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글은 삶이고, 삶은 곧 글이기에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2 조회수362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틀 전(20일)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만, 참고로 보시도록 '묵상' 방에도 올립니다. 너그러운 양해를 구합니다.
 
 
 
 
                글은 삶이고, 삶은 곧 글이기에

 

 

†. 찬미 예수님(평화를 빕니다).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 오른 몇 분의 나에 대한 말들을 읽고 이번에도 ‘무반응’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며 초연하고자 했고, 지금까지 그런 태도를 잘 유지해 왔습니다. 무슨 말에 일일이 대응을 한다는 건 나 자신이 구차스러워지기도 하고, 지레 피곤한 일이기도 할 터였습니다. 

그런데 마냥 무반응을 유지한다는 건 상대방을 무시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도 있겠다 싶고, 그런 오해가 혹 반감을 더 키우지나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여 몇 마디 적기로 했습니다. 

★글은 내게 무엇인가

젊은 시절부터 ‘글은 내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 문학에 뜻을 두고 ‘등단’이라는 관문을 밟기 위해 고도의 경쟁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는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습니다. 15년의 눈물겨운 낙방 끝에 드디어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비로소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글은 내게 무엇인가?

글은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목구멍 문제를 온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할지라도,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이어야 하고, 진실과 정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이어야 하고, 내 삶을 고스란히 투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달란트여야 하고, 하느님 앞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분명했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글을 쓰기 전에는 반드시 ‘봉헌의 기도’를 바치는 습관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눈을 감고 생각을 모을 때도 성호를 긋곤 합니다. 내가 하느님께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글밖에 없다는 생각, 비록 대 문호는 되지 못하더라도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며 조각 글 하나라도 함부로 쓰거나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등을 추스르곤 합니다. 

★글을 쓰고 또 발표하는 이유  

글은 ‘소통’을 위한 것이고 또 ‘나눔’이 목적일 것입니다. 내가 글을 짓는다는 것은(나는 ‘쓴다’는 말보다 ‘짓는다’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발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왕 발표를 할 바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보람된’ 일일 것입니다. 

스스로 쓰고 싶어서 쓰기도 하고, 청탁 때문에 쓰기도 하고, 고정 지면에 얽매여 쓰기도 합니다. 또 종이 매체에 발표한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고, 인터넷에 올렸던 글을 종이 매체에 발표하기도 합니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이고 또 정보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글 짓는 일이 업이 아닌 사람이더라도 자신의 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어떤 용도가 한정되어 있는 글이 아닌 한, 또 명색 작가라는 사람이 공 들여 지은 글인 이상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유도하거나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는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여러 매체를 이용합니다. 지금 이 글처럼 ‘굿 뉴스’ 게시판에만 필요한 특별한 용도의 글이 아닌 모든 글들은 일단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다음 정식 기사로 채택되어 지면에 오른 후 여러 사이트에도 올립니다.

 천주교 신자이므로 가톨릭 굿 뉴스에도 올리고, 대전교구 신자이므로 대전교구 사이트에도 올리고, 태안 군민이므로 태안군청 홈페이지에도 올립니다. 또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므로 문협 게시판에도 올리고,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므로 그쪽 게시판에도 글을 올립니다.

 그 외에도 서너 개 사이트와 카페에도 글을 올리는데, 모두 초대를 받은 경우입니다. 나를 초대하거나 안내해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쪼갭니다.

 내가 같은 글을 여러 사이트에 올리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작가회의 게시판에서 누군지 모를 사람이 내가 문협에도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 맹렬히 비난을 했습니다. 그래서 작가회의 게시판에는 글을 올리지 않기로 ‘선언’을 하고 발을 끊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런 비판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 그런 각오도 없이 글을 올렸느냐” 면서 다시 글 올리기를 종용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견도 무조건 묵살할 수 없는 일이어서 다시 작가회의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간부급이 아닌 평 회원일 경우 두 단체에 동시 참여할 수 있는 ‘융통성’을 나는 존중하고 아낍니다. 그리고 내가 문협과 작가회의, 상대적인 두 단체에 참여하는 것은 지조 없는 행동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에 스스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두 문인 단체가 상대성은 유지하되 결코 적대적인 관계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인 거지요.)

 ★ ‘사는 이야기’의 숨은 목적

 때로는 이념 문제가 결부되는 이야기, 정치 현안과 관련하는 ‘주장’을 쓰기도 합니다만, 거의 대부분은 내 삶을 가지고 글을 씁니다. 오마이뉴스에 ‘사는 이야기’ 면이 있는 덕이기도 합니다. 내 ‘사는 이야기’를 쓰자면 ‘고백’과 ‘공개’는 필수적인 사항일 것입니다. 또 ‘사는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천주교 신자이므로 신앙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 생활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맺는 사람이니, 또 하루 생활 속에서 수십 번씩 성호를 그으며 사는 천주교 골신자이니 내 ‘사는 이야기’에서 신앙 이야기를 분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글을 쓸 때 하느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지 싶습니다. 하느님 이야기는 그 자체로서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헤아리곤 합니다. 글을 쓰다가 하느님 얘기를 하게 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성호를 긋는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하느님께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런 작은 일에서도 신자의 사명 같은 것을 자각하기도 하지요.

 신앙 이야기가 이렇게 저렇게 투영되는 내 ‘사는 이야기’들을 나는 주저 없이 종교 사이트가 아닌 일반 대중매체에 올립니다. 물론 더러 반발을 접하기도 하지만, 좋은 인상을 받는 독자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저 단순한 종교 담론이라면 나 자신부터 부담스럽겠지만 내 삶을 가지고 은연중 하느님 얘기를 하는 것이기에 많은 독자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고 호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 내 삶을 읽고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나는 내 삶을 자랑하려는 뜻으로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물론 ‘자랑’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결코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 글이 내포하고 있는 어떤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발견하고 공유하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더불어 내 글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게 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그래서 내 글들에는 선교 의지가 숨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하느님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내 삶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을 뿐입니다.

 ★ ‘굿 뉴스’ 게시판들을 고루 활용하는 이유

 지난 2001년부터 10년 가까이 ‘굿 뉴스’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참 세월 빠르군요. 그새 10년 세월이 흘렀다니…. 10년 가까이 글을 올리면서 분쟁을 겪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한 번도 나가느니 떠나느니 한 적이 없습니다. 병상생활 기간을 제외하고는 ‘방학’도 없었습니다. ‘초지일관’은 내 성품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글들을 올렸지만 한 번도 한 게시판에 한꺼번에 두세 개씩 글을 올린 적은 없습니다. 간헐적으로 한 편씩 글을 올렸고, 같은 글을 재탕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길래 자유게시판에만 글을 올리다가 이태 전부터 ‘묵상’ 방과 ‘따뜻한 이야기’ 방에도 글을 올리면서 내 나름으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고 지켜왔습니다.

 원래 자유게시판 멤버이니 자유게시판에도 글을 올리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융통성’을 포유하는 말일 터이니 그 뜻에 최대한 부합하고자 했습니다. 또 내 글이 어떤 ‘묵상’의 여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면 ‘묵상’ 방에도 올렸고,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내용이면 ‘따뜻한 이야기’ 방에도 올렸을 뿐입니다.

 아무 글이나 멋대로 세 개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은 아닙니다. 세 개 게시판에 다 올린 경우도 있고, 두 개 게시판에만 올린 경우도 있고, 한 개 게시판에만 올린 경우는 단연 많습니다.

 세 개 게시판에 같은 글을 올렸을 때 나타나는 조회 수를 보면, 특정 게시판에만 출입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님, 저는 '자게'가 무서워요. 그곳에는 싸움이 많아서 가기가 싫어요. 그러니 형제님께서 좋은 글을 자게에만 올리지 말고 묵상 방에도 올려주세요.”라고 하신 분도 있었고, “선생님 글을 자게가 아닌 따뜻한 방에서 읽으니 제 마음이 더욱 따뜻해지는 느낌입니다.”라는 말씀을 주신 형제님도 있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내 삶을 자랑하거나 광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의 나눔’을 위해서입니다. 가령 내 노친의 병환 돌보기를 소개하는 글들 속에는 하느님도 계시고 ‘대체의학’이라는 현실적인 희망도 있습니다. 병상의 노친을 돌보는 일은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이겠지만, 그것을 굳이 ‘효(孝)’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과장하거나 없는 일을 가지고 하느님을 ‘기만’한 것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면서 내가 실감하고 실증한 ‘대체의학’의 가치와 그 방법까지 많은 이들에게 알려 드리려는 의도였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내 글을 읽고 내가 채택한 대체의학의 활용 방법을 물어와 시간 축내며 상세히 설명을 드려서, 희망을 갖고 열심히 활용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

 간헐적으로 한 번씩 올리는 글을 세 개 게시판에 동시에 올렸다고 해서 그게 ‘도배’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 게시판에서 글을 읽은 분이 다른 게시판에서 같은 제목을 보았다면 이미 읽은 글이니 다시 클릭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재미없어 읽지를 않는다고 하시는 분이 굳이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눈이 자신에게는 기준이 될지 모르지만, 내 눈으로 함부로 재단을 하면 다른 이들을 무시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세 개 게시판이나 두 개 게시판에 같은 글을 올리는 것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는 포용적인 생각을 가지기보다는 자기 시각으로 ‘도배’라는 표현으로 비난을 한다면(물론 그것은 그의 자유지만), 오로지 한 개 게시판에만 출입하며 글을 읽는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 글을 마치면서

 글을 쓰면서 내내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나 자신이 되우 구차스러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내 글이 재미없어 읽지 않는다는 분이 어떻게 재미없는 것을 알까 하는 생각을 하며 웃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하느님을 기만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선한 의지를 가지고 쓴 글을 부정하는 것이야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에 따른 일일 수도 있겠지만, “글만으로 신앙을 말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요. 향기를 맡을 수 없는 행위는 위선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느님을 기만하는 게 아닌지요.”라고 한 말은 아무래도 지나친 망발 같습니다. 내 글이 재미없어 읽지도 않는다는 분이 무엇을 근거로 내가 하느님을 ‘기만’했다고 하십니까? 그 기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적시할 수 있습니까?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되지 싶습니다.

 “약 이십여 명으로 추정되는 어떤 모임의 회원들이 이곳에 똬리를 틀고 추천부대로 활동하는 것으로 압니다. 이곳에 처음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러한 사실을 간파한 즉시 그 모임에 모습을 적어도 한 번은 보이지요. 모습은 내밀지 않더라도 그 모임 사람들에게 붙어서 아부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호응하는 말을 주고받지요. 그래야 자기 글을 지원하는 인원이 확보되니까요. 한마디로 웃기는 더부살이입니다. 기생하며 공생하는 관계라고나 할까요.”

 너무도 무례하고 모욕적인 막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굿자만사(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사람들)’ 모임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 모임에 지금까지 한 번 이상 참석한 이들이 약 80명 정도 됩니다. 하지만 그 모임에 한 번도 참석지 않은 분들, 또 아예 그런 모임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내 글을 읽고 추천을 누르신 분들이 모두 굿자만사 회원들일 거라고 어떻게 단정하십니까? 그분들 중에는 굿자만사가 뭔지도 전혀 모르고(알아도 별 생각 없이) 오로지 글에 대한 공감 때문에 추천을 누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아예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분들에게는 더욱 무례하고도 모욕적인 언사가 되리라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또 자신의 글에 추천을 누르는 분들이 진짜 ‘추천부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더부살이니, 기생이니, 공생이니 하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사용하는 것에서 참으로 아연함과 공포를 느낍니다. 말을 골라서 신중하게 사용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