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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은 율법의 완성 - 6.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9 조회수412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6.9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열왕기 상18,20-39 마태5,17-19

 

 

 

 

 

"사랑은 율법의 완성"

 

 

요 며칠 동안의 화두는 1독서의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문득 생각난 게 뺄셈입니다.

하느님의 안배로 까마귀가 물어다 준 빵과 고기를 먹고 연명하다가

어제 역시 하느님이 안배해 놓은 사렙타 과부 집에 머물며

심신을 충전한 예언자 엘리야에게서

하느님을 빼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가르멜 산에서 주님의 예언자 엘리야 1명과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의,

1:450의 대결전입니다.

백성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예언자 엘리야의 말씀은

하느님과 세상에 양다리 걸치고 사는 우리의 신앙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나 양 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시오.”

 

바알이 상징하는바,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돈, 재물, 권력, 명예 등

온갖 세상의 보이는 우상들입니다.

바로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런 모든 우상들을 몰아내고

하느님을 그 자리에 모시라는,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촉구입니다.

오늘 바알 예언자들과의 결전을 앞둔 예언자 엘리야의 상황도

전과 대동소이합니다.

하느님을 빼버린다면 엘리야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 빼기(-)하느님은 아무것도 아니요,

나 더하기(+) 하느님은 모두입니다.

결론하여 엘리야에게서 하느님을 빼버리면

엘리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바알 예언자들의 시도는 완전히 실패입니다.

아침부터 한 낮이 지날 때까지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간청했지만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습니다.

가짜 하느님임이 폭로되는 순간입니다.

다음 등장한 예언자 엘리야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 간청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저에게 대답해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순전히 하느님만을 배려한

엘리야의 하느님 사랑과 믿음이 가득 배어 있는 기도입니다.

새삼 하느님은 엘리야의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마침내 엘리야의 기도는 응답되어

위에서 내려온 주님의 불길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 합니다.

엘리야의,

아니 하느님의 통쾌한 승리에 이은 백성들의 하느님 고백입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매일 우리도 이렇게 주님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며 미사에 참여합니다.

하느님은 엘리야의 모두입니다.

아니 엘리야뿐 아니라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

교회의 무수한 성인들 역시 하느님은 그들의 모두였습니다.

하느님만을 찾는 우리 역시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두인 하느님을 빼버린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이겠습니까?

바알 예언자들처럼 하느님 대신에 보이는 우상들에 의지하며

자기가 모두인 줄 알고

하느님을 잊고 착각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하느님이 우리의 모두라는,

하느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이

참 가난과 겸손의 영성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의 아무것도 아닌 텅 빈 자리에 가득 차는

하느님의 힘, 사랑, 생명입니다.

이래서 하느님의 사람들이 약한 듯 보여도 강한 것입니다.

 

사람 눈에 큰 계명 작은 계명이지

하느님 사랑의 눈에는 모두가 큰 계명입니다.

 

크고 작은 모든 계명들이 모두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하지 않습니까?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작은 계명 하나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 큰일에도 충성하듯

작은 계명의 사랑 실천에 충실한 이들이

큰 계명의 사랑 실천에도 충실합니다.

사실 사랑의 눈으로, 하느님 눈으로 보면 모두가 큰 계명일 뿐입니다.

이건 결코 완벽주의의 사랑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사랑하면 줄줄이 보이기 시작하는 사랑의 계명들이요 실천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라 왔다.”

 

사랑에 의한 율법의 완성임을 짐작케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들은 모두 하느님 사랑의 표현들이요,

하느님 눈에는 큰 계명, 작은 계명이 없이 모두가 사랑의 큰 계명입니다.

작은 눈빛, 작은 친절의 사랑 하나도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요.

우리의 모두인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사랑을 가득 부어주시어

모든 사랑의 계명들을 충실히 지킬 수 있게 하십니다.

 

“주님을 바라는 이에게,

  주님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은 분이시네.”(애가3,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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