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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빛 , 십자가의 빛 [너희의 빛 , 빛의 자녀]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7 조회수317 추천수1 반대(0) 신고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창세기 1, 2 - 3>
 
 
바울로는 이미 우리가 성경에서 아는 바와 같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사도들 중의 한 사람. 십이 사도의 일원은 아니었으나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가장 큰 활약을 한 사도였다. 칠리치아의 타르소)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난 그는 성장한 후 광신적인 바리사이인들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 대한 박해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도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된 바울로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개종하였다" <가톨릭대사전>
 
 
 
율법의 빛
 
바울로는 엄격한 율법주의자, 바리사이인('분리된 자') 이었다. 그는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서 철저하게 '분리되어' 하느님을 모신 사람들 중의 막강한 지도자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 그는 이 "빛"을 율법의 빛으로 보고 이에 상충하여 반대되는 이들은 모두 혹독하게 박해하면서 주어진 힘을 사용하여 극심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던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셨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2코린토서 4, 6>
 
 
바울로는 '율법의 빛'에서 벗어났다. 다음과 같은 사정을 겪고 나서이다.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사도행전>
 
 
 
그리스도의 빛
 
창세기의 빛을 '율법의 빛'으로 알았던 사울은 이 하느님의 빛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변화되어 알게 되었다. 첫 창조의 빛은 새 창조의 빛으로 바뀐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비추신 하느님의 영광된 빛, 곧 그리스도 예수님이셨으니 사울에게 '율법의 빛'은 비늘처럼 벗겨지면서 떨어져 나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빛'을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율법의 힘은 죽었고 그리스도의 힘은 부활되었다고 하겠다. 사울의 마음 안에는 사울은 죽었고 이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티아서 2, 19 - 20> 어둠은 인간의 마음이다. 이 어둠 속에서 이제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면 진리의 빛(성령)이 비추어 온다. '첫 인간'에게서 '새 인간'으로 변화된다는 의미이다.
 
 
 
 
이 빛은 '십자가에서 나오는 빛' 이다
 
 
십자가의 인간 ,  십자가의 세상
 
 
아직까지 '문자 그대로'를 율법적이다고 인식하는 일이 있다. 물론 율법의 시대에서는 그 말이 맞는 표현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과 이후의 그리스도의 시대에서는 '문자 그대로'를 율법적이다 하고 말하는 것이 변모된 시대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문자로 보는 그리스도의 말씀(빛)은 "영이며, 생명"<요한복음서 참조>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느님의 빛'이시다. 이 빛은 진리이시며 생명이다. 육적인 문자가 아니라 영적인 문자이다. 성령의 문자는 인간의 이성과 지식의 한계를 초월하여 죽음에서 일어난 살아 움직이는 생명과 같다. 인간의 마음 안은 깊은 '죽음의 어둠'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은 '생명의 빛'으로 그 어둠 속에서 비추어진다.
 
"그분께서는 또 피에 젖은 옷을 입고 계셨고, 그분의 이름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묵시록 19, 13>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피에 젖은 옷을 입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말씀이시다. '율법의 빛'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새창조(그리스도적 새 인간 ; 신화)가 이루어졌다.
 
바울로는 그 첫 사람인 '그리스도적 새 인간'이 되었다. 눈의 비늘이 벗겨지듯이 '문자 그대로'가 율법이다는 생각은 벗겨져야 한다. 새로운 "영적인 몸"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진리)이 새 인간의 '영적인 눈'이 되는 것이다. "눈이 맑으면 온 몸이 성하다" <마태오복음서 6, 22> 육적인 눈으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육적인 문자로 보겠지만 영(성령)적인 눈으로는 그분의 말씀을 영적인 문자로 본다.
 
십자가의 눈(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새 인간은 다름아닌 '십자가의 인간'이며 십자가의 인간에 의해서 '십자가의 세상'은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제압하는 힘은 사랑의 힘이다. 악을 제압하는 다른 악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사랑의 자리가 되어져야 한다.
 
십자가의 인간, 십자가의 세상 이것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부활이다. 어둠에서 비추어지는 그리스도의 빛이다. '문자 그대로'가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 '행위의 율법'이 율법적이다.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인간 정신의 어둠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드러나는 '십자가의 빛'으로 정화되어 '빛의 자녀'로 부활하여야 한다.
 
율법의 문자는 결코 폐지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문자는 인간의 마음 안에 새겨져서 이 그리스도의 빛으로 율법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를 잃어버린 인간과 세상은 생명의 빛을 잃는 것과 같다. 저마다 "피에 젖은 옷"(하느님의 말씀, 그리스도)을 새롭게 입고 부활하신 생명의 빵(그리스도의 몸)인 예수님과 일치된 사랑의 빛으로 '십자가의 인간', '십자가의 세상'으로 인간은 그렇게 '하느님의 생명'으로 지향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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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0 오전 10: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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