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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7주일 주님승천대축일 -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0 조회수503 추천수11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창문 앞 풍경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저는 부임한 후, 이곳이 ‘성모님의 성지’ 로 선포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4년 전, 교회에서 인정해 주셔서 성지로 선포되었습니다.


아울러 이곳을 찾아오는 교우들에게 말씀도 전해야겠지만

우리교우들이 죽을 때까지 잘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성물을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묵주 알, 하나하나에 수작업으로 장미를 새겨서 매괴묵주를 만들었습니다.

또 몸에 지니고 다니도록 성모님의 매괴기적패를 만들었습니다.


이 성당을 지으신 임가밀로 신부님이 기적패를 통하여

이 큰 성지 터를 성모님으로부터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기적패는 이 성지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또 유명한 작가를 동원하여 저 위에 계신 매괴 칠고성모님의

사진을 찍어서 상본을 만들거나 이콘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 만들기 어려운 것이 매괴성모님 상이었어요.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부터 3년 반 전에 매괴칠고성모님상이 만들어져서

순례자들에 의하여 전국으로, 또 해외로 나가시기 시작했어요.


매괴성모님이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술마귀에 잡혀 알콜중독자가 되어 많은 병원을 전전하며

폐인이 되다시피 한 남편이 있는 어느 아내가

‘이제 마지막으로 살 길은 성모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애절한 마음으로 이곳 매괴성모님상을 집으로 모셔갔어요.

그 사람은 밥 먹을 때마다 밥은 안 먹고, 소주 3병씩을 먹는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알콜중독자였는데 매괴성모님상을 모셔간 그날부터

밥상에서 술을 마시려고만 하면 토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수십년동안 괴롭히던 술마귀를 성모님상이 가자마자 떼어주시니

아내와 손을 잡고 찾아와서 큰 절을 하며 울면서 감사했습니다.


어떤 자매는 자기 남편이 음란마귀에 빠졌는데 본인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음란마귀가 장난을 치니까 몇 번을 이혼을 하려다가

자식 때문에 참았는데 이곳에 와서 매괴성모님을 모셔간 그날부터 사람이 확 달라졌대요.

베란다에 나가서 휴대폰을 하는데 들어보니 연애 거는 전화가 아니라

연애를 정리하는 통화를 하더래요.

‘우리 이제 정리하자!’


학교마다 입학을 시키면 싸움질하고, 한 달을 못 버티고 퇴학당하는

아이 엄마가 눈물로 봉헌하고 이곳에 와서 매괴성모님을 모셔갔더니

이 아이가 그날부터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한대요.

얼마나 고마워!

매괴성모님이 가시는 곳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 감곡은 음성지구에서 속해 있어요.

3년 전부터는 매괴성모님이 이 음성지구를 돌아다니세요.

‘엄마한테 와라!’

해도 안 오니까 엄마가 각 본당마다 찾아가는 겁니다.

성모님이 각 본당에 머무는 동안도 그 본당에서 많은 치유가 일어납니다.


오늘 예수승천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독서와 복음을 보면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귀천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당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것, 

성부 오른편에 앉으셔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승천은 즉 자기의 꼴을 찾는 것입니다.

하느님 모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의 자기 꼴’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요즘 인간들의 난폭하고 잔인한 삶을 보면

어디 한구석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데라고는 없습니다.

신자라고 하는 우리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 욕심이 늘 하느님공경보다 앞서고

세상사는 기준과 가치관, 사고방식을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하루에도 우리는 여러 번 허물어지고, 부서지고

질서를 잃어버리고 타락합니다.

이러한 내 자신을, 내 가정을 내 교회를....

정신 바짝 차리고 제 꼴을 찾는 것이 승천의 의미입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꼴값을 다시 찾는 것이 승천의 뜻입니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로 승천입니다.


어느 때, 주님 보시기에 내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가?

첫 번째는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할 때, 가장 하느님의 모상을 닮았습니다.

기도할 때, 주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은 기도로써 약해지시지만 인간은 기도로써 강해집니다.


두 번째, 회개할 때, 아름답습니다.


세 번째, 용서하면서 살 때,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은 늘 용서를 받으려고 합니다.

죄를 져서 마음이 편치 않을 때, 하느님께 용서받으면 평화롭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 줄 때 아름답습니다.


네 번째, 세상 것, 포기하고 반대로 하느님으로 가득 채울 때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자기 꼴’을 찾는 것이요,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하는 것이 승천의 의미입니다.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승천입니다.


두 번째 승천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

사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교회가 아니라 그냥 집단이었습니다.

그 안의 구성원들도 감투싸움을 하는 기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복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성령을 힘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된 겁니다.


성령을 받은 자, 성령을 체험한 자가 가지는 영적 힘이란 과연 무엇인가?

성령을 받은 자, 성령을 체험한자가 가지는 영적인 힘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오직 예수님께 순명하는 힘입니다.

두 번째, 오직 예수님께 충성하는 힘입니다.

세 번째,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힘입니다.


첫 번째, 오직 예수님께 순명하는 힘!

오직이라고 하는 것은 순도를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80% 순명을 하다가 20%의 불순명 때문에 냉담자가 됩니다.

99% 순명하다가도 1%의 불순명 때문에 이단에 빠집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성령을 받은 자의 목표는 티끌 하나 없는 순명입니다.


순명할 때 늘 우리를 늘 괴롭히는 것은 내 자존심입니다.

이 세상 누구나 지배하기를 원하지

“예” 하고 순명하는 것, 원하는 사람 없습니다.


지 입맛에 맞게 골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네!”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주교들을 통하여 사제에게 순명을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제들을 통하여 신자들의 순명을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성을 추구하고 합리성을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못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셔야만 이성주의, 합리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오직 예수님께 충성하는 힘!

예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자애심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 생명에 대한 애착이

하느님께 충성하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순교에는 육적인 순교만이 아니라 영적인 순교도 많습니다.

성질나는 것, 참는 것도 순교입니다.

자기 성질도 못 이기면서 어떻게 목을 내놓겠습니까?

성질 참는 순명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목을 내놓는 순교까지 할 수 있지요.


예수님 사랑하는데 제일 걸림돌이 되는 게 가족입니다.

가족 중에서도 자식입니다.

하느님 보다 자식이 윗자리에 있고, 자식이 우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건강, 자식에 대한 행복, 내 건강......

이 모든 것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건만 주시는 분은 저 밑에 처박아 놓고

급할 때만 가끔 꺼내 쓰는 해결사내지 고급 부적!

그러기 때문에 응답을 못 받습니다.

주시는 분을 홀대하고 뭘 받겠습니까?


‘성령을 받은 자는 힘을 받아서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인 힘인 순명, 충성, 사랑을 가지고 살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볼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겁니다.


천국 안에 성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 안에 천국이 있다.

이 말을 풀이하면 예수님 안에 우리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증거 하는 것이 바로 승천입니다.


말씀이 우리들 안에 들어오십니다.

성체가 우리들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우리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겁니다.


오늘 주님의 승천 대축일을 지내면서 ‘승천의 의미’

첫 번째,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을 앓지 않는 것

두 번째, 성령의 힘을 받아서 순명하는 것

세 번째,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마 예수님스럽게 승천하셨을 겁니다.

우리들의 관심은 예수님이 어떻게 승천하셨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영적으로 승천할 것인가!’ 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과 성체로, 성모님의 전구로,

우리를 들어 올리셔서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십니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2010. 05. 16  주님승천대축일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창문 앞 풍경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주만 바라 볼찌라>음악 김웅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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