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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있을 때 잘 할 걸- 최강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8 조회수769 추천수6 반대(0) 신고
 

있을 때 잘 할 걸

 

  

 

 http://www.catholic.or.kr/

 

    어제 저녁 ‘디차dicha’는 눈을 가린 채 새로운 주인의 집으로 떠나갔다. 생후 일 개월 정도 됐을 때 우리 집에 왔었는데, 지금은 한참 말썽을 피우는 생후 삼 개월이 되었으니 우리는 두 달여를 함께 살아온 것이다. 아직 어린 강아지라서 그 동안 집 밖 외출을 하지 못했던 터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가는 세상이 너무 낯설고 두려웠는가보다.


    디차는 내 체취가 묻은 티셔츠 밖으로 두세 번 빠끔히 고개를 내밀어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티셔츠 속으로 머리를 묻고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가지고 놀기 좋아했던 방울소리가 나는 생쥐 장난감이 옆에 있는데도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 보고 떠나보낼까 싶어서 티셔츠를 들춰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아서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떠나보내고 말았다.


    두 달 전쯤 좀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자꾸 가라앉고 아무 것에도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무기력증상이 지속되고 있을 때 동료신부 하나가 전화 통화를 하다말고 무작정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스자좡으로 달려왔다. 이틀 동안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그가 일하는 곳으로 떠나갈 때가 됐을 때 우리는 애완동물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꼭 강아지를 사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기분 전환도 할 겸해서 예쁜 강아지들 구경이라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디차를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디차는 수 천 위안元이나 하는 혈통 좋은 귀족 강아지들에 치어서 한 쪽 귀퉁이에 처박혀 있던 백 위안짜리 잡종 강아지였다. 생후 일 개월 되었다는 디차는 그때 크기가 꼭 테니스공만 했는데 울긋불긋 화려하게 염색을 한 수 천 위안씩 하는 강아지들 틈에 끼어있으니 영락없이 병에 걸린 강아지처럼 보였다. 병에 걸린 강아지를 사서 행여 잘 못되기라도 하면 나까지도 어떻게 될 것 같아서 소리 없이 발길을 돌려 다른 강아지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연이라는 것은 이미 그렇게 시작이 되었던 것인지 디차를 본 뒤로는 귀족 강아지들이 한 마리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초라한 디차의 모습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뱅뱅 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설령 병에 걸렸다면 그게 오히려 내가 너랑 함께 살 이유이겠다.”


    내 집에 온 첫 날부터 강아지를 키우는 데 필요한 상식이 별로 없었던 내게 시련은 닥쳐왔다. 목욕을 시켰는데 테니스공만한 이놈이 수건으로 아무리 물기로 닦아내고 따뜻한 품에 안고 있어도 어찌나 심하게 덜덜 떨고 있었는지 겁이 벌컥 날 정도였다. 프라이팬에 수건을 깔고 가스 불을 약하게 틀어주면 온돌과 같은 효과가 있어서 괜찮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어째 엄두가 나지 않았고, 할 수 없이 집에서 좀 떨어진 슈퍼마켓까지 뛰어가서 헤어드라이어를 사가지고 왔는데,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그렇게 빨리 뛰어본 기억이 없다.


    다행이 주인을 닮았는지(?^^)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디차는 빠르게 새 환경에 적응해 갔다. 대소변을 가리는 교육은 이틀 만에 완벽하게 끝냈고, ‘앉아’, ‘일어서’와 같은 기본적인 명령어는 국제화시대에 걸맞게 한국어, 중국어와 같은 아시아 언어는 물론이고 영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까지도 문제없이 통했다. 디차는 애초의 걱정과는 달리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고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갔다.


    그런데 나는 내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는 물론 심지어는 어머니께도 강아지를 키운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숨겨왔다. 십 오륙 년 전,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셨을 때 집에서 키우던 ‘진실이’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고 난 뒤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었다. 그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어머니께서 내가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을 아시면 행여 ‘쯧쯧쯧, 얼마나 외로우면 그랬을까’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실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는 사제가 행여 애완동물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면 그것 역시 썩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신부의 삶은 단순할수록 좋고, 신부의 인연은 가벼울수록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신부에게 애완동물은 그 자체로 왠지 모르게 본질과 멀어져 있다는 느낌을 건네주기에 충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디차의 매력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내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부담감도 점점 커졌다.


    마음의 부담감과 함께 애초에 생각하지 못한 또 하나의 실제적인 문제가 점점 크게 다가왔다. 디차와 나! 이렇게 단 둘이 살아가는 가정이다 보니 내가 수업이나 그 밖의 일 때문에 밖에 외출을 하는 동안 디차는 꼼짝없이 독수공방을 보내야만 했다. 낮 시간의 대부분을 혼자서 보내야 했던 디차는 내가 외출에서 집에 돌아오면 그야말로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드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 때문에 디차 네가 고생이 많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함께 살 생각을 할 때부터 너무 내 생각만 하고 디차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했던 것 같아서 또 미안했다. 가족들이 많아서 혼자 있는 시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디차에게는 훨씬 좋을 텐데...... 앞으로는 내가 집을 비울 기회가 점점 더 많아질 텐데......


    그러던 중에 7월 말에 있을 연 피정 기간 열흘 동안 디차를 봐 줄 사람을 찾다가 디차의 새 주인을 갑자기 만나게 된 것이다. 중국어 과정의 선생님 중 한 분이 기꺼이 디차를 봐 주겠다고 해서 그 선생님과 디차가 자연스럽게 친할 수 있도록 한국 음식 몇 가지를 준비해 놓고 선생님을 초대해서 자리를 만들었다. 그때 선생님이 가족들에게 미리 보여준다며 디차 사진을 몇 장 찍어갔는데 그 사진을 본 가족들 모두가 너무나 디차와 같이 예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며칠 뒤에 선생님의 다른 자매들이 디차를 보고 싶다며 우리 집을 방문했는데 세상에나! 낯가림이 심해서 다른 사람 목소리만 들려도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나올 줄을 모르던 녀석이 웬걸! 그 자매들 품에 안겨서 꼬리를 흔들면서 내려올 생각도 안하고 놀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디차의 새 주인이 돼주세요.” “정말요? 그럼 오늘 디차를 데려가도 되나요?”


    디차는 어제 저녁에 그렇게 갑자기 떠나갔다. 아직 부엌문을 ‘드르륵’하고 열면 먹을 것을 줄 것으로 생각하는 디차가 어디선가 부리나케 나타날 것만 같다. 아직도 걸음을 옮길 때면 행여 디차의 발이라도 밟을까봐 조심스레 방바닥을 보고 걷는다. 디차가 쓰던 물건들은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떠나보냈는데 집 안 곳곳에 그 놈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닦고 또 닦았는데도 앙증맞게 찍어놓은 발자국은 아직도 여러 곳에 남아있다. 책상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 내 발등에 턱을 괴고 자기를 좋아하던 디차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 자꾸 책상 밑으로 눈길이 간다.


    하지만 디차는 이 집 어디에도 없다. 디차가 물어뜯어놓은 구멍이 뻥뻥 뚫린 테이블 포만 선풍기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고무 슬리퍼에는 디차의 이빨 자국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허전한 가슴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두 달 함께 산 강아지의 빈자리가 이 정도라면 내 배 아파서 낳은 친자식이 떠나간 빈자리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틀림없다. 디차를 떠나보내고 나니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그 놈이 끔찍이도 싫어했던 신문지를 말아서 만든 회초리로 콧잔등을 기분 나쁘게 때렸던 일만 가슴에 남았다.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슬리퍼를 물어간 그 놈의 주둥이를 그 슬리퍼로 제법 세게 때렸던 일도 후회된다.


    소파에 오줌을 쌌다고 그 자리에 몇 차례 집어던졌을 때 다리를 다쳤는지 며칠 절룩거리면서 걸어 다니던 생각을 하면 내 스스로가 참 잔인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소변 잘 가리고, 말 잘 알아듣고 하는 모든 것이 어쩌면 결국은 나 편하자고 했던 일이었는데 나는 디차에게 계속 거짓말을 했었다.


    “ 디차야! 이게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한참을 혼내고서 내가 디차를 달래기 위해 미안하다면서 껴안아주면 디차는 그때마다 빨간 혀로 내 턱을 연신 핥으면서 ‘괜찮아요. 뭐 이 정도가지고’하면서 사랑해 줬는데...... 함께 있을 동안 디차는 자기의 온 정성을 다해 나를 사랑해 주었고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디차가 떠나고 난 빈자리에 다시 채워질 하느님께 대한 사랑, 사람을 향한 사랑이 나를 다시 희망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도하면서 디차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고맙다. 디차야! 앞으로는 너처럼 있을 때 모든 정성 쏟으면서 잘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또 이렇게 떠난 뒤에 후회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구나. 새 집에서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렴!”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 

                       

 

                 나는 행복합니다.(작시: 김수환 추기경.. 작곡, 노래: 테너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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