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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성사적인 삶 ㅡ 가난하고 깨끗한 마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5 조회수459 추천수2 반대(0) 신고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성체성사적인 삶

가난한 마음 = 자신을 '내어 주는' 마음
( 게시글 ; 완전한 가난 참조 )
 
 
부자 청년 (과) 가난한 과부

 

 

"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

 

물은
 
깊기 때문이 아니라 깨끗하기 때문에
 
하늘과 산과 숲을 담아 낸다
 
 
 
물은 깊어서가 아니라
깨끗해서 하늘과 산, 숲을 담아내고 있다
마음이 깨끗한 영혼은 하느님을 뵙는다
머리가 깊다고 하여 하느님을 잘 보는게 아니다 하겠다
하느님을 바라본다는 의미는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머리를 사용하여 이것 저것들을 주어 담는다고
깊은 진리를 더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 '든 사람'이 되어지는게 아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바라보는 진리까지 깊어지고
하늘과 산을 포용하는 '된 사람'으로 변하여진다
 
 
양심이 맑아 깨끗하게 '믿는' 사람은
깊이 '묻는' 사람보다 영혼이 맑다
영혼이 맑으면 거기에서 흘러 내리는 물도 맑다
맑은 샘물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찾는 은밀한 장소이며
깊은 물을 찾는 사람들은 혼잡하고 무리지어 다니면서 시끄럽다
 
 
깨끗한 마음이 더러워져서 혼탁해 질 때에
순수한 믿음은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간다
믿음은 순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마음이 깨끗해야 하느님을 본다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성경말씀에 관한 믿음의 순종이 되는 것이다
 
 
머리가 깊어 언어 유희적인 말의 기교를 정신에 담을수록
힘없는 목뼈는 꺽여지며 갈라진 마음은 믿음에서 벗어난다
진리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생명의 샘물은 결코 마시지 못하며
영혼은 부질없는 환상을 쫓아 정처없이 헤매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감흥적인 말들에 온 정신을 팔고
거기에 미친듯이 떠돌아 다닌다
 
 
 
 
순수한 믿음 = 믿음의 순종
 
 
몇년 전에 실로 고난의 삶을 살았다. 방세를 내지 못해 주인 집에서 쫓겨나서 볼품도 없는 단촐한 살림살이는 축축히 내리는 비에 홀딱 젖기도 하였다. 반찬이라고는 노란 다광(단무지) 내지는 조림 김이다. 입에 들어가는 졸깃한 고기는 아예 맛 볼 수도 없었다. 수녀님께서 주신 서너개의 빵을 손에 들고 감사드리며 주님께 찬미드렸다. 이런 빈곤한 처지의 삶은 나 자신이 기꺼이 선택한 삶이었다.
 
노가다 하면서 내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오늘 돈을 벌면 꼭 고기를 먹겠다고 새벽에는 다짐해 보지만 막상 임금을 받아 삼겹살 고기 식당 집 앞으로 가서는 망설여져서 되돌아선다. 나 보다 더 소중한 분(예수님)과 어떤 아기(어린 양)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작은 방 안에 중고 컴퓨터도 없었다. 하지만 말씀을 증언해야만 했다. 그것은 소명같은 것이었다.
 
어느날,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손에서 놓고 싶었다. 고난의 시련이 쉼없이 반복되었던 탓이다. 그러던 중에서도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먼저 구하라"는 말씀이 사무쳤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이 말씀을 믿어야 하는가 아니면 믿을 필요가 없는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또 다른 말씀이 샘물처럼 솟아 올랐다. 바로 '순수한 믿음과 단련'이었다.
 
사실 죽지도 않겠지만 그 고난의 혹독한 마음으로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구하였다" 그것이 곧, 말씀에 대한 순수함이 아닐까 했다. 순수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 계산없이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게 '순수'한 것이다 하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믿음의 순종이란 ... 말씀에 대한 믿음과 여기에 말씀에 대한 행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순종이다.
 
단순한 행동주의가 아니다. '살아있는 행동'이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행동을 의미한다. 인간적인 행동은 주님의 성경 말씀(진리)와 상관없는 행동인데 이는 '죽은 행동' 이다. 진리를 따르는 행동이 중요한 것이며 '행동주의'는 별 가치가 없다 하겠다. '죽은 행동의 양심은 죽은 양심'이다. 마찬가지로 '죽은 행동의 믿음도 죽은 믿음'이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고 한다. 그러나 그 행동은 '살아있는 행동'이어야 할 것이다.
 
진리를 따르지 않는 <성체신심 행위> <성모신심 행위>는 모두 죽은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는 행동은 죽은 행동이며,죽은 행동의 믿음은 거짓된 믿음, '죽은 순종'이 되는 것이다. 믿음의 순종이란 말씀과 분리시킬 수 없다. 그저 행동주의적인 신심행위는 아무 쓸모가 없다. 이는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수하지 못한 믿음은 믿음의 순종이 아니다 하겠다. ....믿음의 순종 그 뒤로 나는 복된 생활의 형편으로 바뀌어갔다. 하느님께서 더 많이 채워주셨다. 믿음의 단련은 이렇게 순수한 믿음에서 이루어지며 머리와 입으로 형성되어지는게 아니다는 것을 직접 겪고 난 이후로 그제서야 비로소 체험하게 되었다. 성체성사적인 삶, 가난하고 깨끗한 마음, 이런 주님의 말씀은 머리와 입으로 단련되어지는게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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