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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공간 -비움(kenosis)의 영성-" - 5.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9 조회수320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5.28 연중 제8주간 금요일

1베드4,7-13 마르11,11-25

 

 

 

 

 

 

"생명의 공간 -비움(kenosis)의 영성-"

 

 

 

꽃향기, 생명의 향기, 하느님의 향기 가득한

성모성월 5월의 신록의 자연 공간입니다.

하느님은 ‘생명의 공간’ 자체이십니다.

어제 있었던 순간적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평화의 집’ 피정 집에 피정 온 어느 자매를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텅 빈 피정 집에 들어가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고 방문을 열었습니다.

 

’아!’ 하는 탄성과 더불어 순간 자매님의 얼굴이 환해졌고

아주 편안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쾌적한 피정 집 공간, 잘 정돈 된 방,

창밖의 아름다운 신록의 풍경이 자매님을

마음 넉넉하고 푸근하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본능적으로 공간을 갈망하는 사람들임을 절감했습니다.

공간은 생명을, 자유를, 평화를, 사랑을 뜻합니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은 텅 빈 생명의 공간 자체입니다.

하느님 생명의 공간 안에 살아가는 뭇 중생들입니다.

마치 한 발 짝 뒤로 물러나 넉넉한 공간을 마련해 준

산 같은 배경의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처럼 넉넉한 자유와 생명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지도자들이

참으로 그리운 시절입니다.

옛 수도자들은 텅 빈 생명과 자유의 공간 자체이신 하느님을 찾아

광활한 사막에 갔습니다.

 

쾌적한 피정 집 공간에 탄성을 발하며 좋아하는 자매님을 보는 순간,

‘아, 나도 이런 텅 빈 공간이 되고 싶다.

모두가 편안히 쉴 수 있는 생명과 자유의 공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도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여기 수도원을 찾는 까닭도

아마 신록으로 빛나는

넓은 자연 공간 안에 자리 잡은 수도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 생명 가득한 신록의 자연 공간이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평화를 줍니다.

 

대부분의 싸움은 결국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위한 것입니다.

공간이 좁으면 저절로 싸울 수뿐이 없습니다.

하여 상대방의 공간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구체적 사랑의 실천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안팎으로 비움으로

이웃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는 '비움(kenosis)의 영성'이 참 절실합니다.

비움의 모범이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자기 비움은 그대로 하느님의 겸손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워

세상 모든 이들의 생명의 공간, 자유의 공간이 되신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께 오늘 복음의 성전정화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성전은 여기 우리 요셉수도원 성전처럼

단순하고 텅 비워져있어야 좋습니다.

자유와 생명의 거룩한 공간인 기도의 집, 성전이

세속의 잡다한 것들도 꽉 채워진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외적 공간이 상징하는바 내적 공간입니다.

밖으로만 비울 것이 아니라 안으로도 끊임없이 비워야 합니다.

반감을 품고 있는 형제를 용서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 마음 깨끗한 내적공간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넓게 살 수 있는 길은

끊임없이 안팎으로 비워 넉넉한 내적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공동생활에서 내외적 공간 마련을 위해

그리도 강조되는 게 침묵과 고독, 가난과 겸손입니다.

 

바로 베드로가 가르쳐 주는 종말론적 삶의 자세가

내외적 공간을 마련해 줍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현자의 말처럼

다음 말씀처럼 조용히, 평범히 사는 것입니다.

 

“만물의 종말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

 

구체적으로 서로의 내외적 공간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실제적, 구체적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채우라 내외적 자유의 공간입니다.

 

“불평하지 말고 서로 잘 대접하십시오.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내외적 텅 비워져 있을 때 따뜻한 환대요,

각자 자기 받은 은사에 충실할 때

균형과 조화, 자유와 평화의 넉넉한 내외적 공간의 비움 공동체입니다.

하느님은 저절로 이런 비움 공동체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텅 비워진 우리 마음의 내적 공간을

당신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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