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양과 염소 [ 내가 몸소 - 내 양을 찾다 ]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09 조회수564 추천수2 반대(0) 신고
 
 
"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
 
 
 
 
 
 
위의 그림은 '양' 입니다.  '양'은 순종적이기 때문에 꼬리가 아래로 내려져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영소' 입니다. '염소'는 교만적이라 꼬리가 치켜 올라져 있다고 말합니다
 
두 그림에서 '양'과 '염소'는 엇비슷하게 보이지만 꼬리 형태의 차이로 '양'과 '염소'를 구분합니다
특히, '염소'를 자세히 보면 "두 뿔 달린 어린 양과 같은 짐승" (요한묵시록) 입니다
 
 
 
'양'과 '염소'에 대한 성경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오복음서 25, 31 - 46>
 
.....................................................................................................................
 
 
 
 
그리스도의 마음을 자기 마음 안에 채우라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현존을 항상 새기며 살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강구했는데 그 중에 한가지는 신발 안에 작은 돌맹이를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돌맹이 때문에 아픔이 오면 순간순간 하느님을 생각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기 보다는 나중에는 돌맹이로 인해 아픔을 더 느꼈기 때문입니다.
돌맹이로 인한 아픔의 의식이 점차 하느님의 현존의식보다 더 강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현존 의식'을 생활화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물리적인 여러 방법상으로는 충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자신의 육체에다 모든 신경을 집중하지만 끝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머리의 논리적 지식이 마음과 영의 충족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자기 마음 안에 채우라고 '복음적 권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갈라디아서 2, 20)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복음서 3, 30)라고 했습니다.
내 (자기) 안에 내(자신)이 커지는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커지셔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요한복음서 3, 6>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요한복음서 6, 63>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적 인간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코린토서 2, 10 - 14>
 
..............................................................................................
 
 
 
" 내 양은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
 
 
순종적인 겸손한 '양'과 같은 이들은 '주님의 음성'을 알아 듣습니다.
불순종적인 교만한 '염소'와 같은 '두 뿔 달린 어린 양같은' 이들은 '주님의 음성'을 알아 듣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두 주인"이 있습니다.
두 갈래의 길이 갈라져 있어 다른 음성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두 음성 때문에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음성' 을 식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는 '인간의 말'이기 때문에
현세적인 인간, 머리의 논리를 중요시하는 인간은 여간해서는 이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마치 '양'과 '염소'를 영의 눈이 아닌 육의 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영혼의 귀'는 '육신의 눈'으로 말미암아 현혹(의혹)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온갖 '우상의 언어'를 만들어 내어 그 언어와 개념에 철저히 의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어찌 '신'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어찌 '하느님의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게 어찌 하느님의 진리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요한복음서 6, 56)
 
'하느님의 현존 의식'은 '그리스도의 현존 의식' 입니다.
'그리스도의 현존 의식'은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신 성령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현존 의식은 '인간의 힘'(머리의 힘)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하느님의 지혜)에 의해서 입니다.
하느님의 힘과 하느님의 지혜는 바로 그리스도 이십니다. <1코린토서, 콜로새서, 야고보서>
 
그래서 내 안에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영적인 흐름'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성령의 이끄심'으로 빛의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지 않는다면
내 안에 그분께서 보내주시는 진리의 영, 성령께서도 살아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어 '성령의 성전'이 된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일러주신 순종적인  "내 양들"이 됩니다. (요한복음서 26, 15 - 17)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요한복음서 14, 23)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14, 24)
그들은 주님의 왼편에 설 '염소' 입니다.
 
2008-04-30 오후 10:38:41
 
 
 
 
 
<목요일 - 금요일>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에제키엘서 34,15 - 16>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5, 5 - 8>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루카복음서 15, 4 - 6>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