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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껍데기의 삶이냐 알맹이의 삶이냐?" - 6.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5 조회수339 추천수1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6.5 토요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673-754)기념일

2티모4,1-8 마르12,38-44

 

 

 

 

 

"껍데기의 삶이냐 알맹이의 삶이냐?"

 

 

 

열정과 순수 가득할 때 알맹이의 삶이지만

열정과 순수 사라지면 껍데기의 삶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삶은 어느 쪽입니까?

오늘 말씀묵상과 연결되어 아침성무일도 욥기 독서 중

다음 주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나의 종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솔직할 때 구원이요,

솔직함, 정직함, 진실함은 구도자의 기본적 자질입니다.

또 말씀 묵상 중 떠오른 60년 대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였습니다.

예언자적 저항시(抵抗詩)로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거짓과 허위, 위선과 불의를 질타하는 시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서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그대로 알맹이의 순수를 갈망하는

역사의식 투철한 예언자의 절규와 같은 시입니다.

껍데기와 알맹이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많은 이들이 저의 책,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라는 제목을 보고 잡는 데

역시 알맹이의 순수를 찾는, 잘 살고 싶은 갈망의 표현입니다.

타성에 젖어 편하고 쉽게 살다보면

알맹이의 열정과 순수는 사라져 껍데기만 남는 게 대부분의 인간현실입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껍데기의 육신만 남는 것 같은 데

열정과 순수 사라져 영혼 역시 껍데기만 남는 다면

그 인생 얼마나 공허할까요.

오늘 기념하는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말 그대로

알맹이의 순수를 사신 분이고,

순교영성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수도승들

열정과 순수 가득한 알맹이의 삶을 추구합니다.

 

 

깨어 살지 않으면 껍데기의 삶, 쭉정이의 삶입니다.

주님의 눈길은 알맹이의 삶을 사는 이들을 향합니다.

그 어떤 허영, 위선, 가식, 허위의 포장도

주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 이런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외적인 것들은 추호의 가치도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겉모습 껍데기를 보시는 게 아니라 속마음 알맹이를 보십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와 부자들은 껍데기 삶의 전형입니다.

 

‘보이기 위한 긴 겉옷, 회당에서의 높은 자리,

  잔치 때의 윗자리,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즐기는 것,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긴 기도’

 

정말 실속 없는 허영의 공허한 껍데기 삶입니다.

큰돈을 헌금함에 넣은 많은 부자들 역시 대동소이합니다.

주님의 그윽한 눈길은 줄곧 가난한 과부에게 머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가운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늘 우리 마음을 켕기게 하는 말씀입니다.

부자들은 소유의 얼마를 적선하는 양 바쳤지만,

가난한 과부는 알맹이 순수한 마음 전부를 상징하는

생활비 전부를 바쳤습니다.

복음의 가난한 과부와 더불어 1독서의 사도 바오로의 삶이

알맹이 순수한 삶의 모범입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엄숙히 지시한다.’는

대목에서 그 알맹이 순수한 삶의 비결이 드러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살았기에

부끄러움 없는, 본질에 충실한 알맹이 순수한 삶이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을 완수하십시오.”

 

사도 바오로의 알맹이 순수한 삶이 그대로 들어납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보아주든 말든,

좋든 싫든, 감정이나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항구히 복음 선포자의 알맹이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비단 복음 선포자의 삶만이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의 삶의 자세도 이러해야 할 것입니다.

수미일관,

알맹이 순수한 삶에 항구했던 사도 바오로의

유언과도 같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루를 마쳤을 때,

생의 마지막 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 열정과 순수의 알맹이 말씀과 성체를 선사하시어

우리 모두 알맹이 순수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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