다.

 

천사와 악마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천사; 하느님의 사자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존재.

        마음씨 좋고 어진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이고,

‘악마;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거나 나쁜 길로 유혹하는 마물.

        아주 흉악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나 천사가 되고 싶지 악마가 되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천사 같은 사람도 있고

악마 같은 사람도 있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악마의 존재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현 사회에 만연된 악의 현실을 절감하는 우리들입니다.

선과 악의 싸움터와도 같은 세상이요

온통 악마들이 활개 치는 세상임은

TV화면이나 신문지면을 봐도 잘 들어납니다.

착하게 살겠다는 종교인들이 대부분인 이 나라에

왜 이렇게 악이 활개 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빛이 사라지면 저절로 어둠이 스며들듯

하느님 빛에서 멀어질 때

저절로 무지, 교만, 탐욕이란 악의 어둠이 우리를 점령합니다.

반대로 하느님께서 가까워질수록

지혜, 겸손, 무욕의 인간이자,

믿음, 희망, 사랑의 인간이요,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진선미의 인간입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모상에 따른 하느님을 닮은 천사 같은 사람입니다.

악의 현실을 묵상한 결과 다음 같은 결론이 나왔습니다.

 

차별화, 획일화, 평면화, 표면화, 상품화, 직선화 이게 악의 현실이고

여기에는 인위의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으며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의 평화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추세입니다.

영남과 호남, 남한과 북한, 강남과 강북, 부자와 가난한 자,

4대강의 찬반 논란, 세종도시 찬반 논란, 잘난 자와 못난 자 등

이렇게 차별화하여 분열을 조장하는 게 바로 악이요,

통합은커녕 분열로 인해 갈가리 찢겨져 가는 오늘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다음은 다양성을 무시한

천편일률적인 획일화의 교육이나 도시, 건물, 사람 또한 악의 현실입니다.

자연이든 삶이든 겸손의 미덕이 결여된

숨겨져 있지 못하고 온통 들어나기를 추구하는

표면화의 경향 역시 악의 현실입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것이 상품화로 귀결되는 것 역시 악의 현실입니다.

또 불도저로 밀어붙여

높고 낮음, 깊고 얕음의 자연스런 균형과 조화가 깨지면서

평면화 되는 자연이나 삶 역시 악의 현실입니다.

곡선의 부드러움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생명의 선입니다.

효율과 능률의 신속함을 추구하다 보니 온통 직선화된 길이요

더불어 여유를 잃어가는 우리의 직선화되는 사고방식 역시 악의 현실입니다.

사실 전국 어디를 가도

자연스런 곡선의 길이나 물길은 찾아보기 참 힘듭니다.

이런 차별화, 획일화, 평면화, 표면화, 상품화, 직선화의 추세가

편하고 빠르고 쉬울지는 몰라도 비인간화를 촉진할 뿐입니다.

바로 이게 오늘 날 신자본주의 문명의 폐해요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선과 악의 싸움이 치열한,

엄연한 악의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인류가 지속하는 한 선과 악의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1독서의 사도 바오로와 복음의 예수님 역시

악의 현실 속에서 사셨으며,

악의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참 유익한 조언을 주십니다.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압니다.

  또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어 사도 바오로는

원로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깨어 살라고 간곡히 당부합니다.

하느님을 향해 깨어 살지 않으면

안팎으로 악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다음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참 고맙습니다.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들 가운데 유산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의 말씀 안에 살아갈 때 굳건히 살 수 있습니다.

새삼 말씀의 중요성이 뚜렷이 부각됩니다.

복음의 예수님 또한 똑같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오로는

절대로 악과의 정면 대결하여 싸우라하지 않습니다.

악에 대한 처방은 두 가지 뿐입니다. 사랑과 진리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악에 대한 처방은 이 말씀 하나뿐입니다.

사랑으로 주님과 하나 된 공동체, 감히 악이 침범 못합니다.

차별화, 획일화, 평면화, 표면화, 상품화, 직선화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치유하여

통합적 삶을,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의 사랑뿐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로 사랑하여라.”

 

바로 이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를 건설하는 길이

우리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다음은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악에서 지켜주십사, 구해주십사, 보호해 주십사 기도하시지,

악과 싸워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결코 사람이 악과 싸워 이길 수 없음을 꿰뚫어 통찰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만이 악의 세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뿐,

사람은 악과 싸우다

십중팔구 악에 휘말려 폭력의 악순환에 떨어질 위험이 다분합니다.

뭔가 미진함을 느끼신 주님은 적극적으로 나가십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낸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냅니다.”

 

악에서 지켜달라는 소극적 요구에서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는 적극적 요구로 변합니다.

사실 평화를 달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주님의 평화 자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악에서 지켜주십사 기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리로 거룩하게 해주십사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좋은 악에 대한 처방은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주님의 평화로, 주님의 거룩함으로 완전무장한 이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하니

새삼 말씀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절감합니다.

 

주님과 하나 된 사랑의 공동체 건설,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해진 삶,

악에 대한 처방은 이 둘 뿐입니다.

이래서 매일의 사랑의 성체성사가 그리도 고맙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과 하나 된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해주시고,

사랑의 성령으로 악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주시며,

우리 모두 당신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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