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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려가라 [거지 하느님, 거지 예수님]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6 조회수363 추천수1 반대(0) 신고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복음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었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악마가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유혹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살펴 볼 악마의 유혹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간단하다. 악마는 예수님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갔다라고 한다. 우리는 한번쯤 높은 산을 등산한 경험이 있었다면 그 느낌을 이해하기란 쉽다. 높은 산에서 저 아래의 만물들을 내려다 보게되면, 가슴이 커진다. 그래서 옛적에는 선인들이 '호연지기'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는 높은 산을 등반하라고 말해 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기 눈 아래에 있을 때에 마치 세상은 자기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악마는 이런 인간의 심성을 이용하였다 할 수 있다.

그리고는 악마는 이어서 예수님께 속삭이듯이 말한다. "나(악마)에게 경배하면 당신의 눈 아래에 있는 저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모두 주겠다"고 제시한다. 세상의 영광을 미끼로 하여 악마를 경배하라는 요구의 유혹이다. 악마를 섬겨라는 것인데 악마를 섬긴다는 말은 다소 추상적이다. 명확하게 말한다면 악마의 '종'이 되어라는 것이며 '종'으로 악마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예수님의 거절에 대하여 지금 우리들은 많은 이들이 가르쳐 주기를 세상의 권력과 권세 따위를 물리쳤다라고 하면서 지배계급의 논리로써 설명해 왔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 교회의 지배층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도 한다. '계급적 계층적 투쟁논리'에 따라 주된 공격의 대상으로 '지배권력'을 1차적으로 문제 삼는다. 따라서 고정화된 틀의 해석이 반복됨으로써 신자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귀착되어져 갔다 생각한다. 물론 전부 틀렸다는 점을 간과하지는 않지만 악마가 정작 요구하는 것은 악마를 섬기게 하는 일이다.

세상의 지배(권력)에 대하여 설왕설래하는 것 그 자체마저도 이미 악마의 작용에  포함되어진 것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악마의 섬김(경배)을 식별하지 않음으로 해서 악마는 자기 활동을 편하게 이끌어 갈 수가 있다. 사람들은 세상을 보게 하고 그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악마를 보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악마에 대해서 거론하면 '비이성적'이다고 할난 당하게 유도하며 그 힐난하는 인간을 충분하게 '악마의 종'으로 이용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께서 악마를 분명히 인간에게 드러내신다. 하지만 '인간 이성의 교만'은 악마(마귀들)의 활동 안에 흡수되어져 갔다.

악마는 분명하게 말한다. 예수님께 대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주겠다고 제시하며 악마를 섬겨라고 말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경배 - 섬김) 하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악마에게 대항하셨다.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면 악마는 달아난다" 라는 성경<야고보서 4, 7>을 벌써 앞선 글에서 언급하였으며 또한 내적인 박해는 진리(아버지의 말씀)와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바로 앞전의 글에서 게시한 바가 있다.  

 

인간이 악마는 보지 못하고 세상만을 보면 어떻게 될까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복음서>

악마가 아닌 예수님께서 3명의 제자를 인도하여 높은 산에 오르셨다

세상의 영광을 보여준게 아니라 예수님 당신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셨다

먼저 베드로가 야고보와 요한 보다 앞서서 '여기서 지내도록' 초막을 짓겠다 하였다

영광스런 지금에서 초막(자신들만의 성전, 일명 예수파 성전)으로 머물자고 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고락을 함께 하면서도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였다. 제자들은 어쩌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세상적 영광에 관하여 당신의 내면 속을 제자들에게 밝히는 것을 꺼려하시고 계신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베드로는 자기 속에 내재되어 감추어져 있던 은밀한 말을 무심코 내뱉었다. 야고보와 요한 보다 앞서서 베드로 자신을 먼저 예수님께 높여 보고자 간언(간신의 언어)을 내 놓았다 하겠다. 이를 지켜 본 야고보와 요한은 순간 베드로에게 '뒤쳐졌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초막을 통해서 세상 영광에 대하여 베드로 자신의 계획을 펼쳐 보이고자 할 때에 그런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거룩한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마태오복음서> 하느님께서 요구하신 명령은 예수님의 십자가수난에 대한 암시였다. 세상만을 보고 세상의 악마를 부정하면 영적으로 깨어 있지를 못한다. 또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다면 "마음은 간절하나 몸은 따르지 못한다" <마르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수난에 대하여 예고하셨지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이 예고를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며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는 '자기 십자가' (십자가 인간), '십자가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상의 안개 속에 가려져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 세상' 곧 '그리스도의 나라'를 지향해 가는 나라이다. 자기의 세상 영광만을 바라보며 '자기의 십자가' 없이 '자기의 초막'을 지어 가는게 아닌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성부의 뜻이었으며 성자께서는 이를 수행해 나갔다.

하느님의 영광이 있기 전에는 십자가의 수난을 세상에서 거쳐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버리고 십자가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마음은 악마의 지배 아래에 놓여진 세상의 마음이다. 높은 산에서 "여기서 지내도록" 하는 마음이다. 베드로와 제자들, 곧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십자가 사랑의 수난'을 위하여 예수님께로부터 세상에 파견되어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들을 구하러 왔기 때문이다.” <마태오복음서>

악마의 지배 아래에 붙잡혀있는 영혼은 악마에게 '종'이 된다. 하느님은 '거지 하느님'이시다. 세상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 제자들은 "세상에 남아 있다"(요한복음서)는 말씀이시다. 높은 산에서 지내려고 하는게 아니라 산 아래로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거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빈자의 그리스도'이시다. 하지만 세상에 평화와 생명을 주셨다. 거지의 처지를 부정하고서는 산 아래로 내려올 수는 없다.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영광은 '거지의 영광'이다. 진정한 부자는 높은 것을 버린 낮은 거지와 같다.

"베드로가 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바랐을 때, 그는 이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 지금은 그분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산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 지상에서 고생하고, 지상에서 봉사하고, 지상에서 멸시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내려가라. '생명'이신 분이 죽음을 당하기 위해 내려오고 '빵'이신 분이 굶주리기 위해 내려오고 '길'이신 분이 길 내느라 고단하기 위해 내려오고 '샘'이신 분이 목마르기 위하여 내려 오는데 너는 고생하기를 싫다 하느냐"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성직자들도, 수도자들도, 평신도들도, 세상 모두가 서로 상호간에

 세상의 계급적 계층적으로 투쟁하지만 속이는 영과 영적으로 투쟁하는게 중요하다

 (주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예수님과 함께 가난한 (거지의) 길을 가는 영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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