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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11주일 2010년 6월 13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11 조회수382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11주일   2010년 6월 13일


루가 7, 36 - 50.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 그분을 따르던 사람들 사이에는 많은 말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하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특히 비유 이야기들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자’의 이야기, ‘은전 한 푼을 잃어버린 여인’의 이야기, ‘유산을 받아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간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등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면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남긴 이야기들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 제자들이 중심이 된 초기 신앙공동체가 그분이 살아계실 때 하신 일을 회상하면서 발생시킨 이야기들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안에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분에 대해 제자들이 회상하면서 발생시킨 이야기들 안에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쳐주고 마귀를 쫓은 이야기, 죄인에게 용서를 선포한 이야기, 갈릴래아 호수의 풍랑을 갈아 앉힌 이야기, 유대인들의 버림을 받아 로마 총독에게 고발되고 단죄되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야기 등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런 이야기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었으며 하느님에 대해 그분이 어떻게 믿고 사셨는지를 말해 줍니다. 복음서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담아 우리에게 알립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도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일어난 일 한 가지를 제자들이 이야기 안에 담아 우리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시몬이라는 바리사이의 초대를 받아 그 집 식탁에 앉아계셨습니다. 그 고을에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 한 사람이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 왔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집주인은 속으로 말합니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예언자는 하느님의 일을 알고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예수님이 그런 예언자라면, 그 여인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즉시 알아보고 대처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시대 유대교는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과는 접촉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 이야기에 나오는 집 주인 시몬은 바리사이이고, 그는 그 여인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집주인 시몬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을 각각 빚진 두 사람을 예화로 들면서 ‘이 여인은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에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분이고, 그 용서하는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하신 말씀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이 이야기에서 그 바리사이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은 예수님이 믿으시는 하느님과 다릅니다. 유대교의 하느님은 사람을 죄인으로 판단하고 버립니다. 그 하느님은 율법을 사이에 두고 인간과 대결 관계에 있습니다. 단죄하며 버리고 벌을 주는 대결 관계입니다. 인간은 그 하느님 앞에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제물을 정성들여 바치면서 비로소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 하느님 앞에 자유롭지 못하고 늘 불안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버림 당하고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인간은 항상 긴장하고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지킬 것을 제대로 다 지켰는지, 또 바칠 것을 다 바쳤는지를 항상 반성해야 합니다. 이런 하느님 앞에 있는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고 노예와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믿고 계신 하느님은 용서하고 사랑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그 죄 많다는 여인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성찰은 제대로 하였는지, 또 죄를 진심으로 뉘우쳤는지를 묻지 않으십니다. 물론 보속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 받았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이 믿고 계신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에게 접근하는 믿음은 벌써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소중히 생각하는 원리는 인과응보(因果應報)입니다. 잘 한 만큼 보상을 받고 잘못한 만큼 벌을 받아야 하는 원리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형법이나 민법의 기본이며, 우리 인간 사회가 지향하는 질서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는 하느님도 이 원리를 기본 질서로 하고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지켜야 하고, 제물은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는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죄인으로 매도하면서 하느님이 그를 버리신다고 믿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에 등장한 여인도 그런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대결의 관계 안에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베풂이 있어 자녀의 생명이 시작하였고, 아버지의 보살핌이 있어 자녀가 사람이 됩니다. 그 시대 가부장(家父長)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단어에는 어머니의 역할도 들어 있습니다. 자녀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워서 사람 노릇 하며 삽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병든 이를 고쳐주고, 장애인을 치유하여 그들이 충만한 생명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집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자비로우신 것 같이 자녀 되는 우리도 자비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도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분의 사랑과 용서를 실천합니다. 그 실천 안에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그런 실천들이 있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그것을 믿고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실현되도록 노력합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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