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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떠날 준비" - 6.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2 조회수393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6.2 연중 제9주간 수요일

티모1,1-3.6-12 마르12,18-27

 

 

 

 

 

"떠날 준비"

 

 

 

예전에 어느 전직 대통령을

‘준비된 대통령’이라 일컫는 것을 자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를 되새기며 언뜻 ‘준비된 죽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도 성인은 그 규칙에서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만

과연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얼마나 되겠는지요.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 수녀원 강의 차 방문하여 하룻밤 자고

강의 후 떠날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런저런 짐을 다 챙긴 후 떠날 준비가 완벽히 됐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는데 가다가

문득 성전에 놓고 온 돋보기가 생각났습니다.

즉시 전화로 부탁하여 수녀님이 가지고 왔습니다만,

이런 작은 떠남에도 이런 일이 있는데

죽음을 앞두고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뒤에 남겨두고 떠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을까 깊이 묵상한 기회였습니다.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 와 정리할 수 없는 죽음은

얼마나 엄중한 현실인지요.

과연 지금 이 세상을 떠난 다면 어느 정도 떠날 준비가 되었는지요?

한 번 정리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되는지 잘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지상에 잠시 손님으로 와 살다가 하늘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귀천이라 부르기도 하고,

하늘에서 부르셨다고 하여 소천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란 시에서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노래했습니다만

과연 이런 아름다운 삶에 아름다운 죽음을 노래할 수 있는 이들

얼마나 될까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즉 고생스럽고 천하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좋다는 속담인데

실감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짧게만 느껴지고

삶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진다 합니다.

이렇게 생명의 초록빛, 생명의 새소리, 생명의 꽃들 가득한 계절에는

생명의 집착은 더 강할 수뿐이 없는 게 엄연한 인간현실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죽음이며,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의 날짜는 하느님만 아실뿐 아무도 모릅니다.

과연 죽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선종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기에

우리는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믿을 수뿐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참 귀하고 고맙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장가들거나 시집가지 않고

하늘의 천사들처럼 이미 현세에서 죽음을 넘어

영원한 부활의 삶을 앞당겨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정의 수도자들입니다.

아니 동정의 수도자들뿐 아니라

주님을 참으로 믿는 모든 이들 지금 여기서 죽음을 넘어

영원한 부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를 깨닫는 게 바로 구원입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현세 실존과 부활 실존의 질적 차이를 강조합니다.

 

“자연적인 몸으로 묻히고 영적인 몸으로 부활합니다.”(1코린15,4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태로

  변화시킬 것이니,

  곧 만물을 당신께 굴복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하실 것입니다.”

(필립3,21).

 

다음은 제가 미사 중 죽은 이들을 기억할 때

간절한 마음으로 외우는 기도문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많은 이들 역시

큰 위로와 평화와 힘을 얻는 기도문입니다.

 

“주님,

  신앙의 보람을 지니고 저희보다 먼저 평안히 잠든 교우들을 생각하소서.

  주님 간구하오니 그들과 그리스도 안에 쉬는 모든 이를

  행복과 광명과 평화의 나라로 인도하소서.”(감사기도 1양식).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감사기도 2양식).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 모두

  주님의 나라에 너그러이 받아들이시며

  저희도 거기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저희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주실 그때에 하느님을 뵈오며

  주님을 닮고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리이다.”(감사기도 3양식).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 잠든 교우들과

  주님만이 그 믿음을 아시는 죽은 이들도 모두 생각하소서.”

(감사기도 4양식).

 

참 아름답고 큰 위로와 평화를 주는 기도문들입니다.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현세의 죽음 이후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주님과 함께 현재 지금 여기에 올인하여

죽음을 넘어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행복은 저기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과정 속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을 못 살면 앞으로도 못 삽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나의 존재자체입니다.

고맙게도 사도 바오로가

티모테오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구체적 부활 삶의 지침을 주십니다.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시는 게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대로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사를 불태우며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에 따라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적 삶에 최선을 다할 때

죽음을 넘어 지금 여기서 영원한 삶의 구원입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이듯이

어찌 보면 죽음 역시 생명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 앞 하얀 꽃 잎들 진 자리마다

빨갛게 익어가는 버찌 열매를 보고 새삼 깨달은 진리입니다.

 

 

"하얀 눈물 같은 버찌 꽃자리마다

 빨간 기쁨으로 익어가는 열매들

 죽음과 삶도 이와 같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요한11,25ㄴ-26ㄱ 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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