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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적인 박해와 그 골고타 언덕 [진리의 십자가]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5 조회수363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도 지구상의 어느 곳은 외적인 박해의 상태에 놓여있다.
반대로 다른 곳은 그런 외적인 박해의 상태가 없지만 도리어 온갖 종교와 종파들이 난립해 있기도 하다.
 
'외적인 박해'를 거론한 이유는 '내적인 박해'에 대하여서도 살펴보고자 함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외적인 박해를 받았으며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형에 처해 졌다.
 
그렇다면 '외적인 박해'가 없는 땅에서는 과연 '십자가의 박해'가 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겉으로는 '외적인 박해'가 없이 '종교의 자유'가 풍성한 땅(나라)들이 세상에는 존재해 있다.
 
그리고 외적인 박해를 자신의 집안 가족, 주위 사회, 타인 등등으로 넓혀 볼 수도 있는데
대체로 이같은 일들을 가리켜 흔히 '박해'라고도 말하고 있다.
 
'박해'는 자신의 기준으로 정하여 지는게 아니다.
성경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라고 예수님께서는 직접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우상숭배자, 이단자 (진리의 반대자를 이단자이다고 한다 - 가톨릭대사전)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박해를 당한다'고 말한다면 웃기는 이야기가 된다.
 
 
'박해'는 '진리'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예수님을 죽이려고(박해하는)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했는지 살펴본다.
우리는 '인식의 고정화'가 되어 있다. 그런 고정화의 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율법' 때문이다고 단정시켜 버린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바는 간과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진리'와 연관시켜서 당신의 가르침을 주신다.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아버지의 말씀 = 진리)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서 8, 37 ; 40 - 41>
 
그 다음의 예수님의 말씀도 살펴보면 더욱 뚜렷하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 <44절>
 
예수님께서 겪으신 십자가 박해의 시련과 고통은 "아버지의 말씀, 진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인간적인 인식의 고정화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를 보지 못한다. 진리의 영께서는 그분(예수님)의 말씀을 돌이켜 기억하게 하시고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가르쳐 주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성령, 진리(의 영)을 거스리는 사람은 영원한 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복음서>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1요한서 5, 6> 이렇듯 예수님과 성경은 진리(성령)에 대하여 강조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요한복음서 18, 37>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17, 19>
 
진리(성령)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복음, 성경)을 듣습니다. 하지만 "거짓 아비"에게 속한 사람은 진리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진리(성령)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가짜 성령'이라는 '속이는 영'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을 거스리는 자는 거짓을 믿게 되어 있습니다. <2테살로니카 2, 11 - 12 :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을 속이는 힘을 보내시어 거짓을 믿게 하십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한 자들이 모두 심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이상 정지하고 처음의 거론 했던 '내적인 박해'로 다시 되돌아가고자 합니다.
 
내적인 박해는 사람의 박해가 아닌, 악마의 박해 입니다. 인간은 창세기에서 뱀의 거짓말(하느님의 말씀과 반대)을 수용(받아들임)했습니다. 유혹과 시험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는 첫 '악마의 박해' 입니다. 첫번째 죄악의 신비(첫째 죽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죄악의 신비(둘째 죽음 - 요한묵시록)는 내적인 박해입니다.
 
뱀과 인간의 대화는 외적인 측면입니다. 내적인 측면은 거짓말을 한 뱀(악마)를 수용한 인간 안(내면)에서 작용한다 하겠습니다. 이 인간 안에서 내면의 자리를 차지한 악마(오래되어 늙은 창세기 뱀)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말을 없애기 위해 진리를 가지고 오셨으며 악마(뱀)을 없애고자 성령(진리의 영)을 아버지께로부터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은 "끝없이 깊은 구렁"(요한묵시록)과 같습니다. 그 오래된 뱀(악마, 사탄)은 장차 이 구렁(인간의 내면)에서 올라온다고 예수님께서는 계시해 주셨습니다. 인간 내면에서 '거짓말'로 '진리'를 가리우게 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악마에 의한 '내적인 박해' 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져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또한 진리를 증언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이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마땅히 '진리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복음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많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좁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기 때문에 "자기 십자가"와 "십자가의 길"은 좁다 할 것입니다.
 
'내적인 박해'는 인간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의 활동(작용, 거짓말)이며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인 투쟁이다는 뜻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자기 안에 '내적인 박해'가 있으므로 '자기 십자가'도 있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의 내적인 골고타 언덕은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마음) 속을 가리킵니다.
 
세상은 예수님(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악마로부터 박해(유혹과 시험)를 받습니다. 아버지의 눈길 아래에서 올바른 일을 하여도 세상 방식의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한다고 판정받으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당신의 복음 때문에 사람들에게 '종'이 되어 '종'처럼 일을 하여도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방식대로 일하지 않고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 방식대로 일을 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분별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살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악마입니다. <1요한서 5, 19>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미움'은 악마의 작용이다는 설명을 말합니다. 악마는 예수님과 당신의 복음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저지와 방해를 끊임없이 계속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작용하는 악마와 대항하여 자기 내면 속에서 악마가 달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하느님(아버지)께 복종하고 자기 내면에서 작용하는 악마의 '내적인 박해'는 "자기 십자가"(십자가 인간)로 자기 내면의 골고타 언덕(마음 =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예수님을 따라 <그리스도(예수님, 복음)의 십자가>에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악마를 멸망시키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먼저 나를 (예수님과 복음을) 미워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면 세상의 미움과 상처를 무수하게 받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공포를 주기도 하며 억압하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자녀들"에게 눈물을 흘립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아래에 계신 성모님께 "보십시오,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하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십자가의 자녀"들을 박해합니다. 그것은 악마의 작용(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고 절규하게 됩니다. 그러나 또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하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나를 내려달라"고 하는 강도를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에서 "나를 내려달라"(나주 '가짜 마리아' 메세지)고 하는 이는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가짜 성령' "속이는 영", 곧 악령입니다. 예수님 처럼 십자가의 길의 완성은 자기 십자가에서 매달리기만 하는게 아니라, 매달려서 자기 목숨을 아버지의 사랑에 맡기는 것입니다. 악령의 '내적인 박해'는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복음 때문에 받게 된다는 사실과 그 실제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 세상의 악령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내적인 박해'에서 굴복하지 않는 힘(하느님의 은총, 예수님의 은총)은 아버지의 말씀, 진리에서 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요한서> 그러므로 진리 안의 사랑으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그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 곧 예수님의 사랑이신 '십자가의 사랑' 입니다. '진리의 십자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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