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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뉴에이지에 관한 사목적 성찰 [교황청 문헌, 2004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9 조회수319 추천수3 반대(0) 신고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종교간대화평의회, 문화평의회]

뉴에이지 관련 국제 자문 회의 종합
뉴에이지에 관한 사목적 성찰
(바티칸, 2004년 6월 14-16일)


서 론

1. 2004년 6월 14일에서 16일까지 뉴에이지에 관한 국제 자문 회의가 바티칸에서 개최되었다. 5개 대륙의 주교회의들이 임명한 전문가들은 교황청 담당자들과 장상연합회 대표 한 명과 함께 작업을 하였다.

이 자문 회의는 「종파와 신흥 종교 운동」(Sects and New Religious Movements)에 관하여 공동 성찰을 하고1) 임시 보고서인 「생명수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 ‘뉴에이지’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이하 「생명수」)2)을 2003년 2월에 출간한 교황청 부서들이 소집한 것이다. 여러 주교회의에서 온 서신은 「생명수」 4장에 나온 원칙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뉴에이지가 조장하는 기법의 식별, 그리고 뉴에이지의 도전에 대처하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명확한 제시라는 두 가지 핵심 주제를 심화할 것을 요청하였다. 다음 내용은 이 자문 회의의 종합으로 교회의 사목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제1부 뉴에이지에 관한 정보

2. 자문 회의는 「생명수」를 준거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문서에 서술한 요소들은 근본적으로 타당한 것이라는 인식을 같이했다. 자문 회의 참석자들은 뉴에이지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시장이며 전파 도구인 문화 속에 계속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뉴에이지는 그 표현 방식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정의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3. 자문 회의 참석자들은 뉴에이지 운동을 새로 등장하는 세계 문화의 한 양태로 이해했다. 뉴에이지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은 현대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탈근대주의 추세와 부합한다. 뉴에이지는 비록 과거의 이상향 정치나 공동체 이상주의를 모두 버린 것은 아니지만 개인주의적이고 상업주의적인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4. 뉴에이지는 영지주의(이단 거짓 영지주의, 그노시스주의 / 그리스도교 영지와 다르다)의 한 형태로 전통 종교와 고대 의술을 선택적으로 응용한 다양한 정신적 이해와 기법들을 융합시켜 놓은 것이다. 뉴에이지는 이러한 요소들을 과학적 치료법이나 사이비 의술과 합쳐 정교한 기법으로 의식의 긍정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뉴에이지 세계관의 핵심에서는 흔히 영성과 종교를 그릇되게 대립시키기도 한다.

5. 뉴에이지 이념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되는 다양한 용어와 개념으로 표현된다. 그 일부는 그리스도교에도 공통된 것이지만 흔히 그 뜻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인간 발전’, ‘에너지’, ‘진화’, ‘천사’, ‘그리스도’ 등과 같이 교회에서도 사용되고 여러 뉴에이지 운동들이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들이 있다. (예; 기, 기운)

6. 사람들은 흔히 치유, 인간 잠재력 개발 또는 영이나 신’에 대한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해 준다고 주장하는 기법을 사용하면서 뉴에이지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이 자문 회의의 일부 참석자들은 이 가운데 일부가 복음을 신비롭고 깊게 체험하는 토착화를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다른 참석자들은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하느님 계시와 신앙의 중요성을 평가 절하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이들은 특히 정신 병리학적 차원의 부정적인 요소들도 지적하였다. 정교한 심리 기법부터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치유법에 이르기까지 뉴에이지가 사용하는 다양한 기법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전체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하다.

7.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자기 성취를 추구하는 데에서 뉴에이지 방법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낯선 것에 대한 매력과 또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를 바라는 진정한 열망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구도자들은 안정된 마음의 고향을 찾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기법들 사이를 헤매고 다닌다.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다. 곧 아버지께 가는 귀향길로 부르는 초대이다. 생명수를 지니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아버지께 이끄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그리로 나아가는 길이시다. 현재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뉴에이지 현상에 물든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이 하느님께서 자신을 어디로 이끄시는지 식별할 수 있게 도와주도록 부름 받았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뉴에이지의 도전을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진정한 만족에 이르는 길을 정성을 다해 보여 줄 기회로 여기며 열린 자세로 이를 받아들인다.( => 뉴에이지와 혼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뉴에이지의 도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위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 결론부분에 제시 됨)


제2부 식 별

식별과 대화의 관점

8. 교회의 전 역사를 통해서 하느님을 좀 더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노력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접목시킨 탁월한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예를 들어 복음 설교, 관상 기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 병자 치유 등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났다. 식별은 신앙의 모든 새로운 표현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하느님께 속한 것을 식별하기 위한 교회의 중요한 원칙은 그것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식별의 척도요 열쇠이시다. 요한 복음에 나온 제자들처럼 우리는 예수님 없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것이다(요한 6,67-69 참조).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시고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셨다. 시대는 끊임없이 변하므로, 식별은 지속적인 과제다.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령께서 세상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시대의 징표를 읽어 그분을 찾도록 촉구하였다. 사람들이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뉴에이지 정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뉴에이지에 현혹당한 사람들은, 특히 고통과 질병이나 다른 제약에 짓눌린 사람들은 인생의 완전한 의미와 지혜를 찾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전문가인 교회는 오늘날 표출되고 있는 이러한 근본적 추구에 응답하여야 한다. 교회는 자신의 풍요로운 영성을 펼치는 새로운 노력으로 그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가 지닌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통의 풍요로운 영성은 관상과 체험과 지성으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 성취를 가져다줄 역량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구도자들이 그리스도교의 풍요로운 영성 전통을 재발견하기를 바란다.

10. 사람들의 구도를 도와주려면 복음의 증인들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살도록 부름 받고 있다. 「생명수」에 나온 대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깊이 영향을 받은 사람 자신이 생명수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라는 초대를 한다면 더 큰 무게를 지니게 될 것이다. 단순히 그분에 관한 말을 들은 사람이 아니라 ‘그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요한 4,42)을 확신하는 사람이 하는 초대이기 때문이다”(「생명수」, 5장).

11. 그리스도교 영성은 은총을 통하여 삼위이신 하느님의 삶에 들어가는 직접 참여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세상의 변화를 위한 노력과 교회 생활을 필요로 한다. 뉴에이지가 추구하는 것은 흔히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모상인 그리스도의 위격을 향해 각 개인이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뉴에이지는 대부분 구원을 개인의 노력이나 기법(신성을 부여받았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참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 달려 있다.(신성에 참여하다) 인격적인 이 관계는 은총의 성사로 유지된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은 구원에 도움을 주는 고통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선물이라고 여기며, 신앙 공동체인 교회와 친교를 이루고 피조물과 연대를 이루는 가운데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견지에 따라, 오늘날의 환경에서 어떠한 방법이나 기법이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해 주는지를 두려움 없이 식별하여야 하는 것이다.

식별 기준

12. 뉴에이지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뉴에이지 기법’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이 기법들은 해롭지 않은 경우가 드물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다. 그래서 지속적인 식별이 필요하고 문제가 되는 기법의 진화와 적응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기법을 낱낱이 주의 깊게 평가하려면 여러 분야의 통합적 연구가 필요하지만, 여기에서 몇 가지 기준과 문제를 제시할 수 있다.

12.1. 일반적인 인간 문제에 대한 식별 기준

기술은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을 올바로 지향해야 한다. 이것이 명확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상식적 기준이다. 이 기준은 고객의 기본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지를 묻는다. 인권이 희생되고 있는가? 잘못된 정신 지배(mind-control)는 없는가? 지도자(guru)가 약한 고객에게 부적절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가? 판매상에게 지나친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가? 또는 고객에게 심각한 경제적 손실의 위험이 있는가? 심리적 신체적 위해의 위험 없이도 한 집단을 떠나거나 기법의 사용을 중단할 수 있는가? 비밀주의가 보호와 공동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의심스럽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감추려는 것인가?

12.2. 현대 과학 지식을 통한 수용

비록 실증 과학이 영적 실재에 대한 충분한 기준이 되지는 못하지만 과학은 인간의 존엄과 올바른 종교 자유를 보호하는 타당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뉴에이지의 기법이 현대 과학 지식의 기준에 비추어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물을 수 있다. 그 기법이 충분한 효과를 거두는가? 그 기법이 전능을 빙자하는 것은 아닌가? 약속한 보답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가?

12.3. 정신병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위험의 부재

이 기준은 특히 과학적 의학적 의식이 부족한 경우에는 어떤 뉴에이지 기법들이 정신 건강이나 질병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기법에 노이로제나 정신 이상과 같은 정신병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위험이 없는가? 이 기술에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 있는가?

12.4. ‘뉴에이지’ 이데올로기 전파의 부재

비록 어떤 뉴에이지 기법들은 철학적 종교적 기반 없이 사용되지만 다른 비술이나 영지주의적 사이비 영성 기법들은 필연적으로 왜곡된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수반하거나 전달한다. 그 기법을 사용하는 상황이 이상한가? 어떤 기법이 그 기반이 되는 철학과 분리될 수 있는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결정론적 관점을 조장하는가? 그 기법이 단순히 미신적인가?

그리스도교 고유의 본질에 대한 식별 기준

12.5. 성령 안에서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의 위격과 더욱 온전한 관계를 맺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유익함. 뉴에이지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대한 지식과 사랑의 증진에 도움이 되는가?

12.6.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신앙과 도덕에 부합한다는 의미에서, 올바른 교리적 도덕적 준거 틀. 뉴에이지 기법이 그리스도인 양성을 촉진하는가 아니면 저해하는가?

12.7. 그리스도교의 영적 식별에 대한 적합성. 성령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부신다. 그러나 뉴에이지 기법이 성령의 은총을 북돋아 주는가 아니면 거부하는가? 그 기법에 어둠의 영으로 이끄는 문을 열 위험은 없는가? 섭리를 위한 어떤 역할이 있는가?


제3부 구체적 활동

13.1. 실천 과제

자문 회의 참석자들은 통상적인 사목 활동에서 가톨릭 영성 전통이 지닌 뛰어난 부요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전례에서 교리 교육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에서 기도와 성사 특히 성찬례에서 하느님과 만나는 길을 여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모든 통상적인 복음화 방법, 이른바 확고한 양성과 개인 신앙과 공동체 신앙이 적절하며, 이는 식별에 필요한 확실한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인격적이고 영적인 깊은 체험을 촉진하는 사목 활동들이 분명히 우선되어야 한다.

뉴에이지에 대응하는 특별 과제를 위하여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법의 숙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뉴에이지나 관련 문제에 관한 적절한 교육과 문헌이나 교리서의 발간을 독려한다. 특히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와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 그리고 「생명수」에서 다룬 내용을 제대로 전해야 한다. 자원에 달린 일이기는 하지만, 지역 사정에 맞춘 뉴에이지 관련 교리서의 저술, 활동 단체의 결성, 뉴에이지와 대화를 나누는 센터, 뉴에이지 분야에서 사용되는 일부 기법들에 관한 고찰을 위한 학제적 심포지엄 등에서 긍정적인 결과들이 나오기도 한다. 거기에 따른 결과물이나 착상들이 발표되고 확산될 수 있다.

대화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생명수」 4장에 보면 대화를 위한 지표들과 더불어 뉴에이지 사고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비교하는 유용한 내용이 나온다. 일부 뉴에이지 입장을 마주하게 되면 그리스도교의 강점을 증언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부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바란다. 그리스도인들도 그것을 바라지만 자연을 하느님의 피조물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어떤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사랑하는 이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자고 한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랑하지만, 또한 산 이든 죽은 이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성도들이 이루는 은총이 가득한 친교도 믿는다. 일부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완성의 때를 내다본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때를 바라보지만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을 완성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라고 믿는다. 일부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영혼의 내적 평화를 추구한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하지만, 그러한 평화는 단순한 기법의 결과가 아니라 개인의 회개를 요구하는 성령의 선물이라고 확신한다.

13.2. 실천 장소

뉴에이지는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고자 많은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에 교회가 폭넓은 대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중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피정 센터에서 연구 모임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풍요로운 영성에 대한 공동체 체험을 강화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그리스도교 기도와 신비주의와 영적 체험을 위한 모임과 학교와 양성 기관의 진흥이나 수립은 그러한 목적에 기여한다. 신자들이 신앙에 바탕을 두고 세상에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는 사목 계획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학제적 연구와 워크숍이 도움이 된다. 국제적, 전국적, 교구 간, 지역적 연구와 지원 단체를 설립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일부 주교회의는 한 특정인을 관련 활동의 책임자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일부 국가에서는 뉴에이지와 접촉해 본 사람들을 맞이하여 도와주고, 이 분야에 대한 최선의 방책을 사제들에게 알려 주고, 뉴에이지의 변화하는 도전들을 인식시키는 기관들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기관들은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영적 전통의 다양한 표현들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뉴에이지가 상당히 널리 퍼진 문화에서는 통상적인 사목 활동을 증진하여 뉴에이지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뉴에이지 사상의 선전이 가톨릭 단체나 활동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보살펴야 한다.

13.3. 실천 담당자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새로운 복음화에 참여하여야 한다. 교계의 지도에 따라 누구보다도 먼저 성직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통상적 수단을 활용하여야 한다. 곧, 강론 등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진리를 가르치고 뉴에이지가 왜곡한 교리들 특히 창조와 환경에 관한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특히 피정 센터나 교육에 종사하는 수도자들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 평신도 역시 현대 사회의 모든 생활에서 그들의 사도직 활동으로 이러한 도전에 맞서는 데 훌륭한 기여를 한다. 영성 지도와 영적 동반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급선무다. 교회 일치를 위한 진지한 교류와 협력은 이미 도움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의 대화에도 적절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학생이든 교사든 교사 양성자이든 그리스도인 양성에 종사하는 사람은 올바른 신앙 전수를 그토록 쉽게 왜곡시킬 수 있는 이러한 문화적 추세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철학적 신학적 차원을 모두 담고 있는 문제로 학습 계획을 수립할 때 고려하여야 한다. 뉴에이지의 본질에 관한 신자들의 경각심을 높이려는 계획 또한 이 국제 자문 회의에 모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결 론

 

14. 우리에게는 감출 수 없는 보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신비로, 성령을 통해 쏟아져 나와, 창조되고 구원되고 성화된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 자신 안에서 반사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모퉁잇돌이시고 그분의 교회는 계시된 진리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이는 여러 선택이 가능한 시대에 성령께 겸손하게 의지함으로써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성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식별의 열쇠이시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신앙생활을 통하여, 성덕 추구, 자선 활동, 교회의 신비 전통과 관상 전통을 통하여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본다. 진리와 교리를 배워 양성된 우리는 우리 안에 간직하고 있는 희망을 분명히 설명하며 정중하고 끈기 있는 대화에 참여한다. 성사들을 통하여 우리는 태어나고 치유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위한 힘을 얻는다. 뉴에이지의 다양한 모습들과 뉴에이지가 활동하는 문화적 상황은 그 대응에서 교회가 지닌 충만한 부요의 제시, 곧 생명수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도록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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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분홍색 괄호는 게시자)

하느님께서만 신성을 지니신다 <가톨릭교회교리서>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다.

뉴에이지의 신’에 대한 특별한 체험 => 자기가 신이다. (신성을 부여받아 신성을 지니는 신이다 / 공동이다) 

'인간 마리아'와 '보통 인간'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마리아는 신성을 부여받은 신이고 인간이 아니다 ?  /  뉴에이지의 '자아'에 의한 영향을 입은 거짓된 교설, 우상(무형의 언어로 된 우상, 가짜 마리아)숭배. <뉴에이지적인 마리애 참조 /  그리스도교적 마리애가 아니다 /  이단 거짓 영지주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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