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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복과 행복의 차이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7 조회수806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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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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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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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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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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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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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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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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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오5:1-12)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는 말씀은 아주 깊은 뜻을 갖고 있다.
랍비들은 제자들과 어떤 일을 상의할 때에는 아무렇게나 해도 됐지만 율법을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앉아서 가르쳤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앉아서 말씀하신 것은 사소한 이야기를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시려는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진복팔단(眞福八端, Beatitudes)은 그리스도의 ‘산상수훈’(山上垂訓, 마태오 5:1-12)과 들에서 한 설교(루카 6:20-22)에 나오는 다가올 복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이다.
루카 복음에는 제자들에게 외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이야기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마태오 복음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는 8개(혹은 9개)의 정신적인 축복을 전하고 있다.
루카 복음서에는 불행한 사람에 대한 4개의 징벌 예고가 뒤따르고 있다.
진복팔단은 그리스도교의 완전한 덕을 그리고 있는데 구약성경(이사야 32:20, 시편 1:1)와(루카 12:37, 마태오 13:16)에 비슷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으며 모든 복음서 말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신약성경
 
“복되어라, 영이 가난한 사람들!(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또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How happy are the poor in spirit)”로 번역하고 있는데 “복되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은 다르다. 이를 몰라도 복을 받을 수는 있다.
젊은 부부가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도 자고 있는 아이를 서로 안으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이 “좋은 건강을 타고 난 것은 복이다.”고 말할 때 전혀 복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길 때가 많다. 건강을 잃어봐야 그제서야 건강에 대하여 감사하게 된다.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이 말했다.
이가 아파야 아프지 않았을 때가 얼마나 좋았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행복은 스쳐가는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행복(happiness)’이란 단어는 ‘happen’과 ‘perhaps’라는 ‘우연성(randomness)’의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행복은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날씨와 같이 감정은 지나가며 항상 변한다. 따라서 행복을 절대로 붙들어 둘 수는 없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행복하여라’하고 말씀하시지 않고 ‘복되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알든 모르든 또는 감사하든 하지 않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복은 변화무쌍한 감정이나 생각과 관계없이 찾아온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이를 ‘beattitudo’라고 했다.
축복은 행복한 감정을 말하는 것도 아니며 당연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진복팔단을 읽을 때 사랑의 하느님께서 부모처럼 우리를 돌보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우리들이 약해질 때나 어려울 때 이 축복을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의 얼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들이 하느님의 선하심을 조금이라도 본 받게 될 때에야 비로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진복팔단은 예수님을 본받아야만 얻을 수 있으며 아울러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회개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을 주실 리가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의 B-29 조종사였던클라우드 이덜리(Claude Eatherly)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 귀환한 후 사람이 너무나 바뀌어 친구들조차도 그를 알아 보지 못했다. ‘전쟁 영웅’이라는 칭호를 너무나 싫어했고 연금도 받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투하한 원자 폭탄 때문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하여 히로시마에 돈을 송금하기 시작했다. 또 그가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것은 엄청난 비극을 불러왔기에 항상 마음이 편하지 않아 자살하려고까지 했다고 고백하는 편지를 히로시마 시의회에 보냈다. 이덜리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축복을 받았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전쟁영웅’이라는 칭호에 만족했더라면 일시적으로나마 행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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