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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희가 주어라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6 조회수379 추천수3 반대(0) 신고
 
 
 
 
 
예수님은 좌절을 모르시는 분이시다.
모든 인간적인 노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5천명을 먹이기 위해 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는 어림없는 숫자다),
또한 예수님도 인간적인 노력의 한계를 지닌 “참 인간”이셨지만,
좌절하지 않으셨다.
 
기도하셨다.
그 기도의 시작은 감사였다.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 하느님께 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신 것에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셨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것(빵,물고기)에 축복의 말씀을 내리셨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
참으로 보잘 것 없이 부족한 것에도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알고 그것을 두고 고맙다고,
많은 사람을 위해 좋은 음식이 되라고 강복하는,
이런 동작은 우리에게 참으로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받아들일줄 알게 해준다.
궁핍하고 가난하고 부족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상황을 유순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평정을 갖게 한다.
 
‘그래, 이것만이라도 얼마나 귀한 음식인가!
이런 어려움도 곧 지나가겠지.
다른 행복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웃자.
하느님은 더 잘 알고 계시지.
우리보다 더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걸 싫어하시니 다른 좋은 것을 준비하실 거야.’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무모한 말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5천명이 넘는 사람이 먹을 음식을 구하는 일은,
지금 세상에서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온갖 패스트푸드점을 다 돌아다니며 구한다 해도 최소한 반나절은 훨씬 더 걸릴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 순간 예수님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을까?
아니면 지금 당장 배고픈 군중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그 많은 음식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찾아보는 일이었을까?
 
예수님은 당신을 쫒아온 백성들의 영적 목마름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싶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맞이하셨다”라는 희랍어 원문, dexa,menoj에 대한 뜻풀이를 보면,
“기꺼이 맞아들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기꺼이 맞이해서 하신 행동도,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인 것을 보면,
지금 예수님은 백성들의 육신의 배고픔에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배고픔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예수님께 몰려든 대부분의 군중들은 그보다 육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이렇게
“가난한(배고프고 목마른) 군중”들을 기꺼이 맞아주는 사람(기관, 제도, 사회여건 등 포함)과
그런 만남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관심일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것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먹을 것”을 주라는 영어 표현도 something to eat,혹은 some food로 되어 있다.
enough food, 혹은 sufficient food가 아니었다.
뭔가 먹을 거면 충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배가 불룩하도록 먹을 어떤 것을 구해줄 심산이 아니셨다.
 
사실 예수님 일행은 제자들이 힘든 선교여행을 끝내고 지친 심신을 휴식시키기 위해 떠나는 중이었다.
때문에 그런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나는 예수님께 들이닥친 군중들은 몹시 성가신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군중들을 기꺼이 맞아들이셨다고 한다.
 
피곤한 중에도 기꺼이 맞아들일 수 있었던 까닭이라면
그 원인이 외적인 것에 있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즉 피곤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는 방법으로 성가신 군중을 맞아들인 것은 아니란 말이다.
때문에 예수님인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하고 말씀하신 것도,
지금 육신의 배고픔이 아주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예수님의 관심은 영적인 목마름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분은 50명씩 무리지어 앉게 하셨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즉 먹을 것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다급해진 사람들을 내 달리게 하신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게 만드셨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런 군중을 돌보시는 하느님이 계심을 신뢰하게 만드는 초대이다.
사람들의 궁핍, 불편함, 고통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란 사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는 뜻의 기도를 드리셨다.
그리고 이어서 아주 중요한 동작,
지금 당신 앞에 주어진 아주 적은 먹을거리에 축복하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참 중요한 동작이었다.
 
없는 것, 가지지 못한 어떤 것에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 지금 가진 것에 눈을 돌리고 그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하는 것은
모든 외적인 곤란과 어려움을 극복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결핍된 존재다.
뭐가 부족해도 부족한 것이 사람이다.
모든 걸 다 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두 하나 이상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들이다.
1%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99%나 부족한 것이 사람이다.
 
이 부족하고 못난 99%를 쳐다보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1%나마 충분한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은 참으로 지혜롭고 현명한 일이다.
예수님은 그 1%를 보시고 돌아가신 것만이 아니라
99%를 채워주시기 위해 돌아가신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이 채워주신 그 99%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표징이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하신 말씀의 참 뜻이 담긴 표징이기도 하다.
제자들의 손을 통해, 우리들의 손을 통해 당신의 성체와 성혈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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