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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 축일 2010년 6월 6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4 조회수373 추천수5 반대(0) 신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 축일  2010년 6월 6일


루가 9, 11-17.  1고린 11, 23-26.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2독서로 들은 고린토서는 그 만찬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식후에도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것이 오늘 우리의 성찬, 곧 미사전례의 기원(起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는 믿음이 제자들 안에 발생하면서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예루살렘으로 모여듭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도록 버려두신 이유를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머거리들을 듣게 하고, 벙어리들을 말을 하게 하면서 “모든 일을 좋게 하신 분이었다.”(마르 7, 37)고 기억합니다. 다만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율법과 제도를 절대화하면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하느님을 배경으로 그들 자신도 사람들 위에 무섭게 군림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하느님이 사랑하신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큰 소리 칩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그들 편에 계시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조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그들과 달리 생각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람이 만든 법이나 제도와 동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모든 마음 안에, 또 자기 스스로는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자비를 실천하는 모든 마음 안에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믿고 계신 하느님의 진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믿음 따라 실천하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권위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그분을 제거합니다. 강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껏 말하고 소신대로 일하는 사람을 이 세상의 권력은 살려 두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제자들은 그분이 평소에 하신 말씀들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마르 8,34).


제자들은 모여서 예수님이 최후만찬에서 당신을 기억하여 행하라고 말씀하신 성찬을 거행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이 빵을 들고 또 포도주를 잔을 들고 하신 말씀의 뜻을 차차 알아듣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으로 당신 생애를 요약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당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빵을 들고, ‘내어주는 당신의 몸’이라고, 포도주 잔을 들고, ‘쏟는 당신의 피’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당신의 생애가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는 삶이었다는 사실을 말씀으로 남기셨습니다. 신앙인들이 성찬에서 그 빵을 먹고 그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명, 곧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는’ 하느님 나라의 생명이 그들 자신 안에도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은 오늘과 같이 객관적 사실 보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꾸며서 그 안에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아 전하는 이야기 문화의 시대였습니다. 그리스의 신화, 로마의 신화 등이 모두 이야기 문화의 소산입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성찬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신다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을 먹이셨듯이, 그분은 오늘도 성찬에서 많은 사람을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의 그런 의도가 오늘의 복음 안에도 보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초기 교회가 거행하던 성찬 의례에서 반복해 사용되던 양식(樣式)입니다. 그 시대 성찬에 참여하던 사람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 양식입니다.


초기 신앙공동체는 성찬을 중심으로 발족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유언으로 남긴 성찬입니다. 제자들은 모여 성찬을 거행하면서 예수님이 그렇게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신 이유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내어준다.’ ‘쏟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모든 일을 좋게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느님에 대해 유대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 당국이 죄인이라고 버린 이들과 어울리면서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뿐 아니라, 아끼고 사랑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예나 오늘이나 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를 제거하여 자기의 권위를 세웁니다. 그것이 못난 우리 인간들이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아서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셨습니다. 

  

우리가 거행하는 성찬은 빵과 포도주 안에 일어나는 기적이 아닙니다. 빵을 예수님의 몸이라 말하고,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라고 말하는 것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빵은 그대로 빵입니다. 포도주도 그대로 포도주입니다. 옛날 예루살렘의 만찬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가 성찬에서 반복하면서 우리는 그 빵을 예수님의 몸, 그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라고 인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먹고 마십니다. 유대인들에게 몸은 인간관계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성찬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빵을 먹고 예수님의 피라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인간관계, 곧 자비하고 사랑하신 그분의 인간관계와 내어주고 쏟으신 그분의 생명을 우리도 살겠다고 마음다짐 하는 것입니다. 성찬은 우리를 변하게 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살게 합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사신 삶을 기억하고 그와 같이 우리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성찬은 우리를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성사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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