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5 조회수625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6월 5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Amen, I say to you, this poor widow put in more
than all the other contributors to the treasury.
For they have all contributed from their surplus wealth,
but she, from her poverty, has contributed all she had,
her whole livelihood.
(Mk.12.43-44)
 
 
 
제1독서 2티모테오 4,1-8
복음 마르코 12,38-44
 
어떤 농부의 집 암소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농부는 너무나 기뻤지요. 그의 아내도 기뻤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한 마리가 아닌 이렇게 한 번에 두 마리를 낳은 것은 순전히 하느님 은혜에요. 그러니 이 중에서 한 마리는 하느님께 바치도록 해요.”

남편이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소를 하느님의 소로 봉헌해야 할지를 결정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지요.

“여보, 어느 것을 하느님의 소로 하고, 어느 것을 우리 소로 하지?”

아내도 이를 결정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음 날 더욱 더 눈길이 가는 소를 하느님의 소로 결정해서 봉헌하자고 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새끼 송아지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소를 본 농부는 어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여보, 어떻게 하지? 글쎄 하느님의 소가 죽고 말았구먼.”

이 농부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왜 매번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소가 죽어야 할까요? 왜 하느님께는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을 봉헌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왜 내가 하느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야만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 장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먹고 사는 것도 넉넉하지 못했던 가난한 과부. 그러나 그녀는 하루 먹을 생활비 전부를 봉헌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 비하면 그녀가 봉헌한 액수는 너무나도 적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봉헌한 것에 비교할 때, 렙톤 두 닢은 너무나도 작은 액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돈의 많고 적음을 보시는 분이 아니지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받은 것들을 과연 하느님의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봉헌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들의 봉헌을 다시금 반성해보았으면 합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나의 소’라고 말하면서 꽉 움켜쥐면서도, 내게 필요 없는 것들은 ‘하느님의 소’라면서 큰 인심 쓰듯이 봉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지금 나의 모습이 과연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는지를 떠올리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참된 봉헌을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함에 있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만큼이나 중요한 말이 있다. 그것은 “당신 말이 맞습니다”라는 말이다.(로렌 아놀드)



 

고통 속에 있다면(‘좋은생각’ 중에서)

어느 절에 젊은 스님이 새로 들어왔다. 한데 젊은 스님은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매일같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를 지켜보던 큰스님이 젊은 스님에게 소금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그러고는 물그릇에 소금 한 줌을 넣게 한 뒤, 그 물을 마시라고 했다. 젊은 스님은 인상을 찡그리며 소금물을 마셨다. 큰스님이 물었다.

“맛이 어떤가?” “짭니다.”

그러자 큰스님은 또다시 소금 한 줌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젊은 스님을 데리고 절을 나섰다. 한참 뒤 호숫가에 도착하자 큰스님이 물었다.

“맛이 어떤가?” “시원합니다.”

“소금 맛이 느껴지나?” “아니요.”

이에 큰스님이 말했다.

“인생의 고통은 소금과 같네. 짠맛의 정도는 고통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 자네가 고통 속에 있다면 작은 그릇이 되는 것을 멈추고 큰 호수가 되게나.”

그날 이후 젊은 스님은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Your Precious Day - Yuriko Nakamura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