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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산을 보려면 산에서 나와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4 조회수798 추천수12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9주간 금요일 - 산을 보려면 산에서 나와라

 

 

외국에 처음 나와서 살게 되면 문화의 괴리를 적지 않게 느끼게 됩니다.

제가 처음 유학 나왔을 때 머물 게 된 곳은 신부님들이 사는 기숙사였습니다. 저만 신학생이었기 때문에 신부님들이 미사 드릴 때 혼자만 밑에 있었습니다. 물론 아무 말도 못 알아들을 때였습니다.

한국 신학교에서 나름대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저로서는 유럽 신부님들이 미사 드리는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먼저 어떤 신부님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미사를 드리셨습니다. 또 어떤 신부님은 감기가 드셨는지 경문 읽는 소리가 다 묻히도록 연신 코를 크게 푸셨습니다. 또 어떤 신부님은 팔짱을 끼고 한 다리를 장궤틀에 올려놓고 짝 다리를 집고서서 미사를 드리셨습니다.

나중에서야 그런 것들이 여기에서는 큰 문제가 안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유럽이 그래서 참 자유로운 나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처럼 무심코 재채기를 하였는데 또 그것은 여기에서는 예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코를 아무리 크게 풀어도 괜찮지만 재치기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치기를 소리 내지 않고 하는 법을 익혀야했습니다.

 

한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또 다른 나라에서는 어리석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미녀들의 수다를 보면 이런 문화적 차이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들은 한국 어린이들이 그렇게 공부에 시달리는 것이 가장 불쌍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공부 안 하고 노는 아이들을 가장 불쌍하게 생각 할 것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렇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닐 수 있구나!’라고 느끼며 마음과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유학생활 몇 년을 하고 한국에서 공부한 사제들이 왔습니다. 저는 부제였고 복음을 읽을 때였습니다. 한국은 복음을 읽기 전에 손을 합장을 하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그러나 저는 습관대로 손을 벌리면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라고 하였습니다. 미사 끝나고 이것에 대해 한국에서 공부하신 신부님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한국 신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데 유럽은 좀 엉망이라는 것입니다.

다행히 일행 중에 전례를 공부하는 신부님이 계셔서 전례 상으로는 손을 벌리던 모으던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본질보다는 형식주의에 매여 살도록 교육을 받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먼저 문제제기를 하십니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정말 성경에서도 다윗의 별이라든가 다윗의 왕좌를 영원히 이을 메시아가 예견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것까지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 세 사람에게 율법학자들이 메시아가 날 곳에 베들레헴이라고 일러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런 믿음을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마태오는 그의 복음에 처음서부터 예수님의 족보를 쓰며 다윗의 후손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 될 수 없음을 다윗 스스로가 쓴 시편을 근거로 들면서 증명합니다.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메시아는 겉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이렇듯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하는 이들도 찾아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분을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여 성경을 적용시켜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모자이크와 같은 것입니다. 한 부분을 떼어내서 전부인양 말한다면 오류에 빠져 이단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아야 더 너그러워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의지도 없고 열심히 살려고도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기준으로 판단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들의 전부를 본다면 어떤 면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일지라도 나보다 더 큰 인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저도 많이도 배우고 변하게 되었습니다.

장기를 직접 두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제 삼자가 되어 훈수를 두면 잘 보이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더 잘 보이게 마련입니다. 산 속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정말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파는 사람만큼 위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욥은 아무 죄도 없지만 수많은 고통을 받습니다. 당시의 믿음으로 보면 의인이 고통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까지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는 욥을 나무랍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하느님의 뜻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완전한 진리는 오직 하느님 한 분입니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나와 또 많은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도 하느님의 절대적 진리 앞에서는 틀릴 수도 있다는 유연한 마음으로 삶과 사람을 보고 이해하려해야겠습니다.

 

<<짧은 묵상>>

며칠 전 성지순례 하시던 신자들이 우리나라 월드컵 축구 대표 팀을 우연히 독일 뮌헨 공항에서 만났습니다. 다른 신자들은 선수들과 사진 찍느라고 난리였는데 한 개신교 신자인 선수는 수녀님께 와서 대뜸 ‘교황의 무류권’에 대해서 설명해 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녀님은 왜 교황님이 오류가 없는지 설명해 주실 수 없으셨습니다. 사실 오류가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왜 교황에게만 오류가 없어야하는지 설명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어떤 사람도 오류가 없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육체적인 감각들은 오류들로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달을 보면 달이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고 별을 보면 바로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달은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것이고 우리가 보는 별들의 빛 중엔 수십억 년 걸려 도착한 빛들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인류가 생겨나기도 전의 과거의 빛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하기 때문에 명품 가방이나 큰 차들이 인기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들을 꾸미는 행위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복음에서도 사람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도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다윗의 후손인 요셉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고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과 아담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이십니다. 육적으로 사는 사람의 눈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육은 영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어도 마귀의 힘을 빌려서 그 일을 하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사람은 오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진리의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예수님이나 성모님은 모든 것에서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것을 그대로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보느냐고 물으십니다. 모두가 세례자 요한, 엘리야나 예언자로 보지만 오직 베드로만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아버지라고 하시며 베드로 위에 바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에 하느님의 권한인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십니다. 즉,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하느님의 성령을 통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베드로에게 진리의 성령을 충만히 내려주셔서 올바로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음을 확인하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는 교회는 없고 사실 교회도 성령강림을 교회의 공식적인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그 성령을 통해 교회가 오류 없이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오류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그 위에 세운 교회는 성령님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거룩함이 아닌 성모님의 깨끗함이 함께 그 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모님께 성령님이 가득히 내려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듯이 성모님을 포함하고 있는 교회엔 그 깨끗함 속으로 성령님이 충만히 오실 수 있고 그로인해서 교회가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믿을 교리들은 오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을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교회의 무류권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 아님을 명확히 하시기 위해 다윗이 지은 시편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는 것은 이렇게 진리가 됩니다. 성모님께는 성령님의 ‘은총’이 충만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성모님의 무류성은 인정해야 합니다. 또 교회가 시작될 때, 즉 성령강림 때 성모님께서 베드로와 사도들과 함께 계셨음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요한 묵시록에 신부, 즉 교회와 성령님이 함께 신랑이신 어린양께 ‘오소서!’하고 계신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모두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처음부터 마리아와 성령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황은 그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오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대표로서 공표하는 교리가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엔 바로 마리아와 성령님께서 교회 안에 함께 하신다는 조건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 기뻐하라 내 영혼아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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