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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과 세상 [인간세상 <과> 세상인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11 조회수320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가의 인간  /  십자가의 세상
 
 
"인간의 구원자,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예수님의 사랑, 곧 십자가의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인간은 자신에게 이해되지 못하는 존재로 남게 된다." (요한바오로2세 교황) 왜,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구원자"라고 표현하는 것인지를 자신에게 다시 물어 보아야 한다. '세상의 구원자'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세상은 인간 자신이 바로 이 세상을 살고있기 때문이다. 세상 보다도 인간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세상에 눈을 돌릴 때에는 그것이 달라진다. 인간이 세상의 지배를 받고있다는 것에 강조하면 그러하다. 세상 안에 인간을 보려고 할 때, 인간을 바꾸고자 하는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 안에서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세상 안에서 인간이 변한다고 주지할 때, 이미 인간은 세상의 지배를 받게 되어 인간 자신을 잃게 된다. 세상을 바꾸어야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게 '인간중심 패러다임' (뱀의 논리)이다. 인간의 지성만이 '인간의 중심'이 되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바가 "인간중심주의" 이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사랑의 탄생'은 '인간주의적 사랑'에 가려지며 '인간적 정의'가 세워져 '인간 지성자들'에 의해 인간은 지배받고 그들의 '정신적 힘'에 나머지 인간은 그들의 세상 속으로 끌려가야 한다. 세상이 바뀌어야 인간이 변한다는 '세상 논리'(인간중심주의)는 인간에게는 진리가 아닌 가장된 거짓인 것이다.
 
그같은 '인간중심주의'가 변화되어야 ( 그런 인간 자신들이 변화되어야 ) 참된 "인간의 구원" 진정한 "세상의 구원"이 인간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구원자" 곧, "인간을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시는" 분이 되신 것이다. 새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인간 자신이 변하여야 한다. '예수님 사랑' (십자가의 사랑)으로 변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지성 중심으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고 인간이 그리스도의 가르침(하느님의 지혜)을 따름으로 해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다스려 주시도록 인간이 인간 자신 안에 마련해 주는 것이 인간이 인간을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이같은 '구속신비'의 인간적 차원에서 인간은 인간 자신의 인간성에 깃들어 있는 본래의 존엄성과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그들과 다른 <참된 인간>의 새로운 중심점이다. 인간의 나약함, 죄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안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인간에게서 그 가치와 존엄성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리스도교의 출발이며 교회의 사명이 되기도 한다.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는 신비로운 '하느님의 사랑'(하느님의 정의)으로 인간을 회복시켜 주심으로써 '진정한 인본주의'에 생기를 주시는 것이다. 세상을 위해서 인간이 '인간을 파괴' 시키려는 자들로부터 '십자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구속의 신비, 십자가의 세상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셨던 것이다.
 
자기 자신은 남에게 죄를 지으면서도 남이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또한 자기 자신 외에는 '남이 남에게 범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못한다. 자신의 논리(인간 지성)이 우월하고 소중히 여기는 이기적인 속성에서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며 속박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내면의 중심)에 살지 않으시고 '인간중심주의' 곧,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 보다 더 커져서 자기 중심(안)에는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 진리(하느님의 말씀, 교회의 가르침)이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고 우상들[예를 든다면, 피눈물의 가짜 마리아(탕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중심주의 사랑'에서는 인간은 인간에게 상처를 무수히 입히게 되며 인간은 '인간의 지혜'로 우상을 섬기는 인간에 의하여 하나의 '세상 부속품'으로 전락되어 지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모든 인간들로부터 해방을 알리신 십자가의 인간, 곧 "인간의 구원자"가 되신 것이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라티아서 6, 14>
 
 2009-12-09 오후 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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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복음서 6, 36> 자비로운 사람...세상은 하지 못하고,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다. 세상 지성주의자들(세상의 지혜)의 주장들을 들여다 보면 이 세상은 미움과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모순들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상에 살게 되는 사람들 즉, 자기 자신들은 그것에 멀리 있어 보인다. 사람이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그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인간 자체에 대해서는 경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세상이 변하여야 한다면 사람이 먼저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고 세상만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에 인간을 짓밟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 수단과 방법에서 나쁘다면 그런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겉모습만 변형될 뿐 속모습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위한다는 주장 속에는 당장의 목표달성을 위한 현세적인 다른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며 결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상태들을 파괴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어떤 세상의 모습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은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돌이켜 살펴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인간적인 행태'에서 '사람이 사는 세상'은 요원하다. 인간은 세상 보다 인간 자기 자신에게 더 철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들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에 살 수 있는 사람만이 적응하며 살수 있게 될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소외되거나 또한 그들에게 새로운 지배 받으며 또다른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들이다. 인간 자체를 중시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은 도리어 큰 반목과 갈등으로 서로에게 상처와 미움을 갖게 하며 세상을 어둡게 만든다.

그들에게서 사랑과 자비는 하나같이 '지배자'들의 논리로 치부되어진다. 만일 그들이 인간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고 세상에 그 목적을 둔다면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되고 나더라도 역시 그들은 새로운 인간 지배자(억압자)가 된다.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세상 생각뿐이니 그런 세상 유지를 위해서 자신의 지성우월감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단지 반복할 따름이다.

인간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그런 인간에 의해서 제시되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새로운 인간상'에 의해서 정녕 사람이 사는 세상,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세상은 용서의 나라, 자비의 나라, 평화의 나라, 감사의 나라, 사랑의 나라이다. 이처럼 인간이 변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여전히 '세상 인간'으로부터 해방되어지지 못한다. 모름지기 '인간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세상의 청사진을 두고 있는 '세상 인간'이 아니라 어떤 인간의 청사진을 두고 있는 '인간 세상'인가 하는 점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러한 '인간 세상'을 말씀하신다.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를 않으시고 인간("아버지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계심을 요한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

세상을 위해 말하는 사람들은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언행들을 과감하게 전개한다. 그런 이들에게는 오히려 자기 자신들에게 '세상에 대한 청사진'이 아니라, 올바른 '인간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가꾸어 갈 필요가 있다 하겠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다시말하면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사람' 곧 인간에게 제시된 '하느님의 사람'이시다. 사람사는 세상이 되는 '인간 세상'을 위한 인간 자기의 '인간 청사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새로운 인간은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 안에서 참된 평화와 참된 생명의 십자가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하지 못하는 일은 세상 자체가 아니며 바로 인간이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09-09-09 오전 10: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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