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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31 조회수681 추천수11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9주간 화요일 -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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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은 군대에 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군 생활을 해야 하는 동안 감옥신세를 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살인을 하지 말라는 법을 주셨는데 사람을 살해하는 총을 들고 사람 죽이는 훈련을 하고 또 전쟁이 나면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총을 쏘아야 하는 것을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법보다 하느님의 법이 더 우선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으면 죽었지 전쟁이 나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대 가톨릭교회 때에도 하느님의 법을 더 우선시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목숨을 바쳐야했습니다. 하느님만을 섬겨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은 제사를 지내며 죽은 이들에게 음식을 차려 바치고 절을 하는 등의 예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앙인으로 볼 때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는 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 신자들은 사람이 만든 법보다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위의 모습들이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쳐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라고 대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로마에 세금을 내라는 말씀입니다.

일제치하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일본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조선 사람으로서 당연히 바쳐야 한다고 대답한다면 아마 매국노 취급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와 같은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억지로 나라를 빼앗고 그 나라가 세금까지 강요하는데 그 요구하는 대로 잘 따라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애국심이 발동하여 남의 나라를 침범한 로마에게 우리가 부당하게 책정하는 세금까지 꼬박꼬박 왜 내야하느냐고 대답하셨다면 예수님은 정치범으로 그들이 데리고 온 헤로데 당원들에게 끌려가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원하는 일이었지만 예수님은 그것에 걸려들지 않으시고, 또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쳐라.’라고 하시며 하느님께 대한 의무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말씀하셔서 당신의 대답을 흠잡을 수 없도록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옳게 해석하면 세금, 그런 것은 내라는 대로 내고 믿는 사람은 우선 하느님께 대한 의무에 더 충실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법이라고 하여 세상의 법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상의 권력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그 법에 순종해야 한다고 하며 노예도 도망치지 말고 주인에게 충실하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노예법이란 인간의 불평등을 정당화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가르침과는 반대됩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그 법까지 존중하라고 하는 것이고 예수님도 오늘 세상의 법에 저항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피가 끓어오르는 젊은이들에겐 이해 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던 것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다 끝나고 나서야 제사를 허용하였습니다. 교회도 나중에서야 세상의 법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군대에 가지 않는 여호와의 증인은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나라에 산다면 그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여 나라를 보호해야합니다.

 

이는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하는 법입니다. 성자께서도 세상에서 사시기 위해서는 세상의 법을 따르셨습니다. 육체를 지니셨고 숨을 쉬셨고 당시의 옷과 음식을 입고 잡수셨고 당시의 법에 따라 할례를 받으셨고 하느님이시면서도 사람인 부모에게 순종하셨으며 세금도 내셨고 또 부당한 죽음에 항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이셨지만 사람으로 사시기 위해서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도 당당히 받아들이시는 그 모습 안에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라는 계시가 드러납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드립시다. 먼저 태어났다면 선배 대접을 해 주고 직장 상사에게는 순종하고 사회에서도 해야 할 의무를 다 합시다. 이는 이 사회에 머물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세상의 질서를 깨지 않기 위해서이고 우리나라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음을 더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짧은 묵상>>

세상을 살기 위해선 당연히 지켜야 하는 의무들이 있습니다. 작게는 아이들이 부모님의 말씀에 잘 따라야 하는 것에서부터 신호등을 지켜야 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면 처벌을 받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의무들이 더 많아집니다.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야 하고 돈을 벌면 세금을 내야하며 결혼하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의무들이 더 생겨납니다.

가끔은 이런 무게들이 너무 버거워서 군대 면제 받기 위해 속임수를 쓰기도 하고 결혼의 끈을 끊고 이혼하여 홀로 살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의무들을 지키지 않으려면 홀로 살면 그만입니다. 만약 세상의 모든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면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무 없이 혼자 살기보다는 무거운 의무를 수행하며 사회에 속해 살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혼자서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의무들이 나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데 쓰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라고 합니다. 세상의 의무들을 충실히 수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라고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위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우려면 하느님을 안 믿고 살아가면 됩니다. 굳이 교무금이나 주일미사 의무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 머물러 살려고 갖은 의무들을 다 하면서, 사실은 하느님께 대한 의무는 하기 싫어서 영적으로 홀로 떨어져 사는 사람이 의무를 다 하는 사람보도 항상 더 많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또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세상에서 그 많은 의무를 수행하지만 자신 영혼의 안전을 위해서는 작은 의무도 마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무엇이 필요하여 당신께 대한 의무를 강요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모든 것을 다시 아버지께 돌려드려 돌아가신 것이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되는 계기가 된 것처럼, 우리도 그 감사의 의무를 다해야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 영혼구원을 위해 여러 가지 의무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 내 자신을 봉헌하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선택해서 살았다면 그 순간만이 가치 있는 삶으로 남게 됩니다. 빵과 포도주가 봉헌 될 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듯이 우리 자신도 봉헌되는 순간만이 영원한 가치를 보장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것, 그 의무는 바로 우리 썩어 없어질 육체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기 위함인 것입니다.

 

 

 

 
 
 
 
< 참 좋으신 주님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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