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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성담의 십자가의 길>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10 조회수765 추천수1 반대(0) 신고
윤상원, "사람 죽이는 총알이 왜 이리 따뜻하냐?"
[인터뷰] 홍성담과 `오월 예수 십자가의 길 14처'
 
2010년 05월 23일 (일) 14:27:59 한상봉 isu@nahnews.net
 

 

   
▲ 홍성담 씨, 작업실에서

5.18을 지내는 민중미술 작가 홍성담(55세)씨의 마음은 언제나처럼 새삼스럽다. 중학생 시절에 영세를 받았으나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은 그동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본인이 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5.18을 겪으면서 언젠가는 광주학살을 다룬 십자가의 길을 만들고 싶어했다.

5.18 당시 홍성담 씨는 광주 현장에 있었다. 주로 프랭카드를 제작하고 대자보를 쓰는 선전업무가 그가 맡은 역할이었다. 광주5.18을 떠올리면서 잊지못할 한 장면이 있었다. 계엄군의 도청 진압작전을 앞둔 5월 26일, 몇몇 동지들은 도청에 남고 홍성담 씨는 작업을 마무리한 뒤 총기를 반납하러 도청엘 갔다. 도청에 가서 '형'뻘인 윤상원 씨를 불러냈다. 윤상원 씨는 '담배 있냐'고 물었다.

물품반입이 차단된 광주에서 담배가 무척 귀했고, 홍성담 씨는 뒷골목을 뒤져 담배꽁초를 여러개 주워왔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배워낸 실력대로 담배찌꺼기를 털어 곱게 두 개피를 말았다. 쪼그리고 마주 앉아 담배를 태우고, 돌아서 가던 홍성담은 문뜩 자신이 총기만 반납하고 총알은 그대로 호주머니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선전요원이라서 총탄은 따로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것을 깜빡한 것이다.

다시 돌아가 윤상원 씨에게 총알을 건네주었는데, 그때 윤상원 씨가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사람 죽이는 총알이 왜 이리 따뜻하냐?" 그동안 홍성담의 호주머니 속에서 체온으로 덥혀진 총알이었다. 예리하게 반짝이는 금속성의 총알도 사람에게 닿으면 이렇게 따뜻해지는 것일까? 윤상원이 남긴 그 마지막 말 때문에라도 홍성담은 광주를 떠날 수 없다. 그 민중의 마음을 배신할 수 없다. 이렇게 광주는 홍성담 씨에게 '삶의 방향을 가리켜준' 원체험이 되었다.

홍성담 씨가 5월 예수를 그린 십자가의 길을 그리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멜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였다고 한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고백하듯이 예수가 우리 대신 고통을 받고 신이 되는 과정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당연한 일로 생각하기 쉽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상상해 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손톱 밑의 가시조차 못견디면서, 예수의 고통을 일반화된 고통으로 치부하고 만다."

광주학살을 경험한 그에게 예수의 고난은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그대로 전이되어 느껴져 오는 아픔이었다. 그는 "기억은 투쟁"이라고 말한다. 5월에 겪은 국가폭력에 의한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 '14처'를 그렸다고 홍성담 씨는 말했다.

   
 

그가 2006년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의뢰로 남동 5.18기념성당에 걸 십자가의 길을 그리게 되었다. 계엄군에 짓밟힌 광주를 예수의 고난과 연관지어 그린 5.18 성화(聖畵)는 남동성당에 설치된 지 단 하루 만에 철거되었다. 이 성화는 그해 5월 12일 설치를 마쳤으나, 13일에 담당사제로부터 "14처 그림을 떼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작품이 전통적인 성화의 이미지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1년 가까이 혼신을 기울여 80호 크기(145㎝×97㎝)로 만든 작품이었다. 이 성화는 곧바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는 작업실의 수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광주대교구 측은 본당 안에는 설치할 수 없지만, 본당 밖에 따로 갤러리를 마련해 영구전시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홍성담 씨는 잘라서 거절했다. "본당 안에서 묵상용으로 십자가의 길을 제작한 것이다. 갤러리에 걸 전시용으로 만든 게 아니다. 갤러리에 걸면 5.18 그 정신이 박제가 될 것이다."라는 이유에서였다. 홍성담 씨는 광주대교구 측이 건네준 제작비용도 거절했다. 돈벌이와 상관없이 마음으로 그린 성화를 이제 와서 설치도 안된 채 받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2005년 5월에 남동성당을 '5.18 기념 성당'으로 지정했으며,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홍성담 씨에게 "십자가의 길 14처 그림에 광주 오월 예수를 형상화해 달라"고 의뢰했다. 광주민중항쟁 30주년 기념미사가 봉헌된 지난 17일처럼 남동성당에선 해마다 5월 영령들을 위로하는 추모미사를 봉헌해 왔다. 그 역사성을 살리자는 뜻에서 시도된 일이 어그러져 홍성담 씨는 "안타깝다."

이 성화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는 홍성담 씨의 작업실 수장고 속으로 들어간 채 몇년 째 봉인되어 있다. 홍성담 씨는 무등산 중턱에 5.18을 통해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홍성담 씨는 1955년에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태어나 1979년 2월 조선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해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선전요원으로 활동했다. 1983년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해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 왔고, 1987년에는 반(反)고문전과 한국민중판화전에 참가했다. 1989년에는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이 공동 제작한 걸개 그림 '민족 해방 운동사' 사진을 북한 평양축전에 보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유포) 혐의로 구속돼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의 구속 이후 독일.영국.미국 등지에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판화전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시대 30대의 기수전' '오월 미술전' '민중미술 15년전' '동학 100주년 기념전' 등에 참가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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