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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혼인의 의미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2 조회수759 추천수14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9주간 수요일 - 혼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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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저보고 결혼하지 말고 사제가 되어 깨끗하게 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결혼 생활이 힘드셨나봅니다. 또 요즘은 결혼해서 사시는 분들이 저보고 사제되길 잘 했다고 합니다. 결혼한 대학 친구들도 혼자 사는 제가 부럽다고 합니다.

사실 조금이라도 남은 결혼의 환상도 고해성사를 조금 듣다 보면 다 깨지게 됩니다. 고해성사를 듣다보면 부부간의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중년이 된 부인이 남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시집을 못 가고 있는 노처녀에게 이렇게 충고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결혼하지 마. 괴로운 것보다 외로운 게 나!”

바오로 사도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결혼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계실까요?

 

예수님은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논쟁하시면서 결혼의 의미를 더 종잡을 수 없게 만드십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그들에겐 내세가 없으니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모세 오경은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어려운 질문을 합니다.

모세의 법엔 형이 자녀를 두지 않고 죽으면 동생이 그 형수와 살아서 형의 대를 이어주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형이 자녀를 두지 못하고 죽었고 그래서 둘째가 형수와 살게 되었는데 둘째도 자녀 없이 죽습니다. 이렇게 일곱 형제가 모두 같은 여자와 살았지만 모두 자녀가 없이 죽게 됩니다. 만약 부활이 있다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세에 혹 결혼이 있으면 좋겠다는 우리 혼자 사는 사람들의 환상을 다 깨놓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내세에서는 이곳에서처럼 혼인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뒤 이어서 부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그들이 모세오경은 믿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모세 오경에서 하느님께서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느님은 이미 죽은 선조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하느님 안에서는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왜 다시 혼인하는 일이 없을까요? 예수님께서 불붙은 떨기나무의 예를 드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불붙은 떨기나무는 하느님과 인간의 혼인의 상징입니다. 나무는 인성을, 불은 신성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면서도 동시에 사람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을 계시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신성과 인성이 서로 한 몸이 되도록 결합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체 안에 이미 한 몸이 되는 혼인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인성이 신성과 결합하여 하느님과 한 몸이 되었듯이, 세상의 것들도 하느님과 결합하여 한 몸이 된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육체는 썩어 없어져야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서 취하신 육체를 지니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다시 말해 신성과 한번 결합된 인성은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인성은 곧 교회이고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신랑이시고 우리는 교회이고 그 분의 신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면서 그 분의 육체처럼 영원한 신성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성자께서 성부와 한 몸을 이룸으로써 성부의 모든 신성을 부여받게 되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나라에서 더 이상 혼인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혼인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는 이 혼인만이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관계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이 세상의 혼인은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것은 세상 창조 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도록 하느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과 혼인으로 한 몸을 이루듯, 남자와 여자가 혼인하여 한 몸을 이루어야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인간은 사랑하도록 창조 되었고 참 남자가 되고 참 여자가 되는 사랑이 사랑의 가장 기본입니다. 인간은 한 몸이 되는 사랑을 함으로써 비로소 참 인간이 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의 관계는 하늘나라에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더 완전해집니다. 성모님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였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냥 보통 여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였으면 영원히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남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시던 육체, 그것도 상처까지도 다 지니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것처럼 이 세상에서의 어떤 역사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고스란히 지니고 올라갑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부부였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하늘나라에서 서로 더 완전히 사랑하고 그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 될 것입니다.

이렇게 부부는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가 혼인의 신비를 통해 서로 한 몸이 되는 모델을 이 세상에 계시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봉헌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의 혼인이 있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이고, 결혼하여 사는 사람들은 그 혼인이 어떤 것인지 계시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부관계가 어떠한 것이 되어야하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이 되는 것을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짧은 묵상>>

사람에겐 두 가지 상반되는 본성이 공존합니다. 행복해지고 싶기도 하고 행복하기를 원치 않기도 합니다. 사랑하기를 원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를 원하지 않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기도 하고 혼자 있고 싶기도 합니다. 모든 상반되는 본성이 우리 안에 공존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본성이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반드시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너는 왜 영원한 천상의 행복을 거부하였느냐?”

그러면 이렇게 항변할 것입니다.

“세상에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고, 또 세상에 지옥에 오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도 싶은데 왜 이 미움만 있는 지옥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대답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런 마음도 있었겠지만 네가 더 강하게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고 행복이 아니라 절망과 고통이었다.”

사람들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안 좋은 것들을 바라고 선택하기도 합니다. 오늘 바리사이 사람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믿어도 부활은 믿지 않습니다. 만약 부활이 있다면 이혼하거나 여러 사람과 결혼한 사람들은 가족 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질책하십니다. 그러나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들이 왜 부활이 있기를 원치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맘대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심판이 있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결국 이 세상만 원하고 영원한 하느님 나라는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본인들도 모르게 참 사랑과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심판 때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이룰 것이고 외롭게 고통 받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선택이지만 80%의 사람들은 미움과 고통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는 대로 될 것입니다.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만 미워하고 싶기에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워하기를 원치 않으셔서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원하면 그대로 됩니다. 미워하는 것도 지옥에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결국 조금씩 내가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지금 행복하고 안 하고는 자신이 선택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행복하기를 원합시다. 먼저 영원한 생명을 찾읍시다.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순간부터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맞보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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