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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29일 야곱의 우물- 마르 11,11-26 묵상/ 커가는 사랑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8 조회수376 추천수3 반대(0) 신고
커가는 사랑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11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을 둘러보신 다음,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타니아로 나가셨다.
12이튿날 그들이 베타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13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르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15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16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17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 로 만들어 버렸다.” 18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9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20이른 아침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스승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22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성형수술이 대 ( ?)유행이다. 과거에는 마흔이면 불혹 (不惑)이네, 쉰이면 지천명 (知天命)이네, 예순이면 이순 (耳順)이네 하는 문자를 써가며 ‘내실 다지기’ 와 관련한 말을 더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사람 몸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만들려는지 보톡스 · 고주파 · 신경차단 · 근육축소 등 이름조차 생소한 시술법을 동원해 각 부위별 ‘몸짱’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실 다지기’ 에 소홀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는 생각조차 못한 외모지상주의가 기승을 부르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내 주변에도 여러 사람이 얼굴에 있던 점을 빼고, 얼마 전에는 가장 친한 친구까지 대대적인 얼굴 공사를 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은 점까지 모조리 빼고 이마에 지방 주입술을 해서 주름을 폈다고 자랑했다. 마치 다림질한 것처럼 쫙 펴진 친구의 이마를 보면서 나도 내 이마를 쓰다듬은 적이 있다. 친구가 들려준 정보에 따르면 지방 주입술의 유효기간은 2년이라고 한다. 2년 후에 어떻게 될지 그게 더 궁금해진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외모지상주의에 빠져가는 우리 모습이 내실 없고 겉만 화려하고 말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같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열매 맺지 못한 채 겉만 화려하게 가꾸려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느닷없이 손에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시겠다고 들이닥치시면 어쩌나 싶다. 세상과 타협하며 흥정과 속임수와 절도를 일삼는 내 영혼에게 ‘기도하는 집’ 을 ‘강도의 소굴’ 로 만들었다고 나무라시면 어쩌나 싶다. 나의 겉치레를 더 이상은 도저히 못 참아 주겠다고 저주라도 하거나 베어버리라고 하면 어쩌나 싶다.

하느님의 자녀로, 교회의 지체인 내 안에 그분보다는 다른 것들에게 더 자리를 내주고 있는 요즘 내게 오늘의 복음은 대단히 부담스럽다. 그러면서도 아쉬울 때면 기도의 확신보다는 의심을 앞세우며 갈 곳 없어 온 듯한 초췌한 모습으로 그분 앞에 앉곤 한다. 몸만 기도하는 사람 흉내를 낼 뿐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나를 향해 하느님께서는 그래도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라며 감싸 안아 주신다. 내 영혼의 타락이 깊을수록 하느님의 사랑은 커가는 듯하다.
김혜경(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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