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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울시 추기경의 고백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6 조회수877 추천수5 반대(0) 신고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코 10:28-31)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말기 극 <헨리 8세>에서 헨리 8세의 경제적 부유와 분방함은 1막 1장에 나오는 “금의축제(The Feast of the Cloth of Gold)”에서, 그의 지적 도덕적 능력은 재판장면에서 보여진다. 이 재판은 헨리8세가 가톨릭의 영향을 어떻게 극복하고 영국의 군주가 국가와 교회(성공회)의 수장(首長)으로 자리잡게 되었는가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헨리 8세의 지적 능력은 그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획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앤 불린(Anne Boleyn)의 대관식 장면은 새 왕비를 신성시하는 의식으로서 그녀의 평화와 거룩함이라는 덕목이 부각된다. 캐서린의 “환상 장면(the Vision)”은 그녀를 위한 천사의 대관식으로서 그녀가 하늘에서 받을 영광과 지상에서 보여준 덕목을 나타낸다.
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될 엘리자베스 공주의 세례식의 정치적 의미는 크랜머의 예언에 들어 있다. 캔터베리의 대주교는 엘리자베스의 통치의 특성을 불사조, 포도 덩굴, 백합의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하는데 이는 평화와 화합 그리고 부활의 상징이다.
 
1509년 헨리 8세가 영국의 왕에 즉위하자 울시(Woolsey, 본명은 Thomas Wolsey)는 왕의 구호금품 분배관리 책임을 맡게 되었다. 울시는 그 사업이 번창하여 1514년에는 국가의 거의 모든 대소사(大小事)를 관장하게 되었고 교회 내에서도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마침내 왕의 최고 자문역인 대법관을 맡으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며 ‘다른 왕’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1515년에 추기경이 되었다.
 
헨리 8세의 첫 번째 왕비는 스페인 공주였던 캐서린이었다. 그녀는 헨리 8세의 형수(兄嫂)였으나 10개월 만에 과부가 되자 6살 아래의 헨리 8세는 싫었지만 영국의 국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왕비를 떠맡게 되었다. 왕비가 먼저 시들기 시작하자 왕은 새 여인들을 찾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매독에 걸리고 그 균을 관계하는 여자들에게 퍼뜨렸다. 울시 추기경과 부딪친 건 캐서린과 이혼하고 젊은 애인 앤 불린과의 결혼을 열망했지만 이혼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면돌파로 결혼식을 올린 후 그의 사랑은 곧 식었다. 그녀의 시녀인 제인 시모어에게 마음이 옮아간 것이다. 그는 앤 불린과 그녀의 오빠를 포함 5명의 귀족들을 런던 탑에 보내 목을 베게 했다. 망나니가 칼춤을 추다 목을 치는 게 아니라 단단한 받침대 위에 목을 올려놓으면 내려치는 식이었다.
왕은 울시 추기경의 전 재산을 몰수했다. 이 때 추기경은 유일한 친구였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에게 말했다.
“내가 왕에게 바쳤던 열정의 반만 하느님께 바쳤더라면 왕은 나를 발가벗겨 쫓아내고 적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일세.”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루카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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